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광고로 보는 사회문화

상금 대신 치킨? 요상한 신춘문예 5년간 58만여 편 몰렸다

입력 2020. 05. 26   17:04
업데이트 2020. 05. 27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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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배민 신춘문예 광고


자세히 보아야 재밌다
오래 보니 배고프다
네가 그렇다… 

 
배달 앱 ‘배달의 민족’ 2015년 시작한 마케팅
온라인 참여·치킨 선물로 브랜드 색깔 잘 살려
명언·유머 맛깔나게 버무린 당선작, 소비자 열광
SNS·지하철 광고 등에 게재되며 두고두고 회자




카피라이터는 광고 문안을 작성하는 사람으로서 브랜드 메시지를 만드는 광고 전문가다. 광고회사에 카피라이터로 입사했다고 해서 바로 카피라이터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한 카피를 썼을 때 비로소 카피라이터라는 명칭을 얻는다. 하지만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여겼던 카피라이팅이 일반인에게도 문호가 개방되고 있으니 말이다. 바람직한 사회문화적 현상이다.

글재주가 좀 뛰어나다고 해서 일급 카피라이터로 대성하리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광고 창작 현장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내지 못하면 언제든 수명이 끝나는 것이 카피라이터의 운명이다. 우아한형제들의 배달 앱 ‘배달의민족’에서 공모한 배민 신춘문예는 일반인의 카피라이터 등용문이 된 듯하다. 배민 신춘문예는 2015년 이후 음식을 주제로 ‘우리는 모두 시인이다’라는 캠페인을 전개해 왔다. 그 많은 공모전의 하나로 보면 안 되는 것이 응모 편수가 엄청나고 당선작의 확산성이 폭발적이기 때문이다. 역대 수상작에서 음식과 관련된 톡톡 튀는 카피 맛을 느껴보자.

2015년의 제1회 배민 신춘문예에서는 “산해진미 갖다놔도 엄마가 해주시는 집밥보다 맛있는 건 없네요-시집 ‘우리 집은 치킨집’’에서”라는 카피가 대상의 영예를 얻었다. 최우수상은 “시작이 반반이다-아리스토텔레스”, 우수상은 “우리 위장 부르게 부르게-배민킴벌리”였다.

2016년에는 불고기 피자를 5행시로 푼 “불조심해. 가스 밸브 잘 잠그고/고기 같은 것도 좀 사먹어/기어이 독립하니 좋니?/피치 못할 사정 아니면 가끔은/자기 전에 엄마한테 전화 좀 해줘”가 대상을 받았다. 스파게티를 4행시로 푼 “스스로 아무것도 아니라 느낄 때/파도에 밀려온 미역떼기 하나도/게에게는 마지막 이유일 수 있다/티 안 나는 인생도 훌륭한 인생이다”, 그리고 쫄면과 피자를 각각 2행시로 푼 “쫄바지도 못 입고/면바지도 안 들어가”와 “피할 수 없다면 자연스럽게 내 뱃속으로 넣자”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2017년에는 “치킨은 살 안 쪄요-살은 내가 쪄요”가 대상을 받았다. “피자는 둥그니까 자꾸 먹어나가자-온 세상 어린이 일동” “배가 고픈 걸까 집이 고픈 걸까-집밥” “치킨을 맛있게 먹는 101가지 방법-101번 먹는다” “한끼 두끼 세끼 네끼 볶음밥! 볶음밥!-1일2배달” “수육했어 오늘도-보쌈달빛”이 공동으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저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입” “함께였을 때 우린 항상 빛났었다-세트메뉴” “ㄱㄴㄷㄹㅁㅂㅅㅇㅈ치킨ㅌㅍㅎ-세종대왕님도 인정하셨다” “그래도 치킨은 온다-튀길레오튀길레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안 부르다-1인3닭” “등잔 밑이 혼자 먹기 좋다-금강산도 십분컷” “당신, 고기 있어줄래요?-육식주의자” “위(胃) 캔 두 잇-오장육부장관” “천고마블링의 계절-입맛은 언제나 가을” 등 20개의 카피가 우수상을 받았다.

2018년에는 “박수칠 때 떠놔라-회”가 영예의 대상을 받았다. 이어서 “가재는 게 편이고 나는 많이 먹는 편-꿀꿀” “내가 너로 완전히 뒤덮여 흔적도 없길-치즈 가루 많이 뿌려주세요” “짜장면 식히신 분~?-혼나야지” “미듐, 소만, 사랑-우리집 가훈” “우리집 할머니는 입맛이 없다 하시며-자꾸 나이를 드신다”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두드려라 그러면 커질 것이다-왕 돈까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솥뚜껑 삼겹살로 달랜다” “오래 고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설렁탕” “Chick Chick Pork Pork-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기차”가 우수상을 받았다.

2019년의 제5회 배민 신춘문예에서는 “아빠 힘내세요 우리고 있잖아요-사골국물”이 대상을 받았다. 이어서 “난 한방이 있어-삼계탕” “커보니/피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요-그래서 오늘도 커피” “대창 무순 소라를 한우 건조 염통 모르겠네-내가 좋아하는 거 얘기하는 거야”가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리고 “죽 쒀서 애 줬다-이유식” “와 나 이 장면 진짜 좋아하는데-짜장면” “손이 많이 가는 스타일이네-새우깡” “마 니 고구마 맞나-맛탕” “지금은 그만두지만-구우면 군만두” “너 명절에 어디가?-나시고랭”(나시고랭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전통적인 볶음밥 요리임), “나물 위해 살지 않을 거야-고기주의자” “까만 우주 안에서 너를 만나는 건 큰 행복이야-짜장면 속 돼지고기” “당면 삼키고 쫄면 씹는다-즉석떡볶이” “안심하고 먹어-등심은 내 거니까”가 우수상을,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고생했을 당신-누룽지”가 교보문고 특별상을 받았다.

배민 신춘문예의 누적 응모작은 2015년 이후 지금까지 58만여 편이고, 2019년에만 24만9000여 편이 접수됐다. 다시 말해 그동안 응모작 숫자만큼의 사람들이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위해 배민 브랜드에 대해 ‘연구’했을 것이란 뜻이다. 이보다 더한 충성 고객들이 있을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수상자에게 현금이 아닌 치킨을 부상으로 주면서 브랜드의 상관성으로 다시 연결한 영악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한 셈이다. 신문사의 신춘문예에서 떨어진 문학청년들과 달리 배민 신춘문예의 낙선자들은 상실감이 덜할 것이다. 당선되면 좋지만, 안 돼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재미 삼아 응모하는 것이 배민 신춘문예의 매력이니까 그렇다는 말이다.

수상작들은 여러 소셜미디어 채널과 곳곳의 옥외광고에 게재되고, 앱·블로그·SNS에서 이벤트를 벌여 참여를 유발한다. 당선작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온·오프라인에 게재된 수상작의 카피를 보며 배꼽을 잡을 분들이 많을 것이다. “박수칠 때 떠놔라-회” 같은 기발한 상상력을 보라! 기존의 속담과 명언을 비틀어 표현한 패러디물이든, 순수 창작물이든 관계없이 유머 감각이 돋보인다. 유머 감각으로 버무린 B급 감성은 배민 신춘문예 당선작의 보편적 특성이다. 카피 맛을 제대로 보여준 분들께서 앞으로 우리의 광고 카피를 비옥하게 살찌울 것 같아 기대감이 크다.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전 한국광고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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