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전쟁과 재현의 윤리-다큐멘터리 ‘아르마딜로(2010)’
아프가니스탄 파견 덴마크 병사들
헬멧에 카메라… 날것 그대로 촬영
점차 전쟁에 중독되는 과정 표현
저항할 수 없는 적 사살 자랑
재판에 회부됐지만 무죄 판결
전쟁범죄 vs 진실 기록 극한 대립
덴마크 역대 최고 흥행기록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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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전장의 풍경은 발달된 컴퓨터그래픽(CG)의 도입으로 생생하게 재현되었고 그럴수록 관객들은 열광했다. 이후에 벌어진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에서도 ‘영화처럼 생생한 보도’는 계속되었다. 재현이 사실적일수록 진실은 은폐된다는 사실은 쉽게 잊혀졌다.
덴마크 감독 야누스 메츠 페데르센의 ‘아르마딜로(2010)’는 나토(NATO) 평화유지군으로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된 덴마크군 병사들을 응시한 영화다. 매드 미니, 다니엘 웰비, 한국계 병사인 위생병 비스커뢰드 김은 북유럽의 선진국 덴마크의 평범한 젊은이들이다. 그들이 겪은 전쟁은 1인칭 슈터 게임뿐이었다. 이 청년들은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자극적인 경험을 하고자 아프가니스탄 파병에 자원한다. 파병 초기 그들은 정찰과 지뢰 탐색 작업을 반복하며 지루한 시간을 보낸다. 그들이 느끼는 지루함은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병사들은 툴툴거리면서 본격적인 전투가 벌어지길 바란다. 전쟁영화의 일반적인 흐름과 같다.
한 가지 다른 것은 영화에 등장하는 병사들이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하는 배우들이 아니라 실제로 덴마크군 병사들이라는 사실이다. 감독은 6개월간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면서 병사들의 헬멧, 차량, 무기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전장의 풍경을 날 것 그대로 담아냈다. 다큐멘터리 영화에 흔히 사용되는 인터뷰나 내레이션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보통 관객들은 영화를 볼 때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는 자막을 보면 영화에 더욱 집중하곤 한다. 화면 속의 자극적인 장면들이 실화라는 사실은 흥미를 배가시키게 마련이다. 그러나 극영화의 형식을 빌린 다큐멘터리 영화 ‘아르마딜로’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를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 넘도록 계속된 병사들의 지루한 일상은 전투가 벌어지면서 급속하게 붕괴된다. 행군 도중 탈레반의 저격에 쓰러지는 병사의 모습, 포사격을 받은 탈레반 전사들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모습이 그대로 카메라에 담긴다. 병사들은 전사하거나 부상당한 동료를 보자 극도로 흥분하면서 총기를 난사한다. 전투가 계속될수록 병사들의 분노는 고조된다. 그리고 그들은 점차 전쟁에 중독된다.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면서도 교전이 없으면 곧바로 무료함을 느끼고 무료함이 누적된 만큼 그들은 잔인해진다.
전쟁에 익숙해진 병사들은 자신들이 사살한 탈레반 병사의 몸을 총으로 파헤치면서 전리품을 챙긴다. 병사들은 적을 사살한 것을 자랑하고, 저항할 수 없는 적을 사살했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는 대화까지 나누면서도 누구도 실제 현장에 없다면 결코 진실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한다. 카메라는 이 모든 것을 고스란히 기록한다. 이것은 전쟁영화에 너무도 흔히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아닌가. 그렇지만 탈레반 병사의 시신이 영화의 소품이 아니라 진짜 시신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관객들은 영화를 즐기지 못하게 된다.
이 영화가 공개되자 덴마크 사회는 커다란 충격에 빠졌다. 이 영화는 전쟁범죄를 기록한 영상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한편에서는 전쟁을 미화하지 않은 진실의 기록이라는 극찬도 이어졌다. 파병의 정당성을 둘러싸고 국방장관이 주최한 긴급회의가 소집되고 영화 촬영에 동원된 병사들이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다(병사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숱한 논란 속에 ‘아르마딜로’는 덴마크에서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고 칸느 영화제에서 비평가주간 대상을 받았다.
다큐멘터리 영화인 ‘아르마딜로’의 서사는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과 비슷하다.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헬기의 프로펠러 회전 장면은 명백히 ‘지옥의 묵시록’ 도입부를 닮았다.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정글지대에 잠적한 커츠 대령을 찾아서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은 윌라드 대위가 전장을 뚫고 커츠에게 다가갈수록 점차 광기에 물드는 과정은 ‘아르마딜로’에 등장하는 병사들의 모습과 겹쳐진다.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지만 페레드센 감독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대부분의 병사들이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나는 그 원인을 탐구하고 싶었을 뿐이다. (…)전쟁은 우리가 원하는 변화를 전혀 만들고 있지 못하다.”
‘아르마딜로’가 극사실주의의 포장을 한 교묘한 연출극인지 진실을 담으려는 새로운 시도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다만 확실한 것은 이 영화가 어떤 저널리즘보다 전쟁의 광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한다는 사실이다. <이정현 한국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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