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왕구 병영칼럼] 평평한 지구와 유사과학

입력 2020. 08. 07   15:32
업데이트 2020. 08. 07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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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왕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무인 이동체 사업단장
강왕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무인 이동체 사업단장


현대의 우리는 지구가 둥근 공 모양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식을 믿지 않는 ‘평평한 지구’의 신봉자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지구가 평평한 원반 형태라며, 지구 원반의 중심에는 북극이 있고 가장자리에는 남극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지구는 남극의 빙벽으로 빙 둘러싸여 있다는 것입니다. 평평한 지구 신봉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유엔 깃발을 들기도 합니다. 유엔의 깃발에는 중앙의 북극을 중심으로 5대양 6대주가 배치돼 있습니다.

평평한 지구를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는 육안으로 지구의 곡면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인 고대나 중세에는 이러한 주장은 상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지식이 발달함에 따라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논리적으로 추론한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리스의 천문·지리학자 에라토스테네스(BC 276~194)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이집트 아스완에서는 하짓날 정오가 되면 우물물에 해가 비치어 보인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에 흥미를 느낀 에라토스테네스는 이집트보다 한참 북쪽인 그리스에서 하지 정오에 막대기를 수직으로 세워 그림자를 확인했습니다. 만약 이집트의 기록이 진실이고, 지구가 평평하다면 그리스에서도 그림자는 나타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날 그리스에서는 수직으로 꽂은 막대기에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보통사람이라면 이집트의 기록이 잘못됐다고 결론을 내렸겠지만, 에라토스테네스는 이를 보고 지구가 평면이 아니라 둥근 공 모양임을 추론해 냅니다.

이후 그는 수학적 지식을 이용해 지구의 둘레를 계산해 냅니다. 그의 계산 값은 현대 측정치와 오차가 15%정도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정확했습니다. 이후 에라토스테네스의 주장은 마젤란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가로질러 세계 일주에 성공함으로써 드디어 실증됩니다. 물론 1961년 유리 가가린이 최초로 우주에서 지구를 관측해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함으로써 이 모든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말입니다.

평평한 지구론을 신봉하는 이들은 최근 북극을 횡단하는 항공기는 많지만 남극을 횡단하는 항공기는 전혀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습니다. 남극의 빙벽이 항공기들이 지나가는 것을 막는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민항기들의 실시간 비행 경로를 보여주는 플라이트레이더24와 같은 사이트를 보면 남극을 가로질러 비행하는 항공기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민항기들이 남극을 가로지르지 않는 이유는 사실 다른 데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민항기 안전규정인 ETOPS 때문입니다. 민항기는 안전 때문에 두 개의 엔진 중 하나가 고장 날 경우 일정 시간 내에 착륙할 수 있는 비상공항이 있어야 합니다. 남극에 비상공항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천문학적인 비용도 소요됩니다. 이 때문에 민항기들은 남극을 가로지르지 않습니다.

유사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이나, 직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을 신봉합니다. 하지만 과학은 눈에 보이는 사실 너머를 봅니다. 우리 인류가 둥근 지구가 태양을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후 하늘을 날게 되고 우주로 진출하게 된 배경에는 직관이 아닌 이성을 추구한 과학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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