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병영칼럼] ‘당연했던 일상’의 그리움

입력 2020. 03. 25   16:17
업데이트 2020. 03. 25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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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진 호 
월간 ‘루키 더 바스켓’ 편집장
박 진 호 월간 ‘루키 더 바스켓’ 편집장


평소와 다름없는 주말이었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다가 문득, 익숙지 않은 이질감에 당황했습니다. 주말 내내, 스포츠 중계를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포털 사이트의 중계도 없었습니다. 어디를 찾아봐도 재방송과 하이라이트뿐이었습니다. 스포츠가 사라졌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스포츠가 멈췄습니다.

주말 내내, 스포츠 중계를 단 한 경기도 보지 않은 적이 얼마 만일까? 머지않은 과거 어느 한때 스포츠 중계 없이 보낸 시간이 분명 존재할 겁니다. 놀러 다니다가 못 봤거나, 다른 짓을 하다가 놓쳤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탓에 여행 중이어서 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음에도 스포츠 경기를 보지 못한 채 이토록 긴 시간을 보낸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대입 수험생이었던 1995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집에 고3 수험생이 있으니, 공부에 방해될 수 있어서 우리도 TV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마음 편히 TV 리모컨을 손에 쥘 만큼 무모하거나 용감하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넷 중계 같은 것은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이었으니, 아마도 제가 지금처럼 오랫동안 스포츠 중계를 보지 못했던 것은 이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25년 만에 온전히 스포츠 없는 주말, 스포츠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고등학생 시절에는 신문이나 라디오를 통해 경기 결과라도 확인했으니, 정말로 ‘아무것도 없는 시간’을 보내는 지금이 더 큰 공허함을 주는 것 같습니다.

결국, 농구와 배구의 시계는 멈췄습니다. 여자 농구가 지난 20일 시즌 종료를 선언한 것을 시작으로 남녀 배구, 남자 농구가 모두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치열하게 진행되던 한 시즌이 용두사미가 되며 파행으로 끝나버린 결과지만, 그 이상의 답을 찾기도 어려웠을 상황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직업,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관심 밖인 이벤트. 그렇게 존재했던 스포츠는 저에게 일상 그 자체였고, 당연하게 자리하던 것이 사라진 ‘균열된 일상’은 비어있는 시간의 허무함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스포츠 언론 종사자로서는 무언가를 심각하게 도둑맞은 느낌,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무력감도 듭니다.

언제든지 국내외 스포츠를 시청하고, 그것과 관련된 글을 쓰며 주변과 소통하던 그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절실히 느낍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졌던 당연한 일상이 항상 당연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고작 스포츠 하나 멈췄을 뿐인데, 저는 제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려왔던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그 일상을 얼마나 감사했어야 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작은 것 하나부터 소중히 여길 수 있는 마음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할 수 있는 새봄을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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