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희정 문화산책] 방주교회와 손의 흔적

입력 2019. 08. 22   16:11
업데이트 2019. 08. 2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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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희 정 
상명대학교 박물관장
하 희 정 상명대학교 박물관장


지난 15일 ‘이타미 준의 바다’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았다. 배우 유지태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이 영화는 재일 한국인 건축가 유동룡(庾東龍)과 그의 건축에 관해 잔잔하게 설명한다. 비오토피아의 수(水)·풍(風)·석(石) 박물관 중에서 수(水) 박물관으로 시작되는 도입부는 ‘명상의 공간으로서 자연을 전시한 박물관’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계절·날씨·시간의 변화에 따라 생기는 바람, 빗방울 그리고 서서히 변해가는 그림자까지 더해져 마치 느림의 미학을 보고 있는 듯했다.

제주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산섬이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으로도 유명하다. 올여름 제주도를 찾았을 때도 비가 왔다. 다행히 폭우는 아니어서 오락가락하는 비 사이로 방주교회·본태박물관·이중섭미술관 등을 볼 수 있었다. 비오토피아의 수·풍·석 박물관은 예약이 차 있어서 아쉽게도 멀리 산방산만 바라보고 내려왔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무엇보다도 감명 깊었던 곳은 방주교회였다. 제주공항에서 차를 타고 1시간 정도 달리다 보면 서귀포시 안덕면 산록남로 762번길에 방주교회가 있다. 흡사 물 위에 떠 있는 배의 모습과도 같은 방주교회는 건축가 이타미 준 설계로 지어진 성전 건축물이다. 방주교회를 설계할 당시 “건물의 지붕이라기보다는 상부의 조형이 하늘과 어떻게 조응할지가 건축적 주제”라고 했다는데, 건축물 사방을 둘러싸고 있는 물을 바탕으로 삼각형의 수많은 모자이크와도 같은 지붕에 햇빛이 반사되는 모습은 정말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새로운 느낌을 주는 조각 같은 방주교회를 배경으로 우리 일행은 어느새 쉼 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아름다운 제주도 풍경과 함께 앞마당에 활짝 핀 수국까지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었다. 방주교회를 마주하면서 제주도의 자연과 일체화된 건축을 구축하기 위해 건축가가 얼마나 고심했는지 그리고 제주도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옷을 만드는 사람이다. 건축물을 짓듯이 옷도 짓는다는 표현을 쓴다. 만들어진 옷을 보면 그 옷을 지은 사람이 그 옷을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그리고 어떤 정성을 들였는지 보인다. 그 손길이, 손의 흔적이 느껴진다. 『손의 흔적』에서 읽었던 “내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건축을 매개로써 자연과 인간 사이에 드러나는 세계, 즉 새로운 세계를 보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이다”라는 글귀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하늘이 맑으면 맑은 대로 하얀 뭉게구름과 함께 더없이 찬란하게 빛났고, 흐리면 흐린 대로 하늘을 거스르지 않고 차분히 멈춰 서 있는 듯한 그리고 빛날 때를 기다리면서 묵묵히 지붕 역할을 다하고 있는 듯한 모습은 마치 자연과 대립하지 말고 조화를 이루면서 순응하는 자세를 배우라는 것 같았다.

내부 방문도 가능해 안으로 들어간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여서 행복하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어서 더 감사하다고. 그리고 이렇게 같이 오래도록 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 이렇게 추억의 편린을 만들고, 여름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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