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 재생·경기 부양책 등 ‘정치적 유산’ 남기고 사임
차기 총리 스가 관방장관 유력…코로나 대응 경제 회복 중점 예상
아베가 제도화한 국가안보회의 주도 안보정책 ‘뉴 노멀’ 될 개연성 높아
지난달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몇 주간 건강 이상설 등이 제기되면서 총리직 사임을 둘러싼 언론 보도들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상태가 호전되면서 갑작스러운 사임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이날 오후 3시경 NHK의 속보를 통해 아베 총리가 퇴진할 것임이 보도됐고, 오후 5시에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사임을 공식화했다.
사임의 공식적인 원인은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의 재발이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9월부터 2007년 8월까지의 1차 집권기에도 궤양성 대장염 악화로 예기치 못하게 퇴진했는데 2차 집권기에도 그러한 패턴이 반복된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6월에 재발 징후가 보여 검사를 하고 투약을 했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못한 채 8월 초에 지병이 재발한 상태라고 언급했다.
아베 총리는 이러한 건강 상태 속에서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사임하게 되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여 말했다. 그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를 내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국민이 맡겨준 책임을 자신감 있게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총리의 지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납치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언급하면서 일본의 대북정책 중 납치문제는 향후 지속적으로 국내 문제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일본 정치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로 1년 정도가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올해 초만 해도 7월 도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된다는 가정하에 9~10월 정도 중의원 해산으로 총리를 교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일본 국내 정치 상황이 급변하고 올림픽마저 연기돼 아베 총리가 정해진 임기까지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차기 총리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낮아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사임 표명으로 상황은 뒤바뀌었고 정치적 공백을 우려한 여당 자민당은 그 어느 때보다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후임 총리를 물색하고 있다.
아베 정부의 유산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부터 현재까지 7년 8개월간 재임하면서 일본 현대사에서 최장기 연속재임한 총리가 됐다. 이렇게 유례없는 장기집권의 배경에는 3번의 중의원 선거와 3번의 참의원 선거 모두 승리로 이끌었던 자민당 총재로서의 아베의 역할이 있었다.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회복한 이후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하면서 양원 모두 여당이 다수당을 차지해 정권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고이즈미 시기 이후 2006년부터 2012년까지 7년간 7번의 총리가 교체되었던 상황에서 이러한 아베 정부의 안정성은 장기집권으로 이어지기 유리한 조건이었다. 또한 2012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민주당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해진 것도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다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베 정부의 정치적 유산은 무엇일까?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서 국내적으로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복구를 통한 동북지역 부흥과 일본 사회의 재생에 있다고 언급했다. 동일본 대지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당시 민주당 정부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지만, 그만큼 대형 재해·재난으로부터 국가 전반에 걸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사회적인 연대를 회복하는 것이 정책 우선순위였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2021년으로 개최가 연기된 도쿄올림픽이 후쿠시마의 재건을 국내외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첫 경기를 후쿠시마에서 개최하고자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아베노믹스로 대변되는 경기 부양정책이다. 아베 정부는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이어진 디플레이션을 해소하기 위해 양적 완화와 기동적인 재정정책, 그리고 성장전략이라는 3개의 화살로 구성된 아베노믹스를 발표했다. 양적 완화로 시중에 돈을 풀어 기업의 투자를 확대하고 임금을 올려 소비를 활성화 시켜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고자 했으며, 2014년과 2019년 두 번의 소비세 인상으로 재원을 확보하면서 특별예산 편성을 통한 기동적 재정정책을 추진했다. 양적 완화에 따른 정부의 도덕적 해이, 재정 건전화 정책의 유보 등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아베 정부 시기 동안 주가가 상승하고 엔저(円低) 기조가 유지되면서 일본 경제가 일정 부분은 재생되고 있었다. 문제는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으로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역성장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아베 총리의 사임 표명 이후 일주일 사이 차기 총리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으로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자민당 내에서는 포스트 아베 시기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염두에 두었을 때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대신,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대신 모두 당장의 아베 총리 후임으로는 적합한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이 강하다. 스가 관방장관이 차기 총리로 지명될 경우 무엇보다 코로나19 대응에 집중해서 일본 경제의 재생을 추진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다. 따라서 세계적인 경제침체 속에서 차기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어떻게 계승해나갈 수 있는지도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아베 독트린, 뉴 노멀
이러한 국내 정치·경제면에서의 유산과 더불어 주의를 끄는 부분은 역시 아베 정부의 안보정책이다. 아베 정부는 전후 정치에서 처음으로 대전략이라는 큰 틀 아래서 안보전략을 구상하고 실현하고자 했다. 그 예가 2013년 ‘국가안보전략서’의 발간과 국가안보회의의 제도화였다. 기존의 안보정책이 외무성, 방위성 등 부처 중심으로 추진되었다면 아베 시기 일본의 안보정책은 총리 관저가 이끄는 국가안보회의에서 주도했다.
이러한 방식은 부처 간 장벽이 없는 상위단계에서 국가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전략적인 사고에 기반한 정책 결정을 한다는 측면에서 강점이 있기도 하지만, 정책결정과정이 비밀에 부쳐진다는 점에서 의회, 언론 그리고 학계의 역할이 제한되기 때문에 비민주적일 수 있다는 약점도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전략서’라는 최상위의 국가안보문서에 기반해서 국익과 목표를 제시하고 일본 나름의 안보전략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반응적이며 수동적이었던 행태를 벗어나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실제로 아베 시기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했고,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실시하고, 평화안전법제를 제정했다. 이러한 일본의 독자적인 조치와 더불어 미·일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면서 일본의 주도적인 방위역량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아베 시기 안보전략을 ‘아베 독트린’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전후 요시다 독트린이 일본 안보의 기조였던 것처럼, 향후 일본 안보에서 아베 독트린이 뉴 노멀(new normal)이 될 개연성이 높다.
필자 조은일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정치학 박사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지진 이후 일본 사회 재생·경기 부양책 등 ‘정치적 유산’ 남기고 사임
차기 총리 스가 관방장관 유력…코로나 대응 경제 회복 중점 예상
아베가 제도화한 국가안보회의 주도 안보정책 ‘뉴 노멀’ 될 개연성 높아
지난달 28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기자회견을 통해 공식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 몇 주간 건강 이상설 등이 제기되면서 총리직 사임을 둘러싼 언론 보도들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상태가 호전되면서 갑작스러운 사임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에 이날 오후 3시경 NHK의 속보를 통해 아베 총리가 퇴진할 것임이 보도됐고, 오후 5시에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가 사임을 공식화했다.
사임의 공식적인 원인은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의 재발이었다. 아베 총리는 2006년 9월부터 2007년 8월까지의 1차 집권기에도 궤양성 대장염 악화로 예기치 못하게 퇴진했는데 2차 집권기에도 그러한 패턴이 반복된 것이다. 기자회견에서 아베 총리는 6월에 재발 징후가 보여 검사를 하고 투약을 했지만 상태가 호전되지 못한 채 8월 초에 지병이 재발한 상태라고 언급했다.
아베 총리는 이러한 건강 상태 속에서도 코로나19 상황에서 사임하게 되어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여 말했다. 그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과를 내는 것이다”라고 강조하면서 “국민이 맡겨준 책임을 자신감 있게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총리의 지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을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납치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고 언급하면서 일본의 대북정책 중 납치문제는 향후 지속적으로 국내 문제로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일본 정치는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아베 총리의 임기는 2021년 9월까지로 1년 정도가 남아있는 상황이지만 올해 초만 해도 7월 도쿄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된다는 가정하에 9~10월 정도 중의원 해산으로 총리를 교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일본 국내 정치 상황이 급변하고 올림픽마저 연기돼 아베 총리가 정해진 임기까지 집권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차기 총리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낮아져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아베 총리의 사임 표명으로 상황은 뒤바뀌었고 정치적 공백을 우려한 여당 자민당은 그 어느 때보다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후임 총리를 물색하고 있다.
아베 정부의 유산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부터 현재까지 7년 8개월간 재임하면서 일본 현대사에서 최장기 연속재임한 총리가 됐다. 이렇게 유례없는 장기집권의 배경에는 3번의 중의원 선거와 3번의 참의원 선거 모두 승리로 이끌었던 자민당 총재로서의 아베의 역할이 있었다.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민주당으로부터 정권을 회복한 이후 2013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하면서 양원 모두 여당이 다수당을 차지해 정권의 안정성을 담보할 수 있었다.
고이즈미 시기 이후 2006년부터 2012년까지 7년간 7번의 총리가 교체되었던 상황에서 이러한 아베 정부의 안정성은 장기집권으로 이어지기 유리한 조건이었다. 또한 2012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민주당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면서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약해진 것도 장기집권이 가능했던 다른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아베 정부의 정치적 유산은 무엇일까? 아베 총리는 기자회견을 통해서 국내적으로는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복구를 통한 동북지역 부흥과 일본 사회의 재생에 있다고 언급했다. 동일본 대지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당시 민주당 정부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지만, 그만큼 대형 재해·재난으로부터 국가 전반에 걸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사회적인 연대를 회복하는 것이 정책 우선순위였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한다. 2021년으로 개최가 연기된 도쿄올림픽이 후쿠시마의 재건을 국내외적으로 홍보하기 위해 첫 경기를 후쿠시마에서 개최하고자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리고 아베노믹스로 대변되는 경기 부양정책이다. 아베 정부는 19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이어진 디플레이션을 해소하기 위해 양적 완화와 기동적인 재정정책, 그리고 성장전략이라는 3개의 화살로 구성된 아베노믹스를 발표했다. 양적 완화로 시중에 돈을 풀어 기업의 투자를 확대하고 임금을 올려 소비를 활성화 시켜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고자 했으며, 2014년과 2019년 두 번의 소비세 인상으로 재원을 확보하면서 특별예산 편성을 통한 기동적 재정정책을 추진했다. 양적 완화에 따른 정부의 도덕적 해이, 재정 건전화 정책의 유보 등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아베 정부 시기 동안 주가가 상승하고 엔저(円低) 기조가 유지되면서 일본 경제가 일정 부분은 재생되고 있었다. 문제는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으로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역성장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데 있다.
아베 총리의 사임 표명 이후 일주일 사이 차기 총리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으로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자민당 내에서는 포스트 아베 시기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염두에 두었을 때 이시바 시게루 전 방위대신,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대신 모두 당장의 아베 총리 후임으로는 적합한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는 입장이 강하다. 스가 관방장관이 차기 총리로 지명될 경우 무엇보다 코로나19 대응에 집중해서 일본 경제의 재생을 추진하는데 중점을 둘 것이다. 따라서 세계적인 경제침체 속에서 차기 총리가 아베노믹스를 어떻게 계승해나갈 수 있는지도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아베 독트린, 뉴 노멀
이러한 국내 정치·경제면에서의 유산과 더불어 주의를 끄는 부분은 역시 아베 정부의 안보정책이다. 아베 정부는 전후 정치에서 처음으로 대전략이라는 큰 틀 아래서 안보전략을 구상하고 실현하고자 했다. 그 예가 2013년 ‘국가안보전략서’의 발간과 국가안보회의의 제도화였다. 기존의 안보정책이 외무성, 방위성 등 부처 중심으로 추진되었다면 아베 시기 일본의 안보정책은 총리 관저가 이끄는 국가안보회의에서 주도했다.
이러한 방식은 부처 간 장벽이 없는 상위단계에서 국가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전략적인 사고에 기반한 정책 결정을 한다는 측면에서 강점이 있기도 하지만, 정책결정과정이 비밀에 부쳐진다는 점에서 의회, 언론 그리고 학계의 역할이 제한되기 때문에 비민주적일 수 있다는 약점도 있다. 그러나 ‘국가안보전략서’라는 최상위의 국가안보문서에 기반해서 국익과 목표를 제시하고 일본 나름의 안보전략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반응적이며 수동적이었던 행태를 벗어나고 있음은 확실해 보인다.
실제로 아베 시기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했고, 방위장비이전 3원칙을 실시하고, 평화안전법제를 제정했다. 이러한 일본의 독자적인 조치와 더불어 미·일 가이드라인을 개정하면서 일본의 주도적인 방위역량을 발휘하는 방향으로 미·일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아베 시기 안보전략을 ‘아베 독트린’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전후 요시다 독트린이 일본 안보의 기조였던 것처럼, 향후 일본 안보에서 아베 독트린이 뉴 노멀(new normal)이 될 개연성이 높다.
필자 조은일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정치학 박사는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