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e스포츠 완전 정복

‘검은 유혹’ 굴복에 개인 넘어 리그 몰락

입력 2020. 07. 02   15:27
업데이트 2020. 07. 0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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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


2010년 5월 승부조작 대대적 보도
고의 패배나 작전 누설 형태 진행
억대 연봉 스타 선수, 동료까지 포섭
불법도박 사이트 깊은 연루에 충격
페어플레이 ‘흔들’…3년 뒤 리그 종료  


2010 스타리그는 대기업인 대한항공이 적극 후원했고, 사상 초유의 공항 격납고 결승전이라는 명장면을 낳으며 리그의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가능케 했다. 전 대회 우승자 이영호는 아예 여객기에서 등장했다.  필자 제공
2010 스타리그는 대기업인 대한항공이 적극 후원했고, 사상 초유의 공항 격납고 결승전이라는 명장면을 낳으며 리그의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가능케 했다. 전 대회 우승자 이영호는 아예 여객기에서 등장했다. 필자 제공
  
‘워크래프트 3’의 맵 조작 사건이 반딧불이었다면, 오늘 이야기할 ‘스타크래프트’의 승부조작 사건은 보름달에 비견될 것이다. e스포츠가 다름의 규모와 형식을 갖추고 천천히 성장해 나가던 무렵에 터진 승부조작 사건은 게임 리그가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할 때 어떤 유혹이 다가오는지, 그리고 그 미끼를 물면 어떻게 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쓰라린 교훈이었다.


빛과 어둠이 함께 있던 2010년의 e스포츠

2010년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리그는 그간 쌓아 올린 기반을 토대로 상당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온게임넷 스타리그’는 리그 스폰서로 대한항공과 계약을 체결했고, 2010년 리그 결승전을 김포공항 격납고에서 열었다. 격납고 문이 열리며 초대형 여객기에서 결승전 선수가 내리는 연출은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남을 정도였다.

양대리그의 또 다른 축인 ‘MBC게임 스타리그(MSL)’도 만만치 않았다. 메인스폰서로 하나대투증권과 같은 대형 금융기업이 참여했고, 당시 최고의 흥행카드였던 이영호·이제동의 매치가 결승에서 성사되며 여러모로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의 위상이 제대로 정립되어 가고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그 한편에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위험요소들 또한 산적해 있었다. 메이저급 스폰서들이 들어오며 리그 사정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일부 톱 플레이어를 제외하면 전반적인 팀이나 선수들의 재정적 안정성은 높지 못했고, 양대리그를 주관하는 방송사들도 흥행에 비해 적자 상태였다. 흥행과 위험이 동시에 자리하는 이 미묘한 불안감 속에 2010년,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는 승부조작 사건이라는 대형 태풍을 맞게 된다.

세계 최초의 e스포츠 리그에서 벌어졌기에 이 사건은 세계 최초의 e스포츠 승부조작으로 남았다. 지상파 3사 뉴스 메인에 오를 정도로 e스포츠가 받은 피해는 뼈아팠다.  필자 제공
세계 최초의 e스포츠 리그에서 벌어졌기에 이 사건은 세계 최초의 e스포츠 승부조작으로 남았다. 지상파 3사 뉴스 메인에 오를 정도로 e스포츠가 받은 피해는 뼈아팠다. 필자 제공


게이머의 꿈, 검은 손에 꺾이다

2010년 5월, 검찰 수사에 의해 ‘스타크래프트’ 리그에서의 승부조작이 일어난 사실이 드러났다. 3대 지상파 언론사 뉴스로도 보도되며 전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어버린 이 사건은 경기에 참여하는 몇몇 현역 선수들이 일정 금액을 받고 특정된 경기에 나서서 일부러 패배하거나 해당 경기에 참여하는 자신의 팀 선수가 준비한 작전을 상대편에게 누설시키는 등의 행위로 구성되어 있었다.

승부조작 행위의 배경에는 불법도박 사이트가 깊게 연루되어 있었다. 다른 스포츠 경기에서도 비슷한 일이 암암리에 성행하고 있었지만, 아직 그 기반이 취약한 e스포츠의 경우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불법도박 사이트는 예정된 경기의 승패에 돈을 걸게 하고 그 승패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 배당금 조작이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선수들에게 접근, 승패조작을 제안했다.

스포츠맨십과 명예를 안고 살아가는 프로 선수라면 절대 접근해선 안 될 어둠의 속삭임에 걸려든 선수들이 검찰 조사를 통해 드러났다. 상대적으로 큰 금액도 아닌 조작 보수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선수들이 이에 응해 승부를 조작했고, 그 와중에는 연봉 1억이 넘어가는 선수들마저도 포함되어 있어 팬들로 하여금 ‘도대체 왜!’라는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가장 충격적이고 안타까운 것은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마재윤이 승부조작 사건에 깊게 가담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직전까지 주요 e스포츠 리그의 우승을 쓸어담으며 동시대 프로게이머 중에서는 누구도 쉽게 넘어서기 어려운 포스를 구축하며 ‘본좌’라는 칭호를 인정받을 정도로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리그를 휘어잡던 마재윤은 앞선 임요환, 최연성, 이윤열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대선수였기 때문이었다.

낮은 연봉으로 생계가 어려운 선수도 아니었고, 별다른 커리어가 없어 잃을 것이 없는 선수도 아니었다. 돈과 명예 모두를 들고 있었던 S급 선수 마재윤의 승부조작은 단순 가담의 수준이 아니어서 충격을 더했다. 불법도박 업체로부터 제안을 받아 경기를 져 주는 정도에 머무르지 않고, 그는 동료 선수들을 포섭하여 승부 조작계로 끌어들이는 브로커 역할까지 수행하며 적극적인 범죄자가 되었다.

그의 승부조작 범죄가 드러나면서 양대리그는 그가 보유했던 우승 경력을 포함한 모든 선수기록을 삭제 처리하고, 영구제명함으로써 한때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의 본좌로 추앙받을 뻔했던 한 선수는 영원한 범죄자로 남았다. 단지 선수 개인의 몰락을 넘어 그의 행위는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리그를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데 일조했을 정도였고, 팬들의 실망감과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검은 유혹에 끝없이 단호해야

물론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 리그의 몰락을 단지 승부조작 사건 하나만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리그 주관사인 양대 방송사의 수익은 활로를 찾기 힘든 상황이었고, 인기에 비해 여전히 스폰싱은 아주 활발하게 이어지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페어플레이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스포츠 엔터테인먼트에서 승부 조작이 실제로 발생했다는 사실은 e스포츠 존립의 기본 전제를 뒤흔드는 일이었기에 ‘스타크래프트’ 리그 몰락과 승부조작 사건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는 없다.


e스포츠협회가 주최하는 e스포츠 선수 소양교육. 꾸준히 부정한 유혹을 방지하는 노력이 이어지지 않으면 e스포츠의 몰락은 예고없이 한 순간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필자 제공
e스포츠협회가 주최하는 e스포츠 선수 소양교육. 꾸준히 부정한 유혹을 방지하는 노력이 이어지지 않으면 e스포츠의 몰락은 예고없이 한 순간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필자 제공


더구나 지난주 언급한 ‘워크래프트 3’의 맵 조작 사건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가 존재하는 것이, 바로 불법도박과 돈 문제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지정된 특정 경기의 승패를 놓고 오가는 높은 금액의 돈 문제가 e스포츠에 직접적으로 연관될 경우, 돈의 힘은 필연적으로 리그를 망쳐놓는다. 이는 비단 e스포츠만의 문제도 아닌지라 여러 메이저 프로스포츠 종목들이 불법도박과 승부조작에 의해 수차례 위기를 겪어온 바 있었다. 바로 그 문제에 발이 걸려 ‘스타크래프트’ 리그가 결국 2013년을 끝으로 종료되고 말았다는 점은 그 뒤를 잇는 여러 e스포츠 게임 종목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검은 유혹이 e스포츠 전반을 두드릴 것이다. 리그의 규모가 커질수록, 시청자층이 두터워질수록 몰리는 검은 돈의 유혹도 강해질 것이다. ‘워크래프트 3’와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가 겪었던 어둠의 역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e스포츠는 끝없이 부정한 유혹에 맞서 싸워야 한다. 리그를 만들고 운영하는 운영진도, 경기에 참여하는 선수들도 싸우지만, 항상 리그를 응원하고 함께 울고 웃을 수 있는 e스포츠 팬들 또한 불법도박과 승부조작에 관련된 모든 일에 단호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검은 유혹은 언제 다시 돌아올지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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