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순 한 주를 열며] 상반기를 보내며

입력 2020. 06. 26   16:03
업데이트 2020. 07. 24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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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고 순 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
독고 순 한국국방연구원 부원장


6월의 마지막 주이자 7월이 시작되는 주다. 원래대로 하면 이즈음은 대부분 조직이 전반기 성과를 평가하고 후반기 계획을 점검해보는 시기인데, 올해는 계획대로 성과를 낼 수도 없었고, 상당히 많은 계획은 이미 초기부터 수정이 불가피했다. 연초에 많은 계획을 세웠지만, 코로나19가 우리를 멈춰 세웠다.

독일 철학자 한병철은 그의 책 『피로사회』에서 현대 사회를 성과사회라 지칭하면서 과잉생산·과잉가동·과잉커뮤니케이션이 초래하는 과다에 따른 소진·피로·질식을 지적했는데, 현대 사회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화제를 일으킨 바 있다.

특히 그는 성과사회의 억압 기제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면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강압적 규율에 복종하기만 하는 대상이 아니며 스스로 주권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강제에 몸을 맡기고 과다한 노동과 성과를 향한 자기 착취에까지 이르게 된다고 했다. 자기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을 동반하기 때문에 타자의 착취보다 더 효율적인데,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이라고 했다.

글쎄, 그의 말대로 우리가 자유롭다는 느낌을 가지고 자신을 착취하는지, 생존의 최저선 혹은 적정선을 확보하기 위해 경제적·실존적 억압 구조를 단지 견디고 있는지, 둘 다인지는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지만, 어떻든 우리 사회가 성과의 구조를 기본으로 해 제도와 운영이 짜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성과를 연 단위로, 월 단위로, 점점 더 짧은 기간으로 측정하고자 하고, 영화든 맛집이든 각종 서비스에도 별점을 부과한다. 이에 맞춰 업무와 성과의 배분은 더 정교하게 이루어지고, 이로 인해 아파도 꾹 참고 다시 정신 차려 일하게 된다. 힘들더라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며 부지런히 뛰어다닌다. 성과를 향한 강도 높은 실천을 마다치 않는다. 자발적으로든 비자발적으로든.

그렇게 열심히 살다 우리는 갑자기 멈춰 섰다. 새로운 사태를 맞아 우리가 살아온 방식을 강제로 돌아보고 있다. 어떤 일에 앞서 이것이 꼭 해야 하는 일인지 질문한다. 회의도 출장도 회식도 여행도 모든 여분의 것이 절제되고 필수인지 아닌지를 따져본다.

차제에 멈춰 서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다시 숙고해보고 좀 더 나은 세상을 꿈꿔볼 필요가 있겠다. 물론 한편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원격근무가 가능한 전문직, 관리직 노동자, 필수적인 일을 해내는 노동자 그리고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잊힌 노동자와 같이 새로운 방식으로 계급을 나누고 있고, 이로 인해 사회적 불평등은 더욱 심화하리라는 지적이 있어 우려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워라밸이나 더불어 잘사는 삶과 관련된 많은 제도적 권장도 큰 진척을 이루지 못했던 일을 이번에 여럿 경험하기도 했으므로, 이 기회를 통해 좀 더 나은 지향점을 찾게 됐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리고 그때는 성과가 아닌 삶이 목표가 되고, 사회적 약자들이 포용돼 모든 사회 구성원이 더불어 삶을 누릴 수 있는 그런 사회로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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