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 영웅들 헌신 잊지 않겠습니다”

입력 2019. 10. 07   17:15
업데이트 2019. 10. 07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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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록수부대 순직장병 추모식 
 
2003년 임무수행 중 5명 급류 휩쓸려
국방대표단, 교민·주민과 추모탑 헌화
순직장병과 함께 근무한 전우들 눈시울
“양국 평화·번영에 영원히 함께할 것” 
 
6일(현지시간) 동티모르 오에쿠시주의 상록수부대 순직장병 추모탑에서 열린 순직장병 추모식에 참석한 이석구(육군중장·오른쪽 둘째) 국방대학교 총장, 육군특수전사령부 서영만(준장·오른쪽 셋째) 참모장 등 장병들이 거수경례로 순직자들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맨 오른쪽은 이친범 주동티모르 대한민국 대사.   동티모르 오에쿠시=조종원 기자
6일(현지시간) 동티모르 오에쿠시주의 상록수부대 순직장병 추모탑에서 열린 순직장병 추모식에 참석한 이석구(육군중장·오른쪽 둘째) 국방대학교 총장, 육군특수전사령부 서영만(준장·오른쪽 셋째) 참모장 등 장병들이 거수경례로 순직자들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맨 오른쪽은 이친범 주동티모르 대한민국 대사. 동티모르 오에쿠시=조종원 기자

어림잡아도 수백 년은 된 듯한 수호목 아래 원석을 다듬어 세운 추모비. 선선한 건기의 봄바람과 청량한 파도 소리가 해변의 추모비를 감싸고 있었다. 한가운데 베레모를 쓴 한국 군인 5명의 얼굴이 동판 부조로 새겨진 이 추모비 앞에 지난 6일 우리 국군을 대표해 찾아온 국방대표단(단장 이석구 국방대 총장)이 자리했다. 불의의 사고로 먼저 세상을 떠난 전우들을 기억하기 위해 13시간의 비행과 7시간의 차량 이동을 감수하며 찾아온 이들의 얼굴에는 엄숙함을 넘어 비장함까지 감돌았다.

추모탑 속 얼굴들은 지난 2003년 3월 6일 상록수부대 7진으로 동티모르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에카트강 급류에 휩쓸려 숨진 고(故) 민병조·박진규 중령, 백종훈·김정중·최희 병장(순직 후 전원 1계급 특진)이다.

1지역대장이었던 박 소령(이하 당시 계급)과 지원대장 민 소령은 오에쿠시(Oecussi) 국경 소초의 발전기가 고장 났다는 보고에 예비 발전기를 가지고 에카트강을 건너다 차가 갑자기 멈추는 상황에 맞닥뜨렸다. 고장 난 차를 견인하던 사이 상류에서 갑자기 많은 물이 밀어닥쳐 민 소령과 운전병 백 상병이 강 중앙에 고립됐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박 소령과 김·최 상병은 급류에 휩쓸렸고 민 소령과 백 상병은 떠내려오는 통나무에 의지해 전우를 구하려다 모두 희생됐다. 이 가운데 김 상병은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한 상태다. 사고 직후 상록수부대는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고국이 보이는 바다를 향해 추모탑을 세웠다.

지난 6일 대표단은 오에쿠시주에 있는 상록수부대 순직장병 추모탑에서 순직장병 추모식을 열고 이들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기렸다. 추모식에는 대표단은 물론 이친범 주동티모르 대한민국 대사와 우리 교민, 동티모르 정부·군 관계자, 현지 주민·학생 등 400여 명이 자리했다.

이 대사는 기념사에서 “사고 직후 세워진 추모탑은 상록수부대원들과 현지 주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것”이라며 “16년 동안 추모탑을 잘 관리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 특히 국방부는 동티모르와 오에쿠시주를 사랑한다”며 “한국 정부는 앞으로 동티모르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상록수부대 2진 민사과장으로 근무했던 이석구 총장은 희생자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이들의 헌신을 기렸다. 그는 “오늘 순직장병들에게 당신들이 흘린 피와 땀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릴 수 있어서 매우 기쁘다”고 강조했다. 이 총장은 “두 나라의 평화와 번영의 길에 여러분이 함께할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힌 뒤 “몸은 비록 떨어져 있더라도 순직장병들을 생각하는 대한민국의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추모사를 마무리했다.

 동티모르 전통 방식의 헌화와 초를 이용한 분향에 이어 대표단은 순직장병을 향해 경례와 묵념을 하며 전우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특히 이 총장은 동판에 새겨진 전우들의 얼굴을 만지며 감사와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헌화를 마친 대표단과 현지 주민들은 바다를 향해 형형색색의 꽃을 뿌리며 고인들의 넋을 달랬다.

 민 소령의 동기이며 2001년 개인 파병을 통해 유엔군 소속으로 동티모르에 근무했던 육군특수전사령부 서영만(준장) 참모장은 "장렬히 산화한 동기를 뒤늦게라도 추모할 수 있어 가슴 뭉클하다"고 말했다. 순직장병과 함께 근무했던 특전사 김동연 중령(진)은 "아직도 한국에 같이 가지 못한 김 병장이 매우 그립다"는 애틋한 소감을 전했다.

 엄숙한 추모식이 끝난 뒤 상록수부대가 남기고 간 흔적인 오에쿠시 태권도장 소속 청소년들의 시범이 이어졌다. 흰 도복을 입고 자리에 선 청소년들은 현지 사범의 한국어 지휘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태권! 태권도! 국기 태권도!"라는 우렁찬 기합과 함께 품새·대련·격파 등을 선보이는 이들의 모습은 절도 있고 날쌘 태권도인 그대로였다. 시범을 마친 이들은 이 총장을 비롯한 ‘군인 아저씨들’의 다정한 인사에 다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로 돌아가 기념사진을 찍으며 활짝 웃었다. 행사는 상록수부대가 뿌린 씨앗이 동티모르의 미래를 지탱할 나무로 자라나는 현장을 목격한 대표단과 주민들이 함께 어우러진 축제의 장으로 마무리됐다.

동티모르 오에쿠시=맹수열 기자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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