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루벤스의 마리 드 메디치 연작 중 ‘1600년 11월 9일 리옹에서 왕과 마리 드 메디치의 만남’
하늘엔…
주피터 얼굴은 앙리4세
주노 얼굴은 마리 드 메디치
둘 사이엔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
둘의 만남 ‘하늘의 운명’이라고 강조
땅엔…
황금 마차 탄 여인은 리옹시 의인화
횃불 든 푸토, 결혼식 축하 때 등장
리옹 성당에서 실제 결혼식 상징
결혼식보다 첫 만남에 더 큰 의미 부여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 루브르에 있는 마리 드 메디치의 연작(Marie de Medici Cycle)을 감상해 보겠다. 제목은 ‘1600년 11월 9일 리옹에서 왕과 마리 드 메디치의 만남’이다. 마리 드 메디치가 처음으로 앙리 4세를 만나는 장면이다. 오늘 작품은 첫 만남에 관한 것인데, 크게 아래위로 구분돼 있다. 이 방식은 다른 화가들도 많이 쓰던 방식이다. 세상에는 하늘과 땅이 있으니까. 바로크 시대까지만 해도 그랬다.
먼저 하늘을 보자. 손을 마주 잡은 남녀가 있고 그 사이에 한 사람이 서 있다. 하늘에 있으니 당연히 신일 텐데, 어떤 신일까? 황금마차를 타고 왔고, 여자 옆에는 공작새가 보이고, 남자 옆에는 독수리가 보인다. 주피터와 주노다. 최고의 신과 최고의 여신. 그렇다면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굴까? 머리에 화관을 쓰고 횃불을 들었다.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Hymenaios)다. 남녀 사이에 딱 서 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피터와 주노는 이미 결혼한 사이인데 결혼의 신이 왜 나왔을까? 알레고리다. 그림 속의 주피터는 주피터가 아니고, 주노는 주노가 아니다. 얼굴을 보면, 주피터의 얼굴은 앙리 4세이고 주노의 얼굴은 마리 드 메디치다. 앞에서는 주피터와 주노를 꾸준히 등장시켜 이 둘을 축복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바꿔버렸다.
그럼 주변 분위기를 어떻게 잡았는지 보자. 뭉게구름 파란 하늘 사이로 태양이 강렬한 빛을 발한다. 그 옆에는 무지개가 있다. 오른편에는 횃불을 든 푸토[유아(幼兒)라는 뜻]들이 결혼을 축복한다. 환상의 결혼 서약이다. 그런데 이 남녀는 단지 악수를 하고 있다. 이 장면을 보고 결혼을 연상하기는 어렵다. 결혼하면 하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남녀가 나와 키스를 하거나 반지를 끼워줘야 연상이 되는데, 단지 악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이렇게 그려 놓으면 누구나 결혼을 연상했다. 유명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도 단지 손을 잡고 있다. 결혼이다. 이런 식의 표현방식을 덱스트라룸 이운치오(dextrarum iunctio)라고 한다. 라틴어인데 서로가 올바르게 연결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경건하게 손만 잡고 있어도 누구나 결혼을 연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아래를 보자. 황금 마차에 여인이 타고 있고, 그 마차를 두 마리의 사자가 끌고 있다. 사자 위에는 두 명의 푸토가 횃불을 들고 있다. 자주 보던 장면은 아니다. 바로크 시대에 신화 작품을 재미있게 보려면 신화적 지식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렇게 볼 수 있다. 여인이 운전하는 마차인가? 그렇다면, 신랑 신부를 마중 나왔나? 그런 상상도 할 수 있다. 마차를 탄 여인의 머리 위를 보자. 건축물이 있다. 그렇다면 의인화다. 여인은 리옹시의 의인화다. 앙리 4세와 마리는 리옹시에서 처음 만났으니까. 의인화를 이끄는 것은 사자다. 사자는 리옹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리옹시의 문장을 보면 사자가 있다. 그렇다면 사자등에 올라탄 푸토들은 뭘 하는 건가? 횃불을 든 푸토는 예로부터 결혼식에 자주 등장했다. 축하해주러 온 것이다. 결혼식도 빛내 주고 말이다. 사자 머리 뒤로는 멀리 성들이 보인다. 리옹시다. 리옹시는 아주 큰 도시였다.
작품 전체는 이렇다. 신 주피터와 주노만큼이나 대단한 결혼식을 치른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치. 그것을 확인해 주는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 그들을 마중 나온 리옹시의 의인화와 리옹시의 상징.
이들은 사실 1600년 11월 12일 리옹 성당(Cathedrale Saint-Jean-Baptiste de Lyon)에서 실제 결혼식을 한다. 하지만 12일의 결혼식보다는 9일의 첫 만남을 더 의미 있게 본 것이다. 이 둘의 만남은 하늘의 운명이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앙리 4세는 예전에 마고 여왕과 한번 결혼도 했었으니, 식 자체보다는 상징을 중요시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작품 속에 앙리 4세와 마리의 위대한 사랑은 거친 사자조차 길들일 수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늘에 있는 무지개와 별은 평화의 상징이니 이 결혼을 시작으로 프랑스에 평화가 온다는 암시가 들어 있다고도 한다.
오늘은 메디치 연작 중 일곱 번째로 ‘1600년 11월 9일 리옹에서 왕과 마리 드 메디치의 만남’을 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루이 13세가 태어나는 ‘왕세자의 탄생’을 감상해보자.
<31> 루벤스의 마리 드 메디치 연작 중 ‘1600년 11월 9일 리옹에서 왕과 마리 드 메디치의 만남’
하늘엔…
주피터 얼굴은 앙리4세
주노 얼굴은 마리 드 메디치
둘 사이엔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
둘의 만남 ‘하늘의 운명’이라고 강조
땅엔…
황금 마차 탄 여인은 리옹시 의인화
횃불 든 푸토, 결혼식 축하 때 등장
리옹 성당에서 실제 결혼식 상징
결혼식보다 첫 만남에 더 큰 의미 부여
오늘도 지난주에 이어 루브르에 있는 마리 드 메디치의 연작(Marie de Medici Cycle)을 감상해 보겠다. 제목은 ‘1600년 11월 9일 리옹에서 왕과 마리 드 메디치의 만남’이다. 마리 드 메디치가 처음으로 앙리 4세를 만나는 장면이다. 오늘 작품은 첫 만남에 관한 것인데, 크게 아래위로 구분돼 있다. 이 방식은 다른 화가들도 많이 쓰던 방식이다. 세상에는 하늘과 땅이 있으니까. 바로크 시대까지만 해도 그랬다.
먼저 하늘을 보자. 손을 마주 잡은 남녀가 있고 그 사이에 한 사람이 서 있다. 하늘에 있으니 당연히 신일 텐데, 어떤 신일까? 황금마차를 타고 왔고, 여자 옆에는 공작새가 보이고, 남자 옆에는 독수리가 보인다. 주피터와 주노다. 최고의 신과 최고의 여신. 그렇다면 사이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굴까? 머리에 화관을 쓰고 횃불을 들었다.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Hymenaios)다. 남녀 사이에 딱 서 있으니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주피터와 주노는 이미 결혼한 사이인데 결혼의 신이 왜 나왔을까? 알레고리다. 그림 속의 주피터는 주피터가 아니고, 주노는 주노가 아니다. 얼굴을 보면, 주피터의 얼굴은 앙리 4세이고 주노의 얼굴은 마리 드 메디치다. 앞에서는 주피터와 주노를 꾸준히 등장시켜 이 둘을 축복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바꿔버렸다.
그럼 주변 분위기를 어떻게 잡았는지 보자. 뭉게구름 파란 하늘 사이로 태양이 강렬한 빛을 발한다. 그 옆에는 무지개가 있다. 오른편에는 횃불을 든 푸토[유아(幼兒)라는 뜻]들이 결혼을 축복한다. 환상의 결혼 서약이다. 그런데 이 남녀는 단지 악수를 하고 있다. 이 장면을 보고 결혼을 연상하기는 어렵다. 결혼하면 하얀 웨딩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남녀가 나와 키스를 하거나 반지를 끼워줘야 연상이 되는데, 단지 악수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크 시대에는 이렇게 그려 놓으면 누구나 결혼을 연상했다. 유명한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도 단지 손을 잡고 있다. 결혼이다. 이런 식의 표현방식을 덱스트라룸 이운치오(dextrarum iunctio)라고 한다. 라틴어인데 서로가 올바르게 연결됐다는 뜻이다. 그래서 경건하게 손만 잡고 있어도 누구나 결혼을 연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아래를 보자. 황금 마차에 여인이 타고 있고, 그 마차를 두 마리의 사자가 끌고 있다. 사자 위에는 두 명의 푸토가 횃불을 들고 있다. 자주 보던 장면은 아니다. 바로크 시대에 신화 작품을 재미있게 보려면 신화적 지식과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렇게 볼 수 있다. 여인이 운전하는 마차인가? 그렇다면, 신랑 신부를 마중 나왔나? 그런 상상도 할 수 있다. 마차를 탄 여인의 머리 위를 보자. 건축물이 있다. 그렇다면 의인화다. 여인은 리옹시의 의인화다. 앙리 4세와 마리는 리옹시에서 처음 만났으니까. 의인화를 이끄는 것은 사자다. 사자는 리옹시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리옹시의 문장을 보면 사자가 있다. 그렇다면 사자등에 올라탄 푸토들은 뭘 하는 건가? 횃불을 든 푸토는 예로부터 결혼식에 자주 등장했다. 축하해주러 온 것이다. 결혼식도 빛내 주고 말이다. 사자 머리 뒤로는 멀리 성들이 보인다. 리옹시다. 리옹시는 아주 큰 도시였다.
작품 전체는 이렇다. 신 주피터와 주노만큼이나 대단한 결혼식을 치른 앙리 4세와 마리 드 메디치. 그것을 확인해 주는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 그들을 마중 나온 리옹시의 의인화와 리옹시의 상징.
이들은 사실 1600년 11월 12일 리옹 성당(Cathedrale Saint-Jean-Baptiste de Lyon)에서 실제 결혼식을 한다. 하지만 12일의 결혼식보다는 9일의 첫 만남을 더 의미 있게 본 것이다. 이 둘의 만남은 하늘의 운명이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앙리 4세는 예전에 마고 여왕과 한번 결혼도 했었으니, 식 자체보다는 상징을 중요시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작품 속에 앙리 4세와 마리의 위대한 사랑은 거친 사자조차 길들일 수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고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늘에 있는 무지개와 별은 평화의 상징이니 이 결혼을 시작으로 프랑스에 평화가 온다는 암시가 들어 있다고도 한다.
오늘은 메디치 연작 중 일곱 번째로 ‘1600년 11월 9일 리옹에서 왕과 마리 드 메디치의 만남’을 보았다. 다음 시간에는 루이 13세가 태어나는 ‘왕세자의 탄생’을 감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