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MZ세대를 말하다

이 커피 한 잔에… 창조·도전·공유·기쁨 다 녹아들었고나

입력 2020. 07. 07   16:16
업데이트 2020. 07. 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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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왜 MZ세대는 달고나 커피에 열광했나? : 그 탄생과 확산 속의 트렌드


크림·가루 소품으로 영상 최적화
고생담 담은 제조후기까지 곁들여
시각적 자극 댓글 이끌어내기 좋아
새로운 것 시도 MZ세대 취향저격
코로나19로 강제 집순이·집돌이
디지털 인싸력 필수 아이템 돼




인스턴트 커피가루와 설탕, 뜨거운 물을 같은 비율로 넣고 크림처럼 될 때까지 휘저은 후 차갑거나 뜨거운 우유를 부어서 마시는 커피음료가 ‘달고나 커피’라는 이름을 달고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그야말로 휘젓기 시작했다. 이름은 2020년 1월 모 방송국 프로그램에서 패널 하나가 마카오에서 먹은 커피 얘기를 하면서 “달고나 같다”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는 에스프레소 형태의 진한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어서 크림처럼 만들고 뜨거운 물을 살짝 더 부어서 마시는 방식은 이전부터 존재했다.

지난 1월 이 지면의 ‘마이사이더’ 편에서 더티 커피 얘기를 했었다. 크림이나 우유를 잔에서 넘치게 하고, 거기에 취향에 따라서 초콜릿이나 커피가루 등을 부어서 지저분해 보이지만 역설적으로 더 맛있게 당기는 시각 효과를 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재료를 포함해 만드는 방식이 달고나 커피와 아주 유사하다. 패션 트렌드처럼 커피도 유행을 많이 타서 새로운 형식의 커피가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소셜미디어를 장식하는 현상은 꽤 오래되었다. 콜드브루와 플랫화이트가 대표적이다. 달고나 커피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다. MZ세대 안에서 면면히 흘러 내려오는 것을 다르게 변형, 발전시키는 문화가 있다. 이에 가속도를 붙이며 추진력을 가하는 게 바로 시각적 효과이다.

달고나 커피까지, 최첨단 유행으로 자리 잡았던 커피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바로 시각적 효과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게, 곧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하다. 크림이나 가루 등이 소품으로 작용하며 영상에 최적화됐다. 여기에 달고나 커피는 만드는 과정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점차 크림처럼 변해가는 모습을 담으면서 자신의 고생담을 담은 제조 후기까지 곁들인다. 시각적 자극을 주면서 공유하고 댓글을 이끌어내기 좋다.

크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소소한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킨다. 처음에 100번을 저어야 한다고 해서 시작했는데, 곧 400번이 대세가 됐고, 1000번을 휘저었다고 하는 MZ세대들도 등장했다. 목표로서 숫자가 갖는 피할 수 없는 마력이 있다. 정확하게 미션 완수를 위해 손목을 돌리면서, 도전 자체가 콘텐츠가 된다. 얼마나 빨리, 균일한 힘과 속도를 유지하는가 등등의 세부 평가 기준들이 개발돼 나온다.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내고 시도하는 MZ세대의 취향과 제대로 맞아떨어진 셈이다.

실제로 달고나 커피로부터 ‘○○○번 저어 만드는’ 요리나 레시피들이 무리를 지어서 출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1000번 저어 만든다는 수플레 오믈렛과 500번의 메이플시럽 잼이다. 수플레 오믈렛은 실버 셀렙의 대표 격인 박막례 할머니의 시도로 더욱 유명해졌는데, 사실 박 할머니는 그전에 달고나 커피까지 시도했었다. 끓인 메이플시럽을 저어서 걸쭉하게 잼처럼 만드는 건 구독자 30만이 넘는 모 유튜브 채널에서 나온 이후에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의 집들이 파티 장면에서 소개되며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달고나 커피의 명칭도 그랬지만 이런 새로운 유행의 전파에서 공중파TV라는 전통 매체와 온라인 중심의 비교적 신규로 분류될 수 있는 매체들이 어떻게 서로 합쳐지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국에서는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하다가 해외에서 화제가 되거나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에서 역주행하는 아이템들이 있다. 음악에서 특히 그런 사례들이 많다. 2016년에 가수의 목소리와 주변 사물들이 내는 소리로만 구성한 국내 가수의 곡은 해외의 틱톡 사용자들에게 배경 음악으로 인기를 끌면서 국내 음원 차트에 올랐고, 음악 방송에까지 출연하게 됐다. 9년 전 앨범이 랜선 공연으로 빌보드 차트 클래식 부문의 1위를 질주하고 있는 이루마도 빌보드에서의 역주행이 화제가 되면서 한국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달고나 커피도 집콕하는 한국의 아이돌 스타들이 브이로그에 제조 모습을 올리면서 해외의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그렇게 화제가 된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더욱 확산하는 효과가 일어났다.

새로운 요리를 시도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 잘 만든 달고나 커피만 멋진 콘텐츠가 되는 건 아니다. 개그의 최고봉은 ‘자학개그’라고 한다. 남의 실패를 보면서 즐거워한다면 좀 이상하지만,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라며 위안을 얻기도 하고, 실패한 이를 격려하면서 유대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새로운 걸 시도한 MZ세대 자신도 성공하든 실패하든 자신이 좋으면 즐겁다. 다른 이들이 반응해주면 그 자체로 뿌듯하기도 하다. 사실 실패에 더 많은 반응이 오기 마련이다. 꼭 목표한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달고나 커피 열풍의 가장 큰 원인으로 코로나19를 든다. 강제로 집순이, 집돌이가 된 이들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놀잇거리로 개발한 대표적인 식음료 아이템으로 달고나 커피가 등장했다. 똑같은 커피 음료를 자유롭게 커피숍에서 마실 수 있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메뉴였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으니, 커피숍에서 먹던 것을 연상해서 만들기를 시도하고, 하다 보면 레시피가 ‘400번 휘젓는다’라는 식으로 매뉴얼처럼 정리되어 만들어지고, 또 거기서 조금씩 변형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것으로 방구석에 앉아 있지만, 디지털 공간에서의 ‘인싸력’을 뽐내는 필수 아이템이 된 것이다.

많은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콘텐츠나 행사 또는 행동의 조건으로 ‘쉬워야 한다’는 걸 든다. 집에서의 길고 긴 시간에 뭔가 신경 쓰면서 해야 하는 것들은 부담스럽다. 특별한 기기나 음식 재료를 구입할 필요 없이 집에서, 있는 재료와 기기만으로, 무념무상 상태에서 그저 휘저으며 시간을 보내는 소일거리라는 용이성도 달고나 커피가 인기를 끈 주 요인이다. 하다 보면 기기도 방식도 진화되기 마련이다. 위에서 휘젓는 횟수가 처음 100번에서 400번을 거쳐서 1000번 이상으로 올라갔듯 달고나 커피도 진화, 분화했다.

앞서 저어 만드는 수플레 오믈렛이나 메이플 시럽 잼 얘기를 했는데, 기존 기업들에서 달고나 커피의 인기에 주목하여 그 레시피나 맛에 착안한 제품들을 내놓았다. 한 유가공식품업체에서는 6300번을 저어서 만들었다는 아이스크림을 유튜브에 올려서, 단숨에 100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제 웬만한 커피숍에서는 달고나 커피에 더해 달고나 조각을 올려주거나 갈아서 넣어주는 메뉴들을 선보이고 있다.

단맛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는데, 이는 복고 유행과 연관돼 있다. ‘달고나’라는 품목 자체가 MZ세대보다는 그 윗세대 사람들이 길거리 노점상에서 불에 졸여서 뽑기로 즐겼던 불량식품스러운 것이었다. ‘단짠(달고 짠)’이나 ‘맵짠(맵고 짠)’이란 자극적인 맛이 주도하던 트렌드가 그에 대한 반작용이랄까 전통과 선을 잇는 단맛으로 흐르고 있다. 인절미, 흑임자, 단호박 맛 등을 내세운 아이스크림이나 빙수 등의 디저트들이 대표적인 예다.

먹는 것에서도 직접 해보고 자신만의 장식을 개발해보고, 그를 공유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MZ세대다운 요소들이 달고나 커피에 듬뿍 담겨 있다. 더운 여름이 본격 시작됐다. 시원한 달고나 커피에 도전하면서 더위도 물리치며 달콤한 시간을 즐겨 보자.

<박재항 대학내일 20대연구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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