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조명탄

[조명탄_최유안 소설가] 예술은 열린 문

입력 2023. 03. 24   16:03
업데이트 2023. 03. 2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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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안 소설가
최유안 소설가


오랜만에 대학로에서 공연을 봤다. 팬데믹이 지나갔다는 것을 증명하듯 무대에 올라오는 작품 수가 많아져 반가웠다. 이왕이면 작은 규모이면서 처음 보는 작품, 내실이 탄탄한 창작공연, 그런 몇 가지 기준을 세운 채 마음에 들어오는 작품을 톺아봤다.

공연을 고르던 중 놀라기도 했다. 상당수 공연, 특히 뮤지컬은 배우의 티켓 파워에 높은 가치를 두고 제작되는 실정이라는 거였다. 몰랐던 건 아니지만 새삼 그 사실이 눈에 띈 이유는, 그 덕에 바뀌어 가는 공연 생태계의 모양새 때문이다. 이것이 크고 작은 문제를 만든다는 기사도 읽었다. 그러다 어째서 배우 중심의 티켓 문화가 발달하게 됐는지 궁금해졌고, 인기와 트렌드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결국 내게는 무지의 영역인 대한민국 예술산업에까지 생각이 가지를 치고야 말았다.

우리나라 예술산업의 트렌드는 일면 경연대회가 만드는 것 같다. 트로트 경연대회가 유행일 때는 인터넷에서도 TV에서도 트로트 이야기만 하는 것 같았고, 춤 경연이 유행일 때는 다들 춤 이야기만 했다. 유수의 연주자들이 해외 콩쿠르에서 1등을 한 뒤 갑자기 클래식에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 같은 건 나만의 느낌일까. 성악도 요리도 아이돌그룹을 만드는 과정도, 이제는 경연대회가 손대지 않는 분야가 없는 것 같다. 1등을 가려내는 게 재미로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예술이 많은 이에게 향유되며 또 그것이 새로운 자극이 되는, 선순환의 구조로 발전한다면야 당연히 좋은 일이다. 그런데 우리는 예술의 영역에서도 승자독식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예술 분야마다 상들이 범람하는 문화는 어디서 생겨난 걸까. 그런 생각을 하다 가닿은 곳은 경쟁 풍토였다.

구병모 작가의 신간 『로렘 입숨의 책』에는 ‘예술은 닫힌 문’이라는 단편이 실려 있다. 서바이벌 대회에 참가한 연주자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목숨을 걸고’ ‘사력을 다해’ ‘이번이 아니면 정말 죽음뿐이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간절함을 피력하는 연주자들은, 죽음이 문자 그대로 사망을 가리킨다고는 상상하지 못한 채 경연대회에 참가한다. 승자는 두 손을 들어 환호하고 패자는 탈락신호와 함께 구덩이에 떨어지고, 그것을 관람하는 사람들은 즐거워한다. 그 서바이벌 현장에 대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누구를 선택하고 누구를 떨어뜨리는 행위의 잔혹성에 대해 소설은 짚어 낸다. 아름다운 이야기로!

공연을 보고 나오며 생각했다. 어떤 영역이든 발을 딛는 순간 1등을 가리기 시작하는 우리나라 거의 모든 영역의 시스템과 소설 속 대회가 다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 누군가는 위로 올라서고 누군가는 그것을 받치고 서는 모양을 당연하게 여기는 이 만연한 경쟁 세계가 어쩌면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거대한 단면이라는 것.

아름다움에 대한 저마다의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선택을 강요받고 1등을 가리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이상한 오류의 세계에 기꺼이 들어가는 구조에 대해, 그리고 그런 시스템이 희생시킬 수많은 멋진 예술가에 대해 나는 생각한다. 경연대회에서 떨어지든 말든 끊임없이 기량을 갈고닦는 예술가들에 대해, 자기 색을 갖춘 수많은 작품에 대해, 다른 이가 느끼는 것과 내가 느끼는 것이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틀리지는 않다는 사실에 대해.

이상한 말이지만 그러니 나는 그 세계들이 뒤섞여 버렸으면 좋겠다. 여러 빛과 색깔이 겹치며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은 것을 겪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결국 1등 예술가 따위는 없는 세상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수많은 창작자와 감상자들이 작품 안에서 빚는 오롯한 순간들. 그것만이 오직 진짜 예술의 속성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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