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MZ세대를 말하다

hoxi… 이래서 M(말)Z(줄임)세대라 부르는 걸까?

입력 2020. 11. 24   16:35
업데이트 2020. 11. 2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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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신조어로 짚어보는 MZ세대 트렌드 

연도별 대표적 줄인 말 신조어
시대·세대따라 말줄임 트렌드 차이
과도한 표현으로 멋쩍은 분위기 전환
우연한 계기로 탄생해 진화하며 확산
올해 한국어+외국어 조합 유형 인기 


 

몇 군데 취업 원서를 낸 곳마다 불합격 통보가 와서 기가 죽은 취준생에게 한 친구가 격려의 메시지를 날렸다. “전역 후 복학해서 모든 과목 A+를 맞은 네가 아니더냐” “특히 A도 잘 주지 않기로 유명한 ○○교수에게 유일하게 A+를 받았잖아”라면서 한껏 치켜세웠다. 친구가 고무된 듯 답신을 보냈다. “가슴이 웅장해진다”. 복학 이후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친구의 위업을 환기한 친구도 “가슴이 웅장해진다”라며 똑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이 메시지 타임라인을 보여주면서 이들은 올해 가장 많이 쓴 신조어로 ‘가슴이 웅장해진다’를 꼽았다.


#어색함_줄이는_과장

가슴이 벅차다 못해 ‘웅장’해질 정도로 과도하다시피 한 애정을 표시하는 이 용어를 대학내일의 『밀레니얼-Z세대 트렌드 2021』에서는 일종의 ‘주접 멘트’로 정의했다. 과장된 표현이란 뜻인데, 그 지나침이 대상에 대한 과도한 애정을 표현하는 쑥스러움을 완화하는 효과를 낸다. 두 친구가 동시에 쓴 ‘가슴이 웅장해진다’는 뜻과 대상이 살짝 다르다.

전자는 고개 숙인 자신을 북돋는 친구에 대한 고마움이 우선이다. 자신의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직접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담고 있다. 격려한 이는 자신의 친구가 이룬 업적을 화룡점정, 곧 그림 속 용의 눈에 점을 그리듯이 최고의 단계로 격상시키는 말로 ‘가슴이 웅장해진다’라는 표현을 썼다. 관심도 끌고 자신의 애정도 과시하지만 다른 측면으로 그런 어색함도 줄이려는 과장된 표현이 MZ세대 신조어의 한 갈래이다.

과장된 표현의 이면을 보면 거꾸로 자신감이 부족한 경우가 꽤 있다. 아니면 객관적인 기준이 없는 상황일 때 격하고 과하게 나오기 마련이다. 설명이 필요 없으니 무조건 믿으라고 우기는 형식으로 나아가기도 한다. ‘걍 미쳤음’이란 말이 곧잘 붙어 나오는 ‘재질’이란 단어가 처음 나타날 때는 그랬다. ‘A 재질 걍 미쳤음 걍 B템임’, 예를 들면 ‘새로 산 가방 재질 미쳤음. 걍 공주템임’ 식으로 쓰였다. 이후는 ‘재질’만 가지고 와서 ‘느낌’이나 ‘부류’를 대체하는 표현으로, 약간은 뜬금없게 보일 수도 있으나 충분히 공감될 수 있는 대상에 ‘카페 완전 인스타 재질’이란 식으로 쓰인다.




#진심으로_몰입하고_분위기_띄우고

확신을 심어주는 객관적 지표가 부족할 때, 차라리 필요 이상으로 움츠러들며 말하면 그게 더 먹혀들 수도 있다. ‘~에 진심인 편’이란 말이 어떤 분야에 몰입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나 자세를 표현할 때 약간 수줍은 듯이 쓰였다. 최근에는 핼러윈에 열심히 참가하여 놀고 싶었으나, 코로나19 상황으로 여의치 않은 이들이 ‘방구석 핼러윈에 진심인 편’이라며 아쉬움 속에서도 자신의 열정을 표현했다. 어찌 보면 ‘편’은 겸양의 보어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세대에서는 ‘~같아요’라는 표현을 쓰면 혼나는 경우가 많았다. 자신감과 열정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보였다.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콘셉트’와 대비하여 ‘진심’만 꺼내 와서 ‘다들 콘셉트였고, 나만 진심이었지’란 식으로 쓰기도 한다.

콘셉트가 확실한 상황 혹은 대상에 과몰입하면 정말 그런 기억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연예인들을 군대에 보내 훈련받는 모습을 방영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이 한때 인기였다. 훈련소 동기와 끈끈한 전우애가 넘치고, 꿀맛 같은 간식들을 섭취하는 그들 모습에 시청자들도 마치 그런 과정을 지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사랑 노래 뮤비를 보면서 자신의 고교 시절도 그런 연애로 충만했던 것과 같아 마냥 아름답게만 보인다. 그런 것들을 일컫는 ‘기억 조작’이란 표현도 많이 쓰였다.

어쩌면 힘겨운 현실에서 조작되었더라도 즐겁고 아름다운 과거를 찾아서 위로를 받으려는 잠재적인 욕구가 ‘기억 조작’이라는 단어로 압축되어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현실에서도 불편한 상황에서 과도하게 즐거운 척하는 등 분위기를 띄우려는 행동이 나타나곤 한다. 그런 걸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린다’라는 뜻으로, 줄여서 ‘억텐’이라고 한다. 유튜브 진행자나 스트리머들이 과하게 리액션할 때 ‘억텐’이라고 하며, 반대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리액션은 ‘찐텐’이라고 한다.


#전통의_말줄이기_신공_새형식

신조어는 트렌드를 반영하면서 그것을 언어유희로 변형시키며 나오는 경우가 절대다수이다. 언어유희의 대표가 말줄임이다. 대학내일에서는 매년 트렌드북에 20개 정도의 MZ세대들이 많이 쓰는 신조어나 용어들을 소개하는데, 형태별로 보면 거의 반수 정도가 줄인 말들이다. 올해도 위에서 언급한 ‘억텐’ 이외에 몇몇 줄인 말 신조어들이 선보였다. ‘스불재(스스로 불러온 재앙)’는 퍼지게 된 계기가 MZ 트렌드와 잘 어울린다. 노래방 가사로 뜬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눌려’라는 가사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뽀로로의 웃는 얼굴이 한 화면에 포착된 사진이 인터넷 밈이 되면서 줄인 말로 진화되어 더욱 확산했다.

‘군싹(군침이 싹 도노)’도 뽀로로에 나오는 캐릭터인 루피의 표정을 변화시킨 소위 마성의 이미지로 다양한 패러디까지 낳았는데, 특히 1일1깡과 결합해 ‘화려한 군침이 나를 싸악 감싸노’가 절창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완내스(완전 내 스타일)’와 그 변형이랄 수 있는 ‘딱내스(딱 내 스타일)’ ‘안내스(내 스타일이 아니다)’도 자주 쓰인 줄인 형태의 신조어이다.

말을 가지고 줄이거나 약간 뒤트는 형식 이외에 올해는 한국어와 외국어를 조합시키는 유형이 인기를 끌었다. 특히 ‘왜 이러나’를 경상도식으로 한 ‘와이라노’를 영어 알파벳 ‘Whyrano’로 바꾼 데서 그치지 않고, 영문 글씨체나 배너 유형으로 개발해 ‘텍스트 대치’ 형식으로 쓰는 유행을 낳았다. ‘혹시’도 ‘hoxy’로 알파벳으로 소리 나는 대로 쓴 후에 ‘텍스트 대치’하는 디자인이 개발되어 쓰인다. 이외에 ‘머선129’는 ‘무슨’의 사투리 ‘머선’에 ‘일이고’라고 묻는 걸 비슷하게 소리 나는 ‘129’ 숫자로 바꾸었다. 이런 텍스트를 특정 글씨체나 디자인, 숫자 등으로 대치한 건 불편한 걸 묻거나 어려운 걸 부탁하는 상황을 조금 완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어색함을 줄이려는 ‘가슴이 웅장해진다’ 식 과장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즐겨 보는 웹툰에서 오랜만에 집에 온 20대 여성 작가가 집밥을 먹으며 환호한다. 그에 맞춰 아버지까지 ‘개존맛’이라고 하며 동의하는 표현을 하는데, 작가인 딸이 어색함을 넘어 거북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세대의 흐름을 알기 위해 기성세대에서 신조어들을 알 필요는 있다. 그러나 서로 어색해하면서 꼭 써야만 할 이유는 없다. 혹시(hoxy)나 해서.
<박재항 대학내일20대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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