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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69주년] 백마 육군9사단

신인호 기사입력 2019. 10. 23   14:03 최종수정 2019. 10. 23   14:36

부대의 기(旗)와 마크(로고), 그리고 경례구호도 ‘백마’로 상징되는 육군 9사단이 25일로 창설 69주년을 맞는다. 


사단은 인천상륙작전 후 북진하던 1950년 10월 25일 서울 청계초등학교에서 창설됐다. 사단 관계관이 ‘6·25 발발 후 오로지 전투에 투입하기 위해 창설된 최초의 사단’이라고 소개하듯 사단은 창설 후 곧바로 대둔산에 전투사령부를 설치하고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사단이 ‘백마’로 상징된 것은 공비토벌작전 후 전방으로 이동 매봉·한석산 전투에서 승리해 예하 30연대 3대대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한 이후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철의 삼각지대’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을 상대로 395고지를 사수하는 ‘백마고지전투’ 승리의 신화를 창조한 업적에서 비롯되었다.


백마고지전투전적지에서 바로본 격전의 현장 백마고지. 국방일보DB

백마고지전투는 전투기간 중 쟁탈의 목표가 된 395고지에 피아가 포탄 약 27만 발을 쏟아부어 표고가 1m 가량 낮아지고 고지 주인이 24번이나 바뀐, 6·25전사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395고지는 수많은 포탄 세례로 산등이 하얗게 벗겨져 하늘에서 보면 ‘한 마리 백마가 누워 있는 형상’과 같다해서 ‘백마고지’라고 이름되었다. 이승만대통령은 전투 후 부대에 ‘상승백마(常勝白馬)’ 휘호를 내리며 사단의 무훈을 격려했다.

사단의 기와 마크에 백마가 등장한 것은 1953년 1월 15일 백마고지 전승을 기리기 위해 백마를 로고에 디자인했다. 이를 보다 진취적인 기상의 모양으로 1982년 변경한 것이 현재의 로고이다. 로고는 원형의 청색 바탕에 3등분으로 하나를 이룬 흰 색의 원이 외곽을 두르고 있다. 이 백색 도형은 결백, 숭고한 민족의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는 강철같은 단결을 의미한다. 청색은 평화의 표지이며 자유와 평화를 위한 대한 남의 백절불굴의 기운과 희망을 나타낸다. 또 항구불변의 우국충정을 상징한다. 가운데에 자리한 백마는 백마고지 전투에서 발휘한 감투정신을 그대로 계승하고자 하는 뜻이다.

앞서 사단의 최초 로고는 1950년 11월 3일 제정되었다. 흰색 바탕에 3등분된 검정 색 원형의 띠로 외곽을 두르고 3개의 보석이 균형 있게 배치된 모양이다. 창설 당시 미 군사고문단이 루비사단이라고 명명했는데, 보석 루비를 로고에 형상화했다. 이어 1951년 8월 15, 9사단의 숫자 9를 로고에 표시했는데 이때 바탕은 검정으로, 원 띠와 숫자는 흰색으로 나타냈으며 외곽은 3등분 원은 4등분으로 바뀌었다.

사단은 엠블럼(위 사진)도 활용하고 있다.
전투현장인 백마고지, 전투의 영웅인 육탄3용사, 고지 인근의 역곡천과 9사단의 숫자 9를 통해 6·25 전쟁 당시 중공군 3개 사단과 전투를 벌여 완승을 거둔 백마고지 전투를 형상화하고 있다. 백마부대는 육탄3용사와 같이 사전불퇴의 정신으로 백마고지 정상에 태극기를 꽂은 백마고지 전사의 후예임을 의미한다는 내용으로 디자인되었다.


백마고지전투전적지 내 전시실에 전시된 백마고지전투 부조. 국방일보DB.

사단은 부대혼(魂)으로 ‘死戰不退 常勝白馬’을 표방하고 있다. 죽음을 각오하고 전투에 임하며 결코 물러서지 않음으로써 항상 승리하는 백마부대라는 뜻이다. 백마고지전투를 앞두고 당시 사단장이었던 김종오 장군은 “여기에 우리의 뼈를 묻자”고 훈시했는데, 전투 후 중공군은 전훈을 분석한 ‘항미원조전쟁경험 총결’ 중 ‘백마고지 전역(戰役)에서 국군 9사단의 당시 응전상을 ‘死戰不退 村土必爭 죽음을 무릅쓰고 물러서지 않으며 한 치의 땅도 반드시 싸워 빼앗기지 않음’이라고 적었다. 전투의 승리의 원동력이 화력이 아닌 정신력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백마고지전투전적지에서 보는 백마고지전투전적비. 국방일보DB.



신인호 기자 <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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