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 100년의 역사 되새기며 천년 미래 이끌 호국간성으로

입력 2019. 08. 25   14:00
업데이트 2019. 08. 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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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사관생도 중국 항일독립운동 전·사적지 현장탐방 동행



육사 정진경(중장) 학교장이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마련된 김구 선생 흉상 앞에서 생도들에게 김구 선생의 생애와 주요 업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육사 정진경(중장) 학교장이 충칭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 마련된 김구 선생 흉상 앞에서 생도들에게 김구 선생의 생애와 주요 업적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육사) 77기 3학년 생도들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발자취와 순국선열의 숨결을 좇아 중국 항일독립운동 전·사적지를 찾았다. 올해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복원을 맞아 국가관과 애국심·역사의식을 고취하고, 독립군·광복군의 호국정신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안보 수호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다. 지난 16일부터 21일까지 생도들은 상하이(上海)를 시작으로 항저우(杭州), 난징(南京), 충칭(重慶)까지 약 4000㎞에 달하는 임정 청사의 이동 경로를 따라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선열들이 남긴 역사의 흔적을 마주하며 그들의 숭고한 희생과 독립정신을 되새겼다. 이번 탐방에는 정진경(중장) 학교장이 동행, 힘을 더했다. 40도 안팎의 폭염도 꺾지 못한 배움의 열정으로 가득 찬 생도들의 여정을 밀착 취재했다.  글·사진=김민정 기자  


중국 하이옌(海鹽)에 있는 김구 선생 피란처였던 ‘재청별장’을 찾은 육사 이윤병(중령·진·오른쪽 둘째) 훈육관과 생도들이 피란처와 전시관을 살펴본 후 학술토의를 하고 있다.
중국 하이옌(海鹽)에 있는 김구 선생 피란처였던 ‘재청별장’을 찾은 육사 이윤병(중령·진·오른쪽 둘째) 훈육관과 생도들이 피란처와 전시관을 살펴본 후 학술토의를 하고 있다.

   

임정 100년 발자취를 따르다


지난 16일 정오 무렵, 인천공항에서 약 2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곳은 중국 상하이. 본격적인 탐방은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 루쉰 공원(옛 훙커우 공원)에서 시작됐다.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일왕의 생일과 승전을 축하하는 행사에 참여한 일제 군부와 정·관계 인사에게 수통형 폭탄을 투척해 7명을 처단한 장소다. 공원길을 따라 약 10분간 걸으니 약 66㎡ 크기의 정자 형태 2층 목조 건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바로 윤봉길 의사 기념관 ‘매헌’이다. 기념관 앞 광장 왼쪽 옥외전시관에는 윤 의사의 전언, 출생 및 국내 활동, 망명, 의거 등의 내용이 정리돼 있고, 1층에는 추모 흉상과 의거 성과·영향 등을 전시해 놨다. 이곳에서 정 학교장과 생도들은 헌화와 묵념을 하며 윤 의사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헌신을 기렸다. 2층은 영상물 상영과 교육 장소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화려한 쇼핑몰과 레스토랑, 카페 등이 즐비한 상하이 거리를 걷다 보니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바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한 청사다. 상하이는 1919년 3·1운동을 거치면서 다수의 독립 운동가들이 이주해 활동했던 독립운동의 거점이었다. 일제의 감시를 피해 활동할 수 있는 조계지(영국·미국·프랑스)가 형성돼 있었기 때문. 그중 자유·평등을 지향하는 프랑스 조계는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기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었다. 이곳에서 생도들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설립과 역할, 주요 활동 등을 학습하고, 독립을 향한 선조들의 열망을 몸소 체험했다.

지난 17일 육사 3학년 생도들이 자싱(嘉興)에 위치한 김구 선생 피란처 ‘매만가 76호’를 찾아 2층 침실 마룻바닥에 만들어 놓은 비상탈출구를 살펴보고 있다.
지난 17일 육사 3학년 생도들이 자싱(嘉興)에 위치한 김구 선생 피란처 ‘매만가 76호’를 찾아 2층 침실 마룻바닥에 만들어 놓은 비상탈출구를 살펴보고 있다.


김구 선생의 숨결을 느끼다


 17일과 18일 생도들은 김구 선생의 행적을 본격적으로 좇았다. 윤 의사 의거 후 선생은 일제의 검거를 피해 몇 곳에 은신처를 두고 수시로 옮겨 다녔다. 자싱(嘉興)에 위치한 피란처 ‘매만가 76호’와 하이옌(海鹽)에 있는 ‘재청별장’에서 생도들은 선생의 피란 시기 생활상을 마주했다. 2층짜리 목조건물인 매만가 76호는 1층은 접견실 겸 식당, 2층은 침실로 재현해 놨는데, 선생이 사용하던 것과 같은 형태의 침대와 옷장이 전시돼 있다. 특히 2층 한쪽 구석 마룻바닥에 있는 나무로 만든 비상탈출구가 인상적이었다. 선생은 일제의 수색을 피해 이곳 비상구를 통해 1층으로 내려가 배를 이용해 호수로 피신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생도들은 험난했던 피란 과정을 실감했다. 이곳을 찾는 이가 적은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

송하담 생도는 “방문객을 찾기 힘들고, 간혹 마주치는 사람은 한국인이 전부라 아쉽다”며 “군인이라면 반드시 보고 느껴야 할 것들이 많이 있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임정 항저우 청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청사는 중국의 유명한 호수인 서호 근처에 있는데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 없는 서호와 대조적으로 한산해 씁쓸함을 자아냈다. 2007년 공식개관한 이곳은 2012년 한국 독립기념관과 협조해 전시실 내용을 보완, 그해 11월 재개관했다.

이곳에서 먼저 영상물을 시청한 생도들은 전시실 곳곳을 둘러보며 청사 이주 배경을 살펴보고, 항저우 시기 임정 사무실과 거주지 모습을 눈에 담았다.

권오성 생도는 “임정 관련 영상물에 한국어가 나오는 것이 놀라웠다. 이는 중국이 한국 역사 속 독립운동과 항일운동을 가치 있게 평가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많은 한국인이 이곳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육사 3학년 생도들이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2층에 마련된 전시관에서 게시된 사진물을 통해 한국광복군 창설 후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군복을 살펴보고 있다.
육사 3학년 생도들이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2층에 마련된 전시관에서 게시된 사진물을 통해 한국광복군 창설 후 자체적으로 디자인한 군복을 살펴보고 있다.


김구 선생의 그릿정신을 배우다


탐방 일정의 절반을 넘어선 넷째 날 생도들은 임정의 발자취를 따라 중국 내륙 쪽으로 더 들어갔다. 항저우에서 난징까지 버스로 약 4시간 30분이 소요됐다.

생도들은 이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 버스 안에서는 학교장과 생도들이 함께하는 학술토의가 진행됐다. 정 학교장은 생도들이 탑승한 3대의 버스에 순차적으로 올라 이른바 ‘임정로드’를 주제로 생도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공감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지훈 생도는 “상하이 곳곳에서 마주한 선열들의 모습은 잊을 수가 없다”며 “선열들의 길을 따라 조국을 수호하는 호국간성으로 성장하겠다”고 밝혔다. 곽동헌 생도는 “독립운동에 대한 선열들의 열망을 몸소 느꼈고 그들의 뜨거운 조국애에 가슴이 벅찼다”는 소감을 전했다.

특히 이날 정 학교장은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수준 높은 강연을 펼쳐 호응을 얻었다. 정 학교장은 “임시정부 길을 따라오면서 김구 선생은 그릿(GRIT, 불굴의 의지) 정신의 삶을 이어온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내며 그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도 역시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결심하고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며 “나 역시 어려움이 오면 조국이 나를 원할 때 망설임 없이 주저 없이 그 길을 가겠다고 생각했다. 생도들도 그릿 정신을 바탕으로 힘들고 어렵겠지만 올바른 길을 가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난징에 도착해서는 항일항공열사공묘를 찾았다. 공묘는 중국이 1932년 상하이전쟁에서 전사한 공군을 안장하기 위해 조성한 묘원이다. 이곳에 안장된 전사자 중 2명은 한국인이다. 전적비 주변에 선 빗돌엔 나라별 희생자 명단이 새겨져 있는데, ‘한국 열사(韓國 烈士) 전상국(田相國), 김원영(金元英)’이라는 글귀가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이곳에서 생도들은 헌화 및 묵념하며 경건하게 참배행사를 진행했다.


지난 20일 중국 충칭(重慶)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찾은 육군사관학교 정진경(중장·맨 앞줄 가운데) 학교장과 3학년 생도들이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1940년 4월부터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기까지 이곳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현재 한국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전문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중 양국 국민이 공동으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
지난 20일 중국 충칭(重慶)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찾은 육군사관학교 정진경(중장·맨 앞줄 가운데) 학교장과 3학년 생도들이 태극기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1940년 4월부터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기까지 이곳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현재 한국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전문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한·중 양국 국민이 공동으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

 

중국 충칭서 광복의 감격 되새기다

  
이번 탐방의 마지막 목적지는 중국의 4대 직할시 중 하나로 인구가 3200만 명에 달하는 거대도시 충칭이다. 생도들이 향한 곳은 임정 마지막 청사이다. 김구 선생을 비롯한 임시정부 요인들은 1940년 4월부터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하기까지 이곳에서 활발한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현재 이곳은 한국 독립운동사를 연구하고 전시하는 전문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중국 정부로부터 충칭시 시급문물보호단위로 지정돼 있다. 또한, 충칭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유적지로 한·중 양국 국민이 공동으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저항했던 역사의 현장으로 보존되고 있다.

총 다섯 동의 건물이 있는데 당시 임정 청사 원형 그대로 복원했다. 그중 1호 건물은 임정 활동을 소개하는 전시실, 2호부터 5호 건물은 임정 요원 및 각 정부기구 사무실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이곳에서 생도들은 자발적으로 청사에 기부할 기금을 모아 이번 역사탐방의 의미를 더했다.


공식 개방을 앞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찾은 3학년 생도들이 결의식을 가진 뒤 ‘독립군가’를 제창하고 있다.
공식 개방을 앞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찾은 3학년 생도들이 결의식을 가진 뒤 ‘독립군가’를 제창하고 있다.

 
독립군가, 생도들 마음 울리다

다음 목적지는 충칭 시내 한복판에 자리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다. 1940년부터 1942년까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로 사용한 건물은 이미 헐렸으나,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충칭을 방문한 뒤 중국 정부는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여 원형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공사가 마무리돼 공식 개방을 앞두고 있다. 1층은 한국광복군 창설 과정과 역사, 군사활동 모습 등을 전시해놨고 2층은 총사령관실, 부사령관실, 참모장실, 회의실 등을 재현했다. 이번 탐방에 앞서 중국 정부에 공식 허가를 받은 육사는 국내 사관생도 최초로 이곳에 입성했다.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충칭에서 창설한 임정 첫 정규군이었다. 제1지대(대장 김원봉), 제2지대(대장 이범석), 제3지대(대장 김학규)로 개편한 뒤 각 지역에서 한인 사병을 모집했다.

미국 전략첩보기구인 OSS와 한미군사합동작전을 전개하는 등 임정의 국군으로서 독립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했으나 일제의 패망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생도들은 이곳에서 결의식을 갖고 독립군가를 제창하며 또 한 번 독립의 뜻을 되새겼는데, 그 당당하고 결의에 가득 찬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냈다.

이밖에 생도들은 중국 3대 박물관 중 하나인 난징박물관을 비롯해 삼협박물관, 인민대례당, 부자묘 거리, 남경 1912거리 등을 찾아 중국 역사와 문화, 현지인들의 생활 모습도 곳곳에서 마주했다.

육사 77기 동기회장 박준하 생도는 “가는 곳곳마다 역사의 현장이었기에 중국에 오기 전부터 많은 준비를 했다”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더 많이 보고 느끼기 위해 책을 사서 읽고 임시정부 관련 영상을 찾아보며 공부했다”고 탐방에 앞선 준비과정을 소개했다. 이어 “임정 청사를 직접 보니 가슴이 뜨거워지고,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며 “어렵고 목숨이 위태로웠던 시절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청춘과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를 보며 조국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함, 육사 생도로서 선배님들에 대한 존경, 선배님들처럼 목숨 바쳐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다짐을 잊지 않고 마음에 잘 새겨 미래 육군의 정예장교로 성장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김민정 기자 < lgiant6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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