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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둘러싼 또 다른 해석

최승희

입력 2020. 06. 24   16:24
업데이트 2020. 06. 24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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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실상 주제 중심으로
학술지 게재 논문 10편 책에 담아
초대 주한 미국대사 등 인물 분석도


한국전쟁:전쟁을 불러온 것들, 전쟁이 불러온 것들
이상호 지음/섬앤섬 펴냄

1950년 9월 17일 인천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맥아더 장군과 그의 참모들.  사진=출판사 제공
1950년 9월 17일 인천 포로수용소를 방문한 맥아더 장군과 그의 참모들. 사진=출판사 제공


올해로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전 세계가 평화를 이야기하기에 여념 없을 때 그 논의에 찬물을 끼얹듯이 발발한 6·25전쟁. 남북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은 38선을 임시 휴전선으로 대체하면서 전쟁은 ‘휴전’이라는 불안정한 대립상태로 일단락을 맺는다.

그동안 6·25전쟁에 관한 책들은 그 원인을 한국 사회의 계급적 구조, 독립 국가를 건설하려는 내부적 열망과 충돌 등의 내재적 원인과 미소 냉전 등의 외부적 요인으로 구분해 설명해왔다. 하지만 내부적·외부적 요인이 해소되고 있음에도 한반도의 갈등과 분열이 그대로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6·25전쟁을 둘러싼 요인에는 다른 분석의 도구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저자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선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저자는 6·25전쟁과 관련해 기존 연구가 미흡했거나 자료 부족 등으로 실상이 알려지지 않았던 주제를 중심으로 학술지에 게재했던 10편의 논문을 엮어 책에 담아냈다. 저자는 6·25전쟁을 둘러싼 한·일관계, 미·일관계, 한미관계와 인물사를 들여다봄으로써 6·25전쟁의 새로운 모습을 그려내고자 한다.

6·25전쟁 당시 전황이 위기에 처하자 이승만 정부가 일본으로 망명정부를 이전하려 했다는 일각의 주장이 정설화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저자는 “주장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상황과 일치하지 않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의 해외 이전 계획은 단순히 망명정부가 아니라 전쟁의 각 국면에 따라서 유동적이지만 계획상 제3차 세계대전의 최후 국면에서 한반도로의 재진입이라는 전략적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소련과 전면전을 염두에 둔 비상조치 계획의 일환이었다고 설명한다.

또 미군이 북한군과 중공군에 대한 심리전의 일부로 동원한 삐라(전단·선전이나 광고 또는 선동하는 글이 담긴 종이)의 내용과 의미를 분석한다. 저자는 6·25전쟁이 체제 우위, 이데올로기적 비교가 강하게 투영된 이념전쟁으로 진행됐으며 이것이 삐라로 표출됐다고 분석한다.

이 밖에 그동안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초대 주한 미국대사 존 조지프 무초와 미군 사령관 워커의 인물 분석이나 인천상륙작전의 실질적 비밀 실행계획인 ‘크로마이트 작전’의 실상, 공산 포로에 대한 ‘미국화 교육’의 전개 과정과 의미, 연합국번역통역국(ATIS) 자료 분석 등을 담았다. 최승희 기자

최승희 기자 < lovelyhere@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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