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나잇! 청평병원

입력 2017. 09. 05   17:01
업데이트 2017. 09. 05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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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청평병원. 나의 특별한 초임지다. 대다수 사람은 병원 부대라고 하면 쾌적한 최신식 건물을 생각하고 부러워하지만, 여기는 조금 다르다. 청평병원으로 배치됐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들은 소리는 장난 섞인 놀림이었다. 6·25 전쟁영화 세트장으로 사용됐을 정도이니 낡은 정도로 치면 전군에서 제일이라고 했다.

지휘실습을 위해 처음으로 위병소를 통과했을 때,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놀랐다. 1965년 청평에 자리를 잡고 지어진 건물이 세월의 풍파를 맞은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 붕괴 위험 때문에 폐쇄하고 출입을 금지한 건물이 곳곳에 있었다. 영상촬영실도 상황이 마땅치 않아 건물 밖에 임시로 이동용 촬영실을 둘 정도였다. 이렇게 노후한 병원이 왜 신축을 하지 않고 있느냐 하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곧 구리병원으로 이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지내며 보니, 청평병원은 오히려 멋진 광경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낡은 시설은 불편함을 야기하는 부정적 요소가 아니라 청평병원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반백 년 넘게 산 잣나무들이 유명 관광지의 메타세쿼이아 길처럼 양옆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다. 온통 까만 아스팔트로 포장되고 겨우 남은 유휴공간 역시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신축 부대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경치다.

가을에는 아기 주먹만 한 토실 밤이 우수수 떨어져서 퇴근하는 길에 땅에 떨어진 것만 주워도 주머니에 한가득 넘친다. 수십 년 된 살구나무도 있는데 이건 딱 두 그루라 경쟁이 치열하다.

청평병원은 우리나라 군 의무 역사의 민얼굴이다. 대한민국 초창기 군 병원이 어땠는지 가감 없이 보여준다.

일례로 지금은 창고로 사용하지만, 이전에는 군의관 숙소였던 낡은 건물이 있는데 현재 숙소 수준과 비교해 우리나라가 반세기 만에 얼마나 큰 발전을 이룩했는지 보여주는 아주 좋은 예다. 그 어떤 정신교육 교재보다도 사실적으로 와닿는다. “여기가 군의관 숙소였다.” 이 한마디면 병사들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현재 변화된 국내외 전투 양상을 고려해 그에 걸맞게 새롭고 체계적인 의무지원 계획이 수립되고 있다. 청평병원도 구리병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선진 의무지원의 일익을 담당하는 역할을 멋지게 수행할 것이다.

대한민국의 반세기가 넘는 군 의무 역사를 함께하느라 머리가 하얗게 세어버린 청평병원. 이제 영원한 잠에 들 시간이다. 그동안 수고했어. 굿나잇! 청평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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