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국방안보

‘밀리터리 포토’ 명패 지프 타고 최일선 누빈… 그의 유일한 무기는 라이카 카메라였다

조용학

입력 2020. 07. 02   17:18
업데이트 2020. 07. 02   17:27
0 댓글

● 국방부 정훈국 사진대와 사진대장 임인식


6·25전쟁 최전방 취재…국방홍보의 선구자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당일 임인식 사진대장. 그가 ‘나의 유일한 무기’라며 항상 들고 다녔던 독일제 라이카3F(Leica 3F)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당일 임인식 사진대장. 그가 ‘나의 유일한 무기’라며 항상 들고 다녔던 독일제 라이카3F(Leica 3F) 카메라를 손에 들고 있다.
개성에서 열린 정전회담 취재 중 북한군 병사와 환담하는 임인식.
개성에서 열린 정전회담 취재 중 북한군 병사와 환담하는 임인식.
1950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아들이자 종군기자로 참전했던 랜돌프 처칠과 함께한 임인식.
1950년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아들이자 종군기자로 참전했던 랜돌프 처칠과 함께한 임인식.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누구인가?

인간의 시간은 경험의 과정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어딘가를 지나치며 보고 들은 모든 것은 개인의 소중한 추억이자 기록이 된다. 개인의 기록들이 모여 역사가 된다. 국방홍보원 70년을 맞아 그 뿌리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6·25전쟁 당시 수많은 외신기자들이 전쟁의 참상을 사진으로 기록했는데 ‘우리는 왜 그러지 못했을까?’였다. 이 의문이 어리석었음을 깨닫는 것은 순간이었다. 6·25 초기부터 공식적으로 전쟁을 사진으로 기록했던 조직이 국방부에 존재했던 것이다. 국방부 정훈국에 있었던 사진대와 이를 이끌었던 임인식 사진대장을 통해 국방홍보의 뿌리를 돌아본다.


국방부 정훈국 사진대


6·25전쟁이 발발하자 국방부는 보다 유기적이고 효율적인 정훈활동을 위해 기존 정훈국 조직을 개편한다. 육군본부 정훈감실을 흡수·통합한 뒤 기존 보도과를 확대해 보도대와 사진대, 촬영대 등을 구성한 것이다. 국방부 정훈국 소속 사진대는 주요 전투 현장에 투입돼 국군의 활약상과 전쟁의 참상을 기록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싸운다’는 말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이들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사진대장 임인식(林寅植. 1920~1998)

한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의 과거를 살펴볼 수 있다. 그 사람이 기록의 달인이라면 더욱 선명하게 들어온다. 누구보다 기록을 중요시했던 임인식 사진대장은 국방홍보의 선구자 같은 존재였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난 임 대장은 고향에서 포목점 운영과 무역업을 하며 사진 활동을 하다 1944년 서울로 왔다. 조선경비대 창설식, 대한민국 정부 수립식 등 정부 주요 행사를 포함해 당시의 역사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던 그는 정부의 엘리트 육성 정책에 따라 1948년 12월 육군사관학교 8기 특별 2반으로 입교해 소위로 임관한다. 전쟁 당시에는 국방부 정훈국 보도과 소속의 사진대 대장을 맡게 되는데 전쟁 발발부터 정전회담 과정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주요 국면들을 가장 가까이서 취재했다.

그의 임무는 사진대를 이끌고 군이 주둔하는 도시마다 사진관을 접수한 뒤 필름을 현상해 국내외 언론사를 통해 전황을 전하는 것이었다. ‘밀리터리 포토(Military Photo)’ 명패를 단 지프를 타고 전투병과 함께 항상 최일선에서 총 대신 카메라를 메고 서 있었다. 1950년 7월 10일 충남 연기군 전의면 부근에서 그가 촬영한, 손이 뒤로 묶여 학살된 미군 사진은 미국 전역을 분노로 뒤집히게 했다. 1950년 8월 경북 월성에서 촬영한 안강·포항전투로 투입되는 교복 입은 학도병들의 출병 사진은 학도병의 모습을 대표하는 사진이다.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서울을 수복하던 순간에도, 북진하는 국군을 따라 평양을 거쳐 압록강까지 올라갔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던 순간에도, 정전회담의 순간에도 그가 있었다.


국내 첫 사진통신사 설립 등 활약

1952년 육군 대위로 예편한 그는 한국의 ‘매그넘’을 목표로 국내 최초의 사진전문 통신사인 ‘대한사진통신사’를 설립, 정부 행사를 포함한 대한민국 전반에 걸친 삶의 현장을 촬영해 정부 및 해외 언론에 제공했다. 1953년부터는 육군본부에서 유엔 참전국에 배포한 영문판 사진화보집 『육군화보』 제작을 맡아 전쟁을 극복해나가는 대한민국의 위상을 세계에 전하기도 했다. 이후 1959년 서울 인사동에 국내 최초의 사진전문화랑을 열고 한국사진작가협회 창립 감사를 맡는 등 우리나라 사진 문화와 사진 아카이브 개념 정립을 선도한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임 대장은 화랑무공훈장을 받았으며 현재는 국립서울현충원 충혼당에 모셔져 있다. 



조용학 기자
사진=ⓒ임인식(청암아카이브)

조용학 기자 < catcho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