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 매료된 후 작품 방향 큰 변화
만화 이미지 탐구하며 ‘벤데이 점’ 이용
영화의 한 장면 보는 듯한 착각 일으켜
만화의 이미지는 여전히 싸구려다. 만화는 B급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문화며 철저히 대중적이고 철저히 폭력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만화를 보는 것을 꺼린다. 만화가 주는 싸구려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팝아트 화가 로이 릭턴스타인(1923~1997)이다.
릭턴스타인은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0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산업디자이너, 상업 미술가 강사로 활동했다. 당시 그의 예술 성향은 클레, 추상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릭턴스타인은 정기적으로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었지만 가족을 부양할 정도로 작품이 충분히 팔리진 않았다. 항상 경제적 어려움을 달고 살던 그는 아들들이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 같은 만화 주인공에 빠진 것을 보고 그들에게 필요한 그림을 그려주면서 만화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 후 릭턴스타인의 작품에는 만화의 주인공들이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초기에 그가 그린 만화 작품들을 지금 볼 수는 없다. 릭턴스타인은 만화 주인공을 주제로 한 작품을 다 그린 뒤 모조리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만화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고 여전히 추상화 성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처럼 관습을 벗어난 주제를 좋아했던 릭턴스타인은 재즈에 매료되었는데 재즈는 작품의 방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재즈를 통해 그는 흑인 문화에 공감하면서 당시 유행하고 있던 입체주의, 추상표현주의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릭턴스타인은 특히 알아볼 수 있는 세계를 원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모델이나 실제 도시 풍경, 정물 같은 주제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순수 추상화에 매료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미국의 일상적인 것에 흥미를 갖고 작품을 제작했다. 미국의 일상적인 것을 표현함으로써 릭턴스타인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 ‘공을 든 소녀’다.
이 작품은 휴양지 포코노의 신혼여행호텔 광고에서 이미지를 차용했다. 실제 이 광고에는 남자라면 누구나 지갑에 넣고 다닐 정도의 아름다운 여성의 스냅 사진이 실렸었다.
여인은 물결치는 머리에 붉은 입술을 벌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비치볼을 잡고 있다. 약간 벌린 붉은 입술, 물결치는 긴 머리, 수영복은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미인을 나타낸다. 광고 속 이미지와 릭턴스타인의 작품 속 이미지가 동일하다.
릭턴스타인은 광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여인을 포착해 만화처럼 이미지를 단순화해 버렸다. 그는 광고의 흑백 이미지 효과를 내기 위해 색채의 사용을 제한했으며 매우 작은 광고였지만 여성을 실제 크기로 확대했다. 그는 정지된 화면을 표현하기 위해 비치볼을 들고 선 자세로 묘사했다. 비치볼을 할 때 서 있는 자세는 비치 볼을 들고 있을 때다.
릭턴스타인은 진부한 소재인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추상표현주의 미술에 젖은 현대 미술에 도전했다.
릭턴스타인은 만화 이미지를 탐구하면서 상업적 인쇄 기술인 ‘벤데이 점’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벤데이 점이란 밀접하게 배치한 작은 색점으로, 그것들을 결합해서 다양한 색채와 톤을 만들어 낸다. 그는 이 기법을 사용해서 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자주 만화책 이미지를 각색했으며 결국 이는 그의 화풍으로 자리 잡게 된다.
릭턴스타인의 화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아, 아마도’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는 매력적인 금발 여인은 생각에 잠겨 있다. 시선은 옆을 바라보고 장갑 낀 손으로 귀를 막고 있다. 머리 위에는 말풍선이 그려져 있으며 글이 있다.
말풍선 속 글에는 ‘음, 어쩌면 그가 몸이 아파서 작업실에 나올 수가 없을지도 몰라’라는 대사가 있다. 이는 불안한 개인적인 생각을 나타낸다. 만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순수예술에서는 완전한 일탈이다. 이 말풍선 속 대사는 당시 비평가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여인이 낀 장갑은 중산층의 멋쟁이 여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960년대에는 여성들이 외출할 때 장갑과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예의였다. 하지만 장갑 낀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겪고 있는 불안감을 나타낸다.
화면을 크게 차지한 여인의 얼굴은 말풍선 대사나 머리카락을 쥔 손과 달리 엷은 미소를 띠며 옆을 바라보고 있다. 이 시선은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의 희망과 기대를 나타낸다.
말풍선 속 글은 만화처럼 관람자의 감정 이입을 자극한다. 풍성한 금발, 갸름한 얼굴, 붉은 입술 등은 만화책에서 파생한 전형적인 여성의 이미지다.
여성의 얼굴에 그려진 점과 배경의 파랑, 분홍 점들이 벤데이 점이다. 릭턴스타인은 캔버스 위에 이미지의 본을 뜬 다음, 여인의 얼굴과 배경에 있는 창문에 벤데이 점들을 스텐실로 찍었다. 그는 동그라미를 오려낸 망을 사용해 분홍색과 연한 파란색 부분들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인쇄물처럼 보여도 제작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인 뒤에 있는 건물들의 두꺼운 검은색 아웃라인은 그림을 더욱 평평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릭턴스타인의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특별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릭턴스타인은 작품을 통해 진실한 감정이나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만화 잡지용 삽화를 복제해 단순함을 강조함으로써 대중문화의 가장 친근한 이미지를 새롭게 변형시켰다.
또한 그는 이 작품에서 원색만 사용해 인쇄의 기계적인 방식을 과장하는데 이는 작품이 대량 복제되는 인쇄물처럼 보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처럼 릭턴스타인의 말풍선은 그를 팝아트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말풍선으로 대중적인 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 ‘우리는 천천히 일어났다’다.
금발의 백인 남녀가 물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다. 황홀경에 빠진 둘은 키스하기 위해 눈을 감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머리 스타일만 다를 뿐 눈썹과 입술의 형태, 오뚝한 콧날 등 마치 두 사람의 얼굴이 거울을 보는 것처럼 닮았다. 굽이치는 물결을 표현한 검은 색은 하얀 물방울과 대조를 이루고 노란색이 강하게 돋보인다. 수중에서 사랑에 빠져 있는 두 사람으로 인해 에로티시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릭턴스타인의 이 작품은 영화의 수중 장면을 클로즈업한 것으로 화면 옆 글은 영화에서 음성 같은 기능을 하며 그림 속 이야기를 전달한다. 글 사이사이에 있는 말줄임표는 그림 속 두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며 관람자에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 작품 속 글은 릭턴스타인 작품 중에 가장 시적이고 달콤하다.
로이 릭턴스타인의 작품은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만화나 광고에서 한 번쯤 보았던 기억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최대한 대량 복제되는 인쇄물처럼 보이기를 원하면서도 창의력이 뛰어난 화가로서의 본질을 잊지 않았다. 릭턴스타인은 고급 미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것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예술 세계를 열어나갔다.
<박희숙 작가>
재즈에 매료된 후 작품 방향 큰 변화
만화 이미지 탐구하며 ‘벤데이 점’ 이용
영화의 한 장면 보는 듯한 착각 일으켜
만화의 이미지는 여전히 싸구려다. 만화는 B급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문화며 철저히 대중적이고 철저히 폭력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가 만화를 보는 것을 꺼린다. 만화가 주는 싸구려 이미지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사람이 팝아트 화가 로이 릭턴스타인(1923~1997)이다.
릭턴스타인은 뉴욕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0년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산업디자이너, 상업 미술가 강사로 활동했다. 당시 그의 예술 성향은 클레, 추상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릭턴스타인은 정기적으로 뉴욕에서 전시회를 열었지만 가족을 부양할 정도로 작품이 충분히 팔리진 않았다. 항상 경제적 어려움을 달고 살던 그는 아들들이 미키 마우스, 도널드 덕 같은 만화 주인공에 빠진 것을 보고 그들에게 필요한 그림을 그려주면서 만화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그 후 릭턴스타인의 작품에는 만화의 주인공들이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초기에 그가 그린 만화 작품들을 지금 볼 수는 없다. 릭턴스타인은 만화 주인공을 주제로 한 작품을 다 그린 뒤 모조리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만화 작품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했고 여전히 추상화 성향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처럼 관습을 벗어난 주제를 좋아했던 릭턴스타인은 재즈에 매료되었는데 재즈는 작품의 방향에 큰 영향을 주었다. 재즈를 통해 그는 흑인 문화에 공감하면서 당시 유행하고 있던 입체주의, 추상표현주의를 거부하기 시작한다.
릭턴스타인은 특히 알아볼 수 있는 세계를 원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모델이나 실제 도시 풍경, 정물 같은 주제에는 전혀 흥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순수 추상화에 매료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미국의 일상적인 것에 흥미를 갖고 작품을 제작했다. 미국의 일상적인 것을 표현함으로써 릭턴스타인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작품이 ‘공을 든 소녀’다.
이 작품은 휴양지 포코노의 신혼여행호텔 광고에서 이미지를 차용했다. 실제 이 광고에는 남자라면 누구나 지갑에 넣고 다닐 정도의 아름다운 여성의 스냅 사진이 실렸었다.
여인은 물결치는 머리에 붉은 입술을 벌리고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비치볼을 잡고 있다. 약간 벌린 붉은 입술, 물결치는 긴 머리, 수영복은 해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미인을 나타낸다. 광고 속 이미지와 릭턴스타인의 작품 속 이미지가 동일하다.
릭턴스타인은 광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지만 해변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여인을 포착해 만화처럼 이미지를 단순화해 버렸다. 그는 광고의 흑백 이미지 효과를 내기 위해 색채의 사용을 제한했으며 매우 작은 광고였지만 여성을 실제 크기로 확대했다. 그는 정지된 화면을 표현하기 위해 비치볼을 들고 선 자세로 묘사했다. 비치볼을 할 때 서 있는 자세는 비치 볼을 들고 있을 때다.
릭턴스타인은 진부한 소재인 이 작품을 제작하면서 추상표현주의 미술에 젖은 현대 미술에 도전했다.
릭턴스타인은 만화 이미지를 탐구하면서 상업적 인쇄 기술인 ‘벤데이 점’을 이용하기 시작한다. 벤데이 점이란 밀접하게 배치한 작은 색점으로, 그것들을 결합해서 다양한 색채와 톤을 만들어 낸다. 그는 이 기법을 사용해서 많은 작품을 만들었고 자주 만화책 이미지를 각색했으며 결국 이는 그의 화풍으로 자리 잡게 된다.
릭턴스타인의 화풍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 ‘아, 아마도’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날리는 매력적인 금발 여인은 생각에 잠겨 있다. 시선은 옆을 바라보고 장갑 낀 손으로 귀를 막고 있다. 머리 위에는 말풍선이 그려져 있으며 글이 있다.
말풍선 속 글에는 ‘음, 어쩌면 그가 몸이 아파서 작업실에 나올 수가 없을지도 몰라’라는 대사가 있다. 이는 불안한 개인적인 생각을 나타낸다. 만화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순수예술에서는 완전한 일탈이다. 이 말풍선 속 대사는 당시 비평가들에게 환영받지 못했다.
여인이 낀 장갑은 중산층의 멋쟁이 여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1960년대에는 여성들이 외출할 때 장갑과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예의였다. 하지만 장갑 낀 손으로 머리카락을 쥐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겪고 있는 불안감을 나타낸다.
화면을 크게 차지한 여인의 얼굴은 말풍선 대사나 머리카락을 쥔 손과 달리 엷은 미소를 띠며 옆을 바라보고 있다. 이 시선은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의 희망과 기대를 나타낸다.
말풍선 속 글은 만화처럼 관람자의 감정 이입을 자극한다. 풍성한 금발, 갸름한 얼굴, 붉은 입술 등은 만화책에서 파생한 전형적인 여성의 이미지다.
여성의 얼굴에 그려진 점과 배경의 파랑, 분홍 점들이 벤데이 점이다. 릭턴스타인은 캔버스 위에 이미지의 본을 뜬 다음, 여인의 얼굴과 배경에 있는 창문에 벤데이 점들을 스텐실로 찍었다. 그는 동그라미를 오려낸 망을 사용해 분홍색과 연한 파란색 부분들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인쇄물처럼 보여도 제작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여인 뒤에 있는 건물들의 두꺼운 검은색 아웃라인은 그림을 더욱 평평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은 릭턴스타인의 다른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특별한 개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릭턴스타인은 작품을 통해 진실한 감정이나 깊은 의미를 전달하고자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만화 잡지용 삽화를 복제해 단순함을 강조함으로써 대중문화의 가장 친근한 이미지를 새롭게 변형시켰다.
또한 그는 이 작품에서 원색만 사용해 인쇄의 기계적인 방식을 과장하는데 이는 작품이 대량 복제되는 인쇄물처럼 보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처럼 릭턴스타인의 말풍선은 그를 팝아트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말풍선으로 대중적인 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 ‘우리는 천천히 일어났다’다.
금발의 백인 남녀가 물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있다. 황홀경에 빠진 둘은 키스하기 위해 눈을 감고 있다. 남자와 여자는 머리 스타일만 다를 뿐 눈썹과 입술의 형태, 오뚝한 콧날 등 마치 두 사람의 얼굴이 거울을 보는 것처럼 닮았다. 굽이치는 물결을 표현한 검은 색은 하얀 물방울과 대조를 이루고 노란색이 강하게 돋보인다. 수중에서 사랑에 빠져 있는 두 사람으로 인해 에로티시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릭턴스타인의 이 작품은 영화의 수중 장면을 클로즈업한 것으로 화면 옆 글은 영화에서 음성 같은 기능을 하며 그림 속 이야기를 전달한다. 글 사이사이에 있는 말줄임표는 그림 속 두 사람의 감정을 나타내며 관람자에게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이 작품 속 글은 릭턴스타인 작품 중에 가장 시적이고 달콤하다.
로이 릭턴스타인의 작품은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 드는 것이 특징이다. 만화나 광고에서 한 번쯤 보았던 기억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최대한 대량 복제되는 인쇄물처럼 보이기를 원하면서도 창의력이 뛰어난 화가로서의 본질을 잊지 않았다. 릭턴스타인은 고급 미술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것을 제시함으로써 새로운 예술 세계를 열어나갔다.
<박희숙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