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한국전쟁 70주년, 대중가요로 본 6.25전쟁

전쟁 중 잃은 둘째 딸…애끓는 마음 담은 노래

입력 2020. 07. 03   16:40
업데이트 2020. 07. 05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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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단장의 미아리고개 - 반야월 작사 / 이재호 작곡 / 이해연 노래


1·4 후퇴 후 딸 사망 소식에 절망
전쟁의 아픈 현실 원망하며 작사 
 
북한군-국군 교전하던 노래 속 고개
납북 유명인사들 ‘이별눈물’로 흠뻑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작사가 반야월의 둘째 딸, 수라 양의 영전에 바친 노래다. 반야월은 1951년 1·4후퇴 후 잿더미가 된 서울로 돌아왔다. 하지만 미처 서울을 탈출하지 못했던 그의 부인은 영양실조로 병석에 누워 있었고, 둘째 딸은 사망하고 없었다. 그나마도 공산군의 성화에 못 이겨 입은 옷 그대로 꽁꽁 언 땅을 파고 묻어야 했다는 사실을 아내로부터 듣는다. 이 아픈 사연을 어찌하랴. 반야월은 쓰리고 아픈 현실을 원망하며 애절한 마음으로 가사를 써 내려간다.

단장(斷腸)은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 옛날 중국 동진(東眞) 사람 환온공(桓溫公)이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가던 도중 양자강(揚子江, 長江) 삼협(三峽)이라는 곳에 이르렀는데 그곳에서 부하가 새끼원숭이 한 마리를 잡았다.

이 새끼원숭이를 배에 싣고 가는데, 어미로 보이는 원숭이 한 마리가 슬프게 울부짖으며 계속 뱃길을 따라오는 것이었다. 100여 리를 계속 따라오던 어미 원숭이는 배가 잠시 정박한 사이 배 위에 뛰어들더니 그대로 숨지고 말았다.

환공이 이상하게 생각하여 어미 원숭이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 그로부터 단장은 지극한 슬픔의 뜻으로 쓰이게 됐다고 한다.

장강 삼협은 중국 충칭시와 후베이성 장강 주류의 세 개 협곡이다. 펑제현 백제성에서 후베이성 이창시 남진관까지 193㎞ 사이에 있다. 가장 상류의 구당협은 길이 8㎞, 둘째 무협은 45㎞, 셋째 서릉협은 66㎞다.

최상류의 구당협은 길이는 짧지만 웅대하고 1000m가 넘는 산맥 한가운데를 칼로 갈라놓은 듯하다. 이태백은 구당협에 있는 기문의 정경을 찬송했다. 기문은 100m 폭의 장강 양쪽에 1200m의 석회암 절벽이 문 기둥처럼 서 있어서 기문천하웅(夔門天下雄)이라고 했다. 북쪽 언덕에는 백제성과 백제묘가 있는 백제산이 있지만, 댐의 물이 차오르면서 호수에 떠 있는 섬이 됐다.

이어지는 무협은 충칭시와 후베이성 경계에 있다. 장강은 무산산맥을 북서에서 남동으로 꿰뚫으면서 흘러간다. 무산 십이봉에서도 신녀봉은 구름 속에 머리를 감추고 산자락을 내밀고 있다. 티벳으로 가는 차마고도 벼랑길에서 바라보는 옥룡설산의 풍취와 유사하다. 뒷자락 서릉협은 무산 동쪽에서 남북 방향으로 나란히 뻗어있는 산맥을 장강이 차례차례 관통한다.

양쪽 낭떠러지는 험준한 바위 봉우리로 싸여 있으며, 몇 개의 사원과 마을이 있는 것 외에는 사람의 모습이 없고 일곱 개의 계곡과 두 개의 급류가 있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래 속의 미아리고개는 서울 돈암동과 길음동 사이의 고개다. 이곳은 6·25전쟁 당시 북한군과 국군 간에 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던 곳으로 인민군이 후퇴할 때 납북한 사람들의 가족들도 이곳에서 마지막 배웅을 해야 했다. 1950년 6월 27일 북한군 탱크가 처음 밀고 왔다가, 그해 9월 28일 퇴각해 간 곳.

그들은 퇴각하면서 각계의 유명 인물들을 강제 납북했다. <향수>의 시인 정지용도 이곳에서 가족과 이별했다. 이름도 많다. 되넘이고개, 적유현, 돈암고개 등. 되넘이는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사 되놈(胡人·턱 밑에 살이 붙은 사람)들이 넘어왔다가 다시 넘어간 고개란 의미다. 또한 6·25전쟁 당시 미8군사령관으로 낙동강방어작전(워커라인, 작전명 Stand or Die)과 인천상륙작전(작전명 Chromite)을 지휘했던 월턴 해리스 워커 장군이 1950년 12월 23일 교통사고로 순직한 곳이기도 하다.

그의 외아들 샘 워커 대위는 미 24사단 중대장으로 6·25전쟁에 참전했고, 이후 미 육군대장이 된다. 아버지와 아들이 육군대장 계급을 단 희귀한 사례다. 서울 워커힐호텔 이름의 주인공이다. 이 호텔은 그가 전사한 자리 근처에 세워졌다. 오늘날까지도 워커힐 호텔 창립 기념일 행사에는 워커 장군의 후손들이 VIP로 초빙된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노랫말을 지은 반야월은 당시 39세로 본명은 박창오였다. 1917년 마산에서 태어나 진해농산학교를 졸업했으며, 1939년 태평레코드사 주최 전국신인가수선발대회에서 입상해 가수로 데뷔했다. 그는 해방 후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소양강 처녀>, <유정천리> 등 수천 곡을 작사했다. 그가 사용한 예명은 진방남·반야월·추미림·박남포·허구 등 많다.

아호와 필명을 503개나 사용한 추사 김정희를 모방한 것일까? 가수로 데뷔한 이듬해인 1940년 진방남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면서 <불효자는 웁니다>를 불러 히트시켰고, 1945년 광복 이후에는 반야월로 이름을 바꿔 작사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1942년 <넋두리 이십년> 가사를 처음으로 만든 이후 한국가요 사상 가장 많은 5000여 곡을 남기고, 2012년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별세 4일 전까지 작품 활동을 한 한국가요계의 전설이다.

유행가만큼 시대와 역사의 현장을 사실적으로 구전(口傳)할 수 있는 수단도 드물다. 편년체적인 기록역사에 더해 사람들의 삶을 골간으로 하는 인류학적 유물보전체로서 유행가의 값어치를 어찌 산술합산하랴.

우리나라에서 유행가 가수로 음반을 낸 사람은 40여 만 명이란다. 2019년 TV조선에서 진행한 ‘내일은 미스트롯’ 경연에 응모한 인원은 1만5000여 명, 2020년 ‘미스터트롯’에 참가한 인원은 1만7000여 명이었다. 한국대중가요연구소 자료에 의하면 1980년대까지 분석 대상에 포함한 노래는 6만4000여 곡이었다. 리메이크 가수들이 부른 노래를 제외한 숫자이니 가히 짐작이 어렵다. 그 뒤로도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갔으니.

우리나라 유행가 가수들 모두가 저마다 빛을 발하는 옥구슬로 거듭나기를 기원 드린다.


유 차 영
한국콜마홀딩스 전무.예비역 육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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