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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사 6월28일] 1950년 북한군, 서울대병원 난입 900여명 학살

입력 2020. 06. 2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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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의 기습적인 전면 남침으로 수도 서울은 불과 2~3일만에 함락 당할 위기에 놓였다. 27일 오후 2시 창동방어선이 붕괴되고 저녁에는 미아리방어선도 위태롭더니 28일 새벽에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단 며칠 동안의 전투에 부상병은 넘쳐났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은 북한군의 공격에 부상을 입은 중환자 100여 명을 포함한 환자들로 병상이 가득 차 있었다. 정부 인사들이 후방으로 이미 떠났고 시민들도 피난길에 올랐지만 병원의 환자들은 피난은 커녕 거동조차 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다만 병원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진이 환자를 두고 떠날 수 없다며 환자 치료에만 전념했고, 당시 조용일 소령과 국군 경비소대 병력이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던 국군 부상장병들과 일반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남아있었다.  


6월 28일 아침, 북한군이 중앙청을 지나 창경궁 앞까지 다다른 급박한 상황에서 이들은 후퇴를 하지 않았다. 북한군 1개 대대 병력이 병원까지 들이닥치자 장병들은 완강히 저항했다. 결과는 전멸이었다. 북한군은 이내 병원을 포위하고 점령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질 않았다. 


북한군은 병실에 난입해 치료를 받고 있던 부상장병은 물론 일반 환자들까지 총으로 쏘거나 칼로 찔러 살해했다. 환자들을 돌보던 의료진과 환자가족들도 모두 죽임을 당했다. 약 900여 명에 달하는 인명에 대한 학살은 오후까지 이어졌고 시신은 그대로 방치되었다. 북한군의 끔찍한 이 만행은 3개월 뒤 서울을 수복한 뒤에야 비로소 알려졌다. 희생자가 누구인지는 아직도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고 있다. 


현재 서울대 병원 영안실 옆에는 당시 나라와 병원을 지키려다 산화한 이름 모를 국군장병·환자·의료인의 넋을 기리는 ‘이름 모를 자유전사(自由戰士) 비(碑)’가 세워져 있다. 1963년 6월 20일에 건립된 것이다. 


■ 비문(碑文) 


 1950년 6월 28일 

 여기 자유를 사랑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운 시민이 

 맨 처음 울부짖은 소리 있었노라 

 여기 자유 서울로 들어오는 이 길목에 

 붉은 군대 침공해 오던 날 

 이름도 모를 부상병 입원환자 

 이들을 지키던 군인 시민 투사들이 

 참혹히 학살되어 

 마지막 조국을 부르는 소리 남겼노라 

 그들의 넋은 부를 길이 없으나 

 길게 빛나고 

 불멸의 숲 속에 편히 쉬어야 하리 

 겨레여 다시는 이 땅에 

 그 슬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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