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영 기고] 과학화전투훈련장에서 부르는 해병대 ‘전선야곡’

입력 2019. 08. 22   16:11
업데이트 2019. 08. 22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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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 영 
해병대1사단 멧돼지연대 73대대장·중령
이 인 영 해병대1사단 멧돼지연대 73대대장·중령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아 아 그 목소리 그리워.”

우리 대대는 올 전반기 육군의 ○○연대에 배속돼 과학화전투훈련에 참가했다. 위 문구는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선야곡’이라는 노래의 1절 가사로, 이번 훈련 간 본인의 머리에 떠올라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훈련 기간 중 소낙비가 내린 날이 있었는데, 그날 밤은 나뭇가지를 타고 밤새도록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강원도 산악지역의 예상치 못한 한기로 밤잠을 설쳤다. 다음 날 있을 2차 공격작전에 앞서 잠시나마 눈을 붙이려고 했으나 임무에 관한 복잡한 생각에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나도 모르게 ‘현재 상황이 실전이라면 어떠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대대장을 포함한 우리 해병대원들은 상급부대에서 부여한 임무를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광정면(廣正面)의 작전지역을 책임지고 공격작전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전투가 될 것이며, 내일이 오면 나와 나의 부하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이별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갑자기 고향에 계신 어머님과 포항에 남겨둔 아내와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나를 자연스럽게 전선의 밤에 몰입시키자 6·25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선야곡’의 노랫말은 참으로 진실한 서정시였다.

사실 우리 대대가 해병대를 대표해 과학화전투훈련 참가를 명 받았을 때 큰 부담감이 있었다. 해병대가 10여 년 만에 참가하는 이 훈련에서 잘하면 본전이고 못하면 해병대의 명예를 실추시킨 대대장이라는 꼬리표를 달까 봐 내심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전투에서 우리 해병들이 보여준 충성심과 용기, 전투 몰입도는 잠시나마 비겁했던 내 생각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나는 매우 운 좋은 대대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 실전을 경험하지 못한 지휘관이 대부분인 현실에서 이번 훈련은 비록 간접적인 경험이었지만, 500명이 넘는 대대 완편 병력과 50여 대에 가까운 차량을 열차에 탑재해 포항에서 작전지역으로 전개하는 장거리 부대 이동과 산악지역 전투 시 지휘통제 및 작전지속지원의 제한사항 등 전투수행 6대 기능 전반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편 지난 1, 2차 전투에서 조국과 해병대의 부름에 당당히 나아가 고귀한 희생을 감내하며 참호로 돌진해 목표를 확보하고 “도솔산 지구 전투의 재현”이라는 호평을 받은 우리 해병들에게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고, 같이 싸워준 육군의 용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주야간 동행한 관찰통제관과 대항군에게도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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