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석규 병영칼럼] 말귀가 어둡다고요?

입력 2020. 07. 31   16:24
업데이트 2020. 08. 02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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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규 광고콘텐츠 컴퍼니 쉐어스팟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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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창 모임을 가기 위해 친구 차를 얻어탔다.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에 목적지를 입력하려 애쓰는 친구에게 요즘 누가 그렇게 하냐며 “○○야, 어디 가자” 하고 말로 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신기한 표정으로 이것저것 말을 붙여보더니 이 친구, 장난기가 발동한다. “○○야, 나 좋아해?” “다 알면서 물어보시는 거 알아요, 그래도 대답해 드릴게요. 저도 좋아해요~”. 박장대소를 하던 친구가 짓궂게 욕을 던진다 “○○야, XXX.”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너무 속상해요.” 미안했던지 이번엔 이렇게 말을 건넨다. “○○야, 사랑해!” “강아지 털처럼 부드러운 그 말이 좋아요~.” 한참을 인공지능 내비게이션과 장난치던 친구는 ‘말귀 못 알아듣는 사람보다 낫네!’라며 싱긋 웃는다.

기계가 사람 말을 알아듣는 시대다. 때론 오작동도 있지만, 기계가 말을 알아듣고 반응을 한다. 그런데 정작 사람이 하는 말을 사람이 알아듣기는 여전히 어렵다.

오죽하면 일상적으로 하는 말 속에도 그런 어려움에 대한 표현들이 그토록 많을까? ‘그게 무슨 말이야?’, ‘도대체 말이 안 통하네’, ‘도통 이해가 안 가’, ‘그게 말이 되냐’, ‘말이야 방구야’…. 말을 하는 사람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상대방을 힐난하고, 말을 듣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냐며 말 좀 제대로 하라고 불평한다. 소통하자는데 불통이 자꾸 이어지니 서로 답답할 수밖에 없다.

‘허위 합의 효과(false consensus effect)’라는 게 있다. 다른 사람도 나와 다 비슷할 걸로 생각하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현상이다. 자기 말이나 생각, 행동이 실제보다 더 보편적이라고 여기는 인간의 ‘자기 중심성’이 낳은 오류다.

그런 까닭에 사람들은 말할 때 자기 관점에서 말하고 당연히 자기 생각처럼 상대도 이해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러면 듣는 사람은 어떨까? 역시 자기 관점에서 상대의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게 반응한다. 이러다 보니 같은 입장이 아니라면 결국 완벽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언젠가 강원도 양양으로 여행을 위해 차를 몰던 중 지루해하는 아내와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이제 양양까지 30㎞ 남았어.”

“나는 그렇게 말하면 몰라.”

“그럼 어떻게 말해야 알아?”

“조금만 가면 돼, 이렇게 말해야지.”

나는 30㎞라고 하면 얼마 안 남았다고 이해할 거라 생각했지만, 아내가 가진 거리의 개념과 달랐던 모양이다.

부처의 설법은 하층민도 바로 알아들을 정도로 쉬웠다고 한다. 제자들의 권고와는 달리 설법 때 바라문 귀족어 산스크리트어(범어)가 아닌 세속어 프라크리트(방언)를 썼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상대방 관점에서 이야기했기에 완벽한 소통이 가능했다.

말귀를 알아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잘 말하는 것 역시 쉽지 않다. 타인의 관점, 상대의 입장으로 자꾸 빙의해 보는 것, 그를 통해 타인의 관점과 입장을 내 안에 지니는 것, 그 방법이 아니면 불통의 고통은 계속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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