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교수실에서

[신재하 교수실에서] ‘지피지기’면 ‘백전불태’

입력 2021. 08. 09   16:13
업데이트 2021. 08. 09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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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하 해군사관학교 사회인문학처 교수·대위
신재하 해군사관학교 사회인문학처 교수·대위

미국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대통령은 실의와 불안에 빠진 미국인들에게 우리를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 그 자체라고 하면서 용기를 주었다. 광복 76주년을 맞는 오늘날 혐중(嫌中)이라는 현상이 바로 그 두려워하는 마음만으로 상대를 평가하는 것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진단해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지난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가 있었다. 당시 우리 매스컴에서도 이를 크게 다뤘는데, 특히 당서기 시진핑의 연설 중 언급된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린다(頭破流血)’는 표현이 중국의 팽창주의 및 군사확장에 대한 야심의 표현으로 강조됐다. 그러나 이 메시지는 팽창주의를 의미하는 표현이 아니라 과거와는 다른 중국을 중국인들에게 강조하여 중국 공산당의 치적을 내세우고 정권의 역사적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쓴 것이며 중국 국내를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체면을 중시하는 ‘미옌쯔(面子)’ 문화가 반영된 것이다.

올해 3월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중 간의 고위급 회담에서 있었던 일이다. 본격적인 회의에 앞서 형식적인 내용으로 기자들 앞에서 짧은 모두발언을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미국 측에서는 기선제압 차원으로 10분 동안 중국의 인권문제와 불공정 경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에 중국의 양제츠 국무위원은 준비한 원고 대신 미국의 외교적 결례와 오만한 태도를 무려 16분 동안 비난하고, 옆에 있던 왕이 외교부장에게도 보충 발언을 하라고 순서를 넘긴다.

이를 지켜보며 통역할 타이밍을 찾고 있던 중국 측 통역관이 양제츠 국무위원에게 통역을 먼저 해도 되는지를 묻자 그는 역으로 통역관에게 “통역이 필요한가? 통역하세요”라고 대답한다. 이 말의 뜻은 통역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으로 상대에게 전달하기 위해 진행한 의사 발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중국이 불평등 외교의 장에서 매번 고개 숙일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의 중국은 다르다는 것을 자국민들에게 보여줌으로 창립 100주년을 앞둔 공산당의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두파유혈’ 언급과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당시의 불편한 기류를 가지고 침소봉대해 미·중 간 패권경쟁이 본격화됐다고 평가하면서 두려움을 표시한다.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준비된 가운데 문제를 예방해 후환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진정한 준비는 ‘지피지기’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남을 알고 나를 알아야 ‘백전불태(百戰不殆)’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것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상대로 하여금 우리의 역지사지를 생각할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텍스트나 문구에 얽매여 전체적인 맥락의 이해를 소홀히 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평가, 철저히 스스로를 알아가면서도 상대에 대해서는 이해의 시선으로 선입견으로 대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내년이면 한중수교 30주년이다. 막연한 혐중이라는 감정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발전해나갈 수 있도록 함께하는 노력과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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