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익 시론] 임정 수립과 도산 안창호의 ‘점진적 독립전쟁론’

입력 2019. 04. 10   16:35
업데이트 2019. 04. 10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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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재 익 
한양대 융합국방학과 교수
송 재 익 한양대 융합국방학과 교수

필자는 지난 2월 중국 상해에서 한국정치학회와 중국 상해 푸단대학교가 주최한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 100주년 한중학술회의’에 다녀왔다.

이 학술회의에서는 ‘근대로의 여정 100년 새로운 평화체제의 모색’이라는 주제로 3개 세션과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필자는 제1세션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독립전쟁과 한중연합 군사활동: 도산 안창호의 점진적 독립전쟁론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제했다. 국방일보 지면을 통해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점진적 독립전쟁론’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가 1910년 일제에 강점된 이후 국내외 의병운동은 구국운동을 넘어 항일독립전쟁으로 전환됐다. 이런 국내외의 독립정신은 중국의 신해혁명(1911)과 윌슨 미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선언(1918)에 고취돼 마침내 조선 방방곡곡에서 3000만 동포가 일제 식민지에 항거하는 비폭력 3·1독립만세운동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정부의 필요성을 느낀 민족의 선각자 및 지도자들은 국내외에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신민회와 대성학교, 흥사단 등을 세운 독립운동가 정도로만 알려진 도산 선생은 통합 임정 수립에 정치력을 발휘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 실력 양성론을 넘어 강대국들의 전쟁에 대비하는 점진적 독립전쟁론을 주장했다.

1907년 미국에서 돌아온 도산은 양기탁 등과 같이 국권 회복을 목적으로 비밀 결사인 ‘신민회’를 결성했다. 신민회는 민주공화주의 비전을 제시했으며, 향후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실력을 양성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독립군기지 건설과 무관학교 설립을 강조했다.

3·1독립만세운동 이후 8개의 임정이 만들어지자 도산은 실체가 있는 러시아령 대한국민의회, 상해 임정, 한성 정부에 직접 참여했다. 1919년 5월 미주에서 상해로 가서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에 취임하고 임정 차장들과 미주에서 가져온 자금으로 상해 프랑스 조계지에 임정 청사를 준비한 후 3개 임시정부의 통일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사회주의 계열인 이동휘를 국무총리로 받아들이고, 도산 자신은 노동국 총판(장관에서 국장급)으로 낮췄다. 대통령중심제와 의원내각제를 절충한 민주공화국인 통합 대한민국 임정이 탄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또한 도산은 점진적 독립전쟁론을 제기했는데, 점진은 도산의 수학 태도였다. 점진은 급진과 양립되는 개념으로 실력 없이 거사하면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이라 성공할 수 없으니, 우선 해외에 재류하는 동포들의 산업을 진흥하고 좋은 기회가 오면 큰 힘을 낼 수 있도록 준비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점진적 독립전쟁론은 먼저 독립전쟁 준비를 갖추고 나서 중·일, 미·일 등 강대국이 전쟁하는 시기가 도래하면 본격적인 무장투쟁으로 전환해 독립을 우리 손으로 쟁취하자는 주장이었다.

이런 생각이 통합 임정에 반영돼 ‘독립운동방략’을 제정했으며, 나아가 국내 연통제(국내통합)와 국제선전전략(외교전략)으로 구체화됐다. 이 같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점진적 독립전쟁론은 한국광복군(1940.9.17 성립)과 대한민국 국군으로 정통성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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