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영 병영칼럼] 코로나19 때문에

입력 2020. 03. 17   13:56
업데이트 2020. 03. 1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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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임재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코로나19 때문에 우리의 일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과격하게 말하면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맘껏 누리며 살아왔던 것들을 이제는 누릴 수 없게 됐습니다. 만만한 데이트 장소였던 극장도, 가끔 사치를 부리던 공연장도, 소리치며 응원했던 경기장도 이젠 서슴없이 갈 수 없게 됐습니다.

번지 점프나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들을 단단히 마음먹어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고 바로 손을 씻어야 하고, 집 앞 슈퍼에 나가면서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외출하기가 이래저래 귀찮아졌습니다. 산책이나 등산을 가서도 반대편에서 누군가 다가오면 마스크를 고쳐 써야 합니다. 가족이 아닌 타인과 마주하는 게 꺼림칙해졌습니다. 고향에 계신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조용해지면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기차로 2시간이면 닿을 곳이 한없이 멀게만 느껴집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환장할 노릇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한 달만 참으라고 하면 참을 수 있습니다. 딱 두 달만 견디자고 하면 견딜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약이 없습니다. ‘언젠가는 끝나겠지’라며 위로해 보지만, 곧 ‘언젠가가 도대체 언제일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게 다 코로나19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의 일상과 우리의 마음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답답하고, 막막합니다. 억울하고, 우울합니다. 마음의 배터리는 곧 방전될 것 같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마음에도 방역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 제 나름의 대처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당연히 누렸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아무렇지 않게 했던 일들이 실은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아차리는 겁니다.

집을 떠나거나 가족을 떠나서야 또는 연인과 헤어지거나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고서야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왜 그때 더 잘해 주지 못했을까? 왜 그때는 소중함을 몰랐을까? 잃고 나서야 우리는 알아차립니다. 그 시간의 가치와 그 사람의 빈자리를. 코로나19 사태도 마찬가집니다. 은연중에 영원할 거라 믿었던 것들이 사라지고 나니 그것들의 소중함이 살아나는 것이죠.

오늘도 추가 확진자 소식이 들립니다. 오늘도 마스크 사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전 그때를 되돌아봅니다. 코로나19가 없어서 자유로웠던 그때를. 그날의 소중함을 곱씹어 봅니다. 코로나19가 없어서 서슴없이 어울렸던 사람들과 함께 채웠던 시간을. 그러면 답답한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리고, 초조한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됩니다. 저는 오늘도 당연한 줄로만 알았던 것들의 소중함을 떠올립니다. 지코의 ‘아무 노래’는 아무것도 아닌 노래가 아님을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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