70년 만에 최악… 동아프리카·중동 식량안보 위협

입력 2020. 08. 10   14:57
업데이트 2020. 08. 10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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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에 열병 앓는 지구촌


게재 순서

<1>기상이변 속출…한·중·일 기습 폭우의 경고
<2> 북극권 고온과 호주 폭염 그리고 대형 산불
<3> 기후변화가 만든 재앙 아프리카 메뚜기 떼 역습
<4> 해수 온도 상승이 만든 재앙들 

 
‘사이클론’ 발생과 집중호우로 사막메뚜기 떼 급속히 번식
바람 타고 하루 이동 거리 200㎞… 8800인분 농작물 ‘꿀꺽’
올핸 활동 반경 넓혀 인도·파키스탄 거쳐 중국까지 영향 예상 



“아프리카와 중동, 그리고 인도와 파키스탄이 메뚜기 떼의 습격으로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아니, 메뚜기를 식용으로 먹으면 안 되나요? 엄청난 고단백질이잖아요.” 초등학교 학생의 순진한 질문에 순간 멍해 버렸다. 필자도 어릴 적에는 메뚜기를 많이 먹었다. 그러나 메뚜기가 나오는 몇몇 영화를 보고 난 후 이젠 먹지 않는다. 영화 ‘엑소시스트’에는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메뚜기 떼의 습격 장면과 무기력한 농민의 모습들이 나온다. 리처드 기어가 주연했던 영화 ‘천국의 나날들’에도 메뚜기 떼 공격으로 거대한 들판이 초토화된다. 많은 소설과 영화에서 다루어질 만큼 메뚜기는 재앙을 몰고 오는 그로테스크한 곤충이다. 참고로 아프리카에서도 일부 부족은 사막메뚜기를 먹는다. 그러나 세계식량기구에서는 절대로 메뚜기를 먹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다. 메뚜기를 없애기 위해 엄청난 화학약품을 살포하니 먹으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가 메뚜기 떼를 만든다

올해 극성을 부리는 메뚜기는 사막메뚜기다. 메뚜기는 지구상에서 가장 파괴력이 큰 해충 중 하나로 몸길이가 6~7cm, 무게는 2g 정도이다. 3~6개월 동안 생존하는데, 암컷 한 마리가 1년에 300개의 알을 낳고 2~5세대에 걸쳐 번식한다. 생존력이 강하고 번식력이 왕성하다 보니 올 3월에 에티오피아와 소말리아, 케냐 등 아프리카 3개국에 있는 메뚜기 수만도 무려 4000억 마리에 이르렀다고 세계식량기구가 밝힐 정도였다.

메뚜기 전문가인 B. 발라드 박사는 “메뚜기 떼는 날개가 발달하기 전에도 떼를 지어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언덕, 바위, 벽을 거침없이 기어오르고 넘어가는데 구덩이나 호가 있으면 선두 대열이 엎드려 구덩이를 메우고 뒤에 오는 메뚜기들이 마치 평지처럼 그 선두대열을 밟고 넘어갑니다. 수로와 강물은 헤엄쳐서 건너는데, 수에즈운하를 떼 지어 건너기도 합니다. 드디어 날개가 다 성장하면 온 하늘을 시커멓게 뒤덮으며 날아오릅니다”라고 말한다. 드디어 날아오른 메뚜기 떼는 바람을 타고 하루에 200㎞ 정도 날아가는데 계절풍을 탈 경우 해발 2000m 정도의 산도 가볍게 넘어 진군한다.

아프리카에는 메뚜기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 그런데 올해처럼 엄청난 메뚜기 떼는 70년 만에 처음일 정도로 이례적이다. 기후 전문가들은 지난해 12월 소말리아 앞바다에서 발생한 강력한 열대성 저기압인 사이클론을 주범으로 본다. 아라비아 반도 남쪽 지역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사막메뚜기 떼가 급속히 번식하고 창궐했다. 순식간에 메뚜기 떼의 대군단이 만들어졌고 이 메뚜기 떼가 아라비아 반도를 건너 아프리카로 가면서 아프리카에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된 것이다. 메뚜기는 비가 많이 내리면 순식간에 번식을 한다. 비가 내려 풀이 많이 자랄 것을 인지하여 번식에 돌입하는 것이다. 문제는 번식한 메뚜기 떼가 비가 덜 내리는 기상조건으로 변하면 메뚜기가 스스로 적응을 한다. 즉 이 지역에서는 먹을 것이 없으므로 먼 곳을 날아갈 수 있도록 날개가 발달하면서 무리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평상시의 기후가 아니라 이상기후가 재앙적인 메뚜기 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메뚜기 떼의 창궐과 피해

올해 2월에 세계의 많은 언론들이 사막메뚜기 떼에 대한 보도를 시작했다. 세계가 코로나19로 중병을 앓고 있는 가운데 때아닌 메뚜기 떼가 동아프리카와 중동, 인도와 파키스탄을 거쳐 중국으로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메뚜기 떼가 지나간 지역은 풀 한 포기도 남지 않는 황폐한 지역으로 변해 있었다. 2019년 말에 아프리카에 상륙하며 식량난을 초래한 사막메뚜기 떼는 2020년 초에 케냐와 소말리아, 에티오피아를 거쳐 한 달 만에 우간다까지 그 기세를 키웠다. 메뚜기 떼가 창궐했던 지역인 케냐,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등의 동아프리카 지역은 분쟁이 심한 지역에다가 식량부족으로 가장 고생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이 지역을 메뚜기 떼가 덮치면서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말았다.

동아프리카를 싹쓸이한 메뚜기 떼는 중동을 강타했다. 중동은 봄철이 수확기이다 보니 피해가 엄청 컸다. 메뚜기 떼들의 왕성한 식욕으로 주위에 풀 한 포기 없을 정도로 황폐해져 올해 먹을 식량이 순식간에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세계식량기구에 따르면 이 메뚜기 한 떼가 하루에 8800인분의 농작물을 먹어치운다고 한다. 파키스탄은 국가비상 상황에 돌입했는데, 숫자가 엄청나다 보니 메뚜기 떼가 하늘을 날 때는 하늘이 컴컴해지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1월 에티오피아에서는 엄청난 수의 메뚜기 떼가 시야를 가리는 바람에 여객기가 이착륙을 하지 못하고 다른 공항으로 이동하기도 했다. 메뚜기 떼의 피해를 입은 나라는 예멘과 케냐, 소말리아, 에티오피아, 우간다, 탄자니아, 수단 등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파키스탄, 인도까지 늘어났다. 인도의 경우 농경지 555만㏊가 초토화돼 약 170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고 케냐는 105만㏊의 농경지가 황무지로 변했다.

예전에 메뚜기 떼는 주로 아프리카의 동북부 지방에서 만들어져 요르단,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겨울을 보낸 다음 이듬해 봄부터 이동하기 시작해 이라크를 습격한다. 그 후 초가을까지 이라크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초토화하고 나서 9월이 되면 다시 아프리카로 되돌아가는 이동 경로가 가장 많다. 그런데 이번의 경우에는 더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을 거쳐 중국까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세계식량기구는 예측했다. 중국 재정부는 메뚜기 등 해충의 예방과 통제를 위해 약 2767억 원의 긴급 예산을 배정했고, 2월 16일에 농가에 메뚜기 떼 주의보를 발령했고 21일엔 전문가로 구성된 퇴치팀을 파키스탄에 파견했다. 중국의 국제방송 CGTN은 “4000억 마리의 메뚜기 떼가 중국으로 접근하면서 비상사태에 대비해 10만 오리부대를 모집하고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오리는 닭보다 식성이 좋아 메뚜기를 많이 잡아먹는데, 메뚜기 퇴치를 위해 훈련된 오리는 한 마리가 단숨에 400마리 이상을 먹어치운다고 한다. 2000년에 신장자치구에 메뚜기 떼가 창궐해 380만㏊에 피해를 입히자 70만 마리의 오리와 닭을 동원해 진압한 적이 있다.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반기성 케이웨더 예보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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