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리포트] 폴란드, 커지는 러시아 안보위협 대비하려는 자구책

입력 2019. 06. 14   14:43
업데이트 2019. 06. 16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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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왜 폴란드는 ‘트럼프 기지(Fort Trump)’를 세우려 할까?


러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무혈점령에 충격
NATO에 자국 안보 맡길 수 없다 판단
발트지역 위기사태 대비 영구적 미군기지 희망
미군 주둔 20억 달러·무기구입 25억 달러 제안
화웨이 축출 공동전선 합의 적극적 친미 행보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6월 12일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을 계기로, 폴란드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을 딴 영구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방안이 구체화되고 있다. 실제로 기지 건설이 완료되기까지 변수가 남아있으나, 한때 소련이 주도하는 군사동맹체제인 바르샤바조약기구(WTO)의 일원이었던 폴란드가 20억 달러의 건설비용을 자발적으로 부담하면서까지 자국 영토에 미국 대통령의 이름을 딴 군사기지를 세우려는 구상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트럼프 기지’ 구상의 배경에는 점증하는 러시아의 위협이 자리 잡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회원국으로서 유사시 집단방어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폴란드가 거액의 예산을 쏟아부으면서 별도의 미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러시아 발트 3국 침공시 60시간 이상 버텨낼 수 있을까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무혈점령에 성공한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대륙에서 강제적 영토변경이 이뤄진 최초의 사례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소련 붕괴로 ‘적(enemy)’이 사라졌다고 판단(또는 오판)해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안일한 분위기 속에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유럽국가들에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미국의 랜드(RAND)연구소 주관으로 2014년 여름부터 이듬해 봄 사이에 실시된 일련의 워게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현재의 NATO군 전투력과 군사대비태세 아래서는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을 점령하려는 러시아의 침공을 60시간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이다. 기습적으로 발트 3국을 차지한 러시아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NATO가 유럽대륙과 북미대륙을 전쟁(핵전쟁 포함)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게 될 확전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 이는 분명 NATO에 “부분적 손실을 감수하며 크림반도의 사례와 같이 발트 3국의 점령을 묵인할 것인가? 아니면 전면전을 불사할 것인가?”라는 진퇴양난의 딜레마를 안겨줄 것이다.


NATO의 딜레마 해결을 위해 제시된 방안들

미국의 저명한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영구적 억지: 중유럽 북부지역에서의 미군 주둔 증강’이라는 보고서(2018년 12월)에서 폴란드 서쪽의 포즈난(Poznan)에 있는 기존의 미군 임무형 지휘부대(US Mission Command Elements)를 1개 사단사령부 규모로 확대할 것을 제안했다. 발트지역 위기사태에 대비, 이 부대를 미국/유럽 대륙에서 전개되는 미군 부대들의 신속한 이동을 보장하기 위한 ‘허브’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다음으로 폴란드 싱크탱크인 ‘바르샤바 연구소’는 올해 초 ‘폴란드에 영구 미군기지 건설: NATO 동맹에 바람직한 해법’ 제하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영구 미군기지 건설은 현재의 순환식 병력배치 방식보다 러시아의 기습공격에 노출된 NATO 동측방 지역에서의 억지력·방어력 발휘에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다. 현재 유럽 주둔 미군은 약 3만5000명으로 대부분 독일에 있으며, 그중에서 4000여 명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폴란드·루마니아·불가리아 및 발트 3국에 순환식으로 배치되고 있다. 취약지역에 병력의 영구주둔이 아닌 순환배치가 이뤄지는 이유는 1997년 체결된 ‘NATO-러시아 간 상호관계, 협력 및 안보에 관한 기본협정(기본협정)’에 따라 중·동부 유럽에서의 전투력 영구주둔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한편 필립 브리들러브(미 공군대장) 유럽연합군 최고사령관은 2015년 4월 미 하원 청문회에서 “영구주둔은 순환배치와 비교해 전투력승수(a force multiplier)가 될 것”이라고 증언했다. 마크 밀리 미 육군참모총장은 2017년 “러시아의 추가적인 영토침략에 대한 억지력 보장을 위해서는 유럽에 중기갑부대(heavy, armored forces)의 추가 배치가 필요”함을 강조했다.


국가 존망 기로에 선 폴란드의 선택 ‘친미’


지난해 9월 폴란드의 두다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한 공동기자회견에서 “우리는 폴란드에 영구적인 미군기지를 희망”하며 “기지명을 포트 트럼프(Fort Trump)로 할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20억 달러를 부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두다 대통령이 (미군 주둔에) 20억 달러를 제안했다”며 “양국의 군사적 보호와 비용 등의 관점에서 검토 중”이라고 화답했다. 폴란드는 미군 주둔 부대·규모를 ‘1개 기갑사단’으로 제안했다. 1년도 지나지 않아 두다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해 ‘트럼프 기지’ 구상을 기정사실로 못 박았다. 동시에 폴란드는 미국으로부터 25억 달러 규모의 F-35(32대) 도입, 4.1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포격로켓시스템(HIMARS) 구매,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축출을 위한 공동전선 합류, 독일이 주도하지만 미국이 반대하는 EU 공동군 창설 반대 등 적극적인 친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크림반도 점령에 이어 2016년 10월 러시아의 단거리탄도미사일 ‘이스칸데르’ 실전배치는 폴란드의 안보불안을 부채질했다. 폴란드는 이스칸데르 미사일에 대해 불규칙한 비행궤적과 종말단계에서의 낙하속도 가속화 등으로 사실상 요격이 불가능하고 핵탄두까지 탑재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해 기존의 방공체계와 방어태세를 무력화할 수 있는 ‘게임 체인저’로 평가한다. 폴란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을 국방비로 지출하는 소수의 NATO 회원국 중 하나다.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선 폴란드는 적극적인 친미 노선만이 자국의 생존을 보장하기 위한 유일한 방책으로 판단하고 있다.


무관노트


주한미군 주둔 자체가 전쟁억지력 효과

비용분담 문제, 미군 거취에 영향 줄수도  


‘농담’처럼 시작됐던 ‘트럼프 기지’ 구상이 조만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겨질 것으로 보이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다. ① 1997년 ‘NATO-러시아 기본협정’ 위반 가능성 ② 국경 인근으로 근접하는 미군기지 건설에 대한 러시아의 반발 ③ 대(對)러시아 공동보조를 선호하는 NATO 입장과 충돌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도 폴란드가 기어코 ‘트럼프 기지’를 세우려는 이면에는 NATO의 집단방위 공약에 자국의 안보를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폴란드의 영구 미군기지 건설 구상은 우리에게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점을 준다. 첫째, 주한미군 주둔의 중요성이다. 일부에서는 폴란드의 영구 미군기지 건설을 ‘인계철선’ 전략으로 본다. 그러나 이는 초점을 빗나간 평가다. 미군 주둔 자체가 전쟁억지력으로서의 유효성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한미군과 연합사 본부의 평택기지 이전을 ‘인계철선’ 효과나 동맹관계 약화로 확대해석 하지 말아야 한다. 둘째, 방위비분담금 문제다. 폴란드는 기지 신설에 20억 달러를 ‘선금’으로 내놓는 동시에 기타 부대시설(숙소·학교·병원·훈련장 등)에 드는 추가 비용에도 ‘상당한 융통성’을 약속하는 등, 비용분담에 적극적이다. 그렇다 보니 비용분담에 소극적인 독일에서 미군 부대를 폴란드로 옮기는 방안도 거론된다. 향후 비용분담 문제가 미군 주둔 규모는 물론이고 거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의미다. 폴란드 사례는 2020회계연도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 전략 수립에 유용한 참고자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송 승 종 前 제네바대표부 군축담당관 
  現 대전대 교수·국제정치학 박사
송 승 종 前 제네바대표부 군축담당관 現 대전대 교수·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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