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전을 기억하며

입력 2019. 08. 13   15:42
업데이트 2019. 08. 13   16:05
0 댓글

김 명 수 상병 
아크부대
김 명 수 상병 아크부대


100년 전 우리나라에는 우리의 경찰과 군인이 아닌, 일제의 군인이 있었고 정의와 권리 대신 억압과 수탈만이 있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독립을 외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자유로운 대한민국을 당연시하며 ‘고난과 투쟁의 역사’를 점점 잊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내가 있는 이곳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열사의 땅 아랍에미리트(UAE)다. 아크부대원으로 중동의 사막 한가운데에서 임무를 수행한 지도 어느덧 5개월이 지나가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언어·문화 등 모든 것이 낯설고 어렵기만 했다.

차츰 처음의 낯섦이 익숙함으로 변하며 지난 5개월 동안 부대는 세 번의 단독훈련과 한 번의 연합훈련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국내진공작전을 위해 미국 전략 사무국과 합작해 훈련을 했던 한국광복군은 어땠을까?’ 물론 지금 아크부대의 모습과 상황은 그 시절과는 다르다. 하지만 타지에서 언어도, 문화도 다른 외국군과 훈련을 해보니 ‘그 당시 한국광복군이 독립을 위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훈련하고 싸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들의 고난과 역경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독립운동은 한 단체의 산물이 아닌 대한인 모두의 노력이었다. 한국광복군 이외에도 대한인 공립협회, 신민회, 서북학회, 조선유학생학우회, 송죽회 등 지금은 이름도 생소한 수많은 독립단체가 국내외에 조직돼 항일운동을 펼쳤다. 누군가는 총과 검을 들고, 누군가는 태극기를 들고, 누군가는 펜을 들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일제에 맞서 싸웠고 조국의 독립을 외쳤다. 현재의 우리로서는 상상도 못할 열악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들은 조국의 독립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정진했다. 지금의 시선에서 ‘용기 있는 투사’인 그들은 그 시절 1%의 가능성만을 보고 달렸다.

“임진년에 의병이었던 자의 자식들은 을미년에 의병이 되죠.”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나오는 대사다. 당시 대한인들의 독립에 대한 의지와 애국심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숭고한 이들의 모습을 보며 ‘만약 나였다면 독립을 위한 투쟁을 할 수 있었을까’ 자문해 봤다. 나에게는 꽤나 어려운 질문이었고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보다 필요한 것은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는 것이다.

1945년 8월 15일 광복되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보낸 평범한 하루는 독립투사들이 쟁취한 찬란한 자유의 모습이다. 그들은 역사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 속에서 함께 살아 숨 쉬어야 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고 미래가 있다. 자유를 되찾은 지 74년, 다시 한 번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국민으로서 권리를 누리며 살 수 있게 됐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되새겨봤으면 한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0 댓글

오늘의 뉴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