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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집을 넘어… 이젠 휴대폰도 내가 수리한다

입력 2022. 08. 08   17:10
업데이트 2022. 08. 0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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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수리

셀프 인테리어·자동차 수리 관심 늘어
팬데믹으로 DIY 온라인 시장 급성장
전자기기도 美·유럽서 ‘수리권’ 강화
삼성·애플 등 자가수리 서비스 확대
수리 난도로 이용자는 한정되지만
인건비 높아질수록 시장 커질 듯

 

삼성전자와 업무 제휴 소식을 맨 앞에 올린 아이픽스잇 홈페이지.  사진=iFixit.com
삼성전자와 업무 제휴 소식을 맨 앞에 올린 아이픽스잇 홈페이지. 사진=iFixit.com

자가수리는 외국, 특히 구미 선진국에선 흔한 일이다. 자동차부터 집까지 스스로 고친다. 집마다 있는 차고(Garage)에 각종 수리공구가 가득하다. 구미인들이 웬만하면 스스로 수리하는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남에게 맡기면 엄청난 값을 치러야 한다. 특히 인건비가 장난이 아니다. 고칠 줄 아는 것만으로도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자가수리를 하는 사람이 많으니 관련 산업 규모도 크다. 홈디포(Home Depot), 로우스(Lowe’s), B&Q, OBI 등 주택 개량과 관련한 용품·공구와 설비 등을 파는 유통체인들이 구미 국가에서 성업 중이다. 고객은 크게 둘로 나뉜다. 인테리어업자·배관공·전기기사 같은 전문가와 직접 수리하는 일반인이다. 이 일반인을 흔히 ‘DIY(Do It Yourself) 고객’이라고 부른다. 홈디포는 전문가 고객이, 로우스는 DIY 고객이 많이 찾는 매장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면서 집수리나 꾸미기에 관한 관심도 덩달아 높아졌다. 이 덕분에 홈디포, 로우스와 같은 유통체인들은 팬데믹 불황을 겪지 않았으며, 오히려 성장했다. 온라인시장은 더욱 급성장했다. 유통체인의 온라인몰뿐만 아니라 전문 온라인몰이 세계 곳곳에서 인기를 끈다.

‘아이픽스잇(iFixit.com)’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미국 공대생들이 노트북을 고치다가 그 방법과 관련 부품을 공유하면 어떨까 해서 만든 자가수리 기법 공유 사이트다.

누구나 수리설명서를 올리거나 수정할 수 있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제품이 주류를 이루지만 패션용품과 자동차 수리도 있다. 이 회사는 8만5000개의 설명서와 19만 개의 해결책을 무료로 공개하는 대신 관련 수리공구(키트)와 부품을 판다. 수리 전문가나 소수 마니아가 찾던 이 사이트를 이제 일반인도 많이 이용한다.

이 사이트를 최근 삼성전자가 언급했다. 이달 미국에서 자가수리(self service repair)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 회사는 자사 스마트폰과 태블릿 관련 정품 부품을 아이픽스잇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애플은 삼성전자에 앞서 지난 4월 미국에서 아이폰12와 13, SE3 등의 디스플레이와 배터리, 카메라 부품을 파는 자가수리 온라인스토어를 열었다. 올 연말엔 유럽으로 지역을, 내년 초엔 맥컴퓨터로 품목을 확대한다.

삼성과 달리 애플은 아이픽스잇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애플은 수리키트를 팔거나 빌려줘 아이픽스잇의 비즈니스모델과 겹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시장 파이가 커지면 두 회사 비즈니스가 공존할 가능성이 더 크다. 정품 판매 증가가 아이픽스잇의 수리키트 수요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애플과 삼성전자가 고객의 ‘수리권(Right to Repair)’을 수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수리권은 고객이 부품과 설계도, 소프트웨어 등에 접근해 직접 수리할 수 있는 선택권을 뜻한다. 첫 결과물은 2000년대 초반 자동차에서 나왔다. 미국 정부와 의회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딜러(총판)에게만 독점적으로 제공하는 부품과 진단장치를 소비자나 독립 정비업체에도 똑같이 판매하도록 했다. 2010년대 들어 전자제품에도 같은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논의가 본격화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7월 전자기기 제조사의 수리권한 제한행위를 개선하도록 행정명령을 내렸다. 뉴욕주는 제조사가 인증한 업체만 수리하도록 강제하지 못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제조사들은 그동안 고장 악화, 지식재산권 침해와 기술 유출 등을 이유로 수리권을 부정했다. 거부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누구나 저렴하게 고칠 수 있게 되면 신제품 수요가 줄어들까 걱정했다. 정품 부품과 공구 판매부터 교육까지 새로운 부담도 생긴다. 하지만 수리권을 마냥 거부할 수 없는 지경이다. 그러자 오히려 능동적으로 대응하자는 쪽으로 돌아섰다. 애플은 수리 후 버릴 부품을 재활용 용도로 반납하는 고객에게 향후 새 제품을 살 때 쓸 수 있는 크레디트를 제공하기로 했다. 마케팅 활용이다.

자가수리 프로그램이 많아져도 이용자는 사실 한정됐다. 전자기기 수리지식이나 경험을 가진 개인 테크니션 정도나 관심을 보일 뿐 일반인은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설명서를 따라가기도 쉽지 않다. 배우고 고치는 시간이 오래 걸리며, 공구도 장만해야 한다. 아무리 잘 고쳐도 전문가 이상은 아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그냥 전문 서비스업체에 맡기는 게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다.

수리 자체가 취미라면 다르다. 시간과 비용 면에서 매력이 없고, 되레 손해일지라도 뜯어보고 고치는 것 자체를 즐기는 사람이 제법 많다.

처음엔 비용을 줄이려고 시작했다가 재미가 붙은 사람들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젊은 층의 ‘일과 생활의 균형’ 중시 등으로 이러한 사람이 더 많아질 전망이다.

최근 철물과 목수학교 수강생이 늘어났다. 관련 커뮤니티도 여럿 생기며 갈수록 몸집이 커진다. 전업 유튜버도 증가하고 있다.

커뮤니티와 플랫폼에 중장년층 은퇴자뿐만 아니라 젊은 층도 많으며 최근엔 여성도 늘어나는 추세다.

취미도 몇 년을 하다 보면 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몰랐던 재능을 발견해 부업을 하거나 창업을 할 수 있다. 꼭 가게를 차릴 필요도 없다.

출장수리만 하는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다. ‘숨은 고수(soomgo.com)’ ‘소소한 집수리(soso-fix.com)’ ‘집다(myzibda.com)’ 등 수리 플랫폼을 이용하면 된다.

수리 난도는 갈수록 낮아질 전망이다. 부품 모듈화 덕분이다. 전기차는 웬만한 부품을 하나의 모듈 부품으로 통합하고 단순화했다. 고장이 나면 수리하기보다 모듈을 교체하면 된다. 복잡한 기계장치 원리를 알아야 했던 엔진 자동차 수리와 비교해 쉽다. 이 때문에 전기차 보급이 대중화하면 자동차 정비업계도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전기지식이 부족한 정비사는 위기다. 반면 고객에겐 자가수리의 여지가 더 많아질 것이다.

남에게 맡길 때와 내가 직접 할 때의 가격 차이가 클수록 자가수리 수요와 시장은 커진다. 그런데 애프터서비스(AS)가 발달한 한국은 구미 선진국과 비교해 그 격차가 크지 않다. 인건비도 낮은 편이다.

앞으로는 달라질 전망이다. 인건비도 오르고 있다. 기업들은 수익성 때문에 서비스체계를 합리화하려 한다. 자가수리 고객은 물론 수리 전문 자영업자가 늘어날 것이다. 덩달아 정품과 공구시장도 커진다. 무엇보다 전업이든 부업이든, 일모작이든 이모작이든 일과 삶에 ‘수리’라는 새 카테고리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투자해도 좋은 도구들’
(출처=맷 웨버 『집수리 셀프 교과서』)

-벽 탐지기(Stud Finder)

보이지 않는 합판 아래 각재, 못, 전선 등을

스캔해 편리

-작업등(Work Lights)

싱크대 밑 등과 같은 곳에서 특히 유용

-못 뽑는 플라이어(nail-pulling Pliers)

머리 없는 못 뽑을 때 유용

-레이저 거리측정기(Laser Measuring device 또는 distance meter)

손이 닿지 않는 곳까지 측정 가능



필자 신화수는 30년간 기술산업 분야를 취재했으며 전자신문 편집국장, 문화체육관광부 홍보협력관, IT조선 이사 등을 역임했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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