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으로 잘 알려진 대한민국 시사만화계의 대부 고(故) 김성환 화백은 1932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나 2019년 9월 별세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방부 정훈국과 육군본부 휼병감실(군인가족들에게 쌀을 주는 곳), 정훈감실에서 신문과 전단 등을 제작하며 장병들의 사기를 올리는 선무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종군화가로도 활동하며 최전방 참호 속에서 전장 속 장병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냈다.
1949년 18세 나이로 <연합신문>에 시사만화 ‘멍텅구리’를 그려 데뷔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서울을 침공한 북한군을 피해 서울의 모처 다락방에서 90여 일을 숨어 지내며 전쟁을 기록하고, ‘고바우 영감’ 캐릭터를 만들었다. ‘고바우 영감’은 1950년 우리 군이 발행한 <사병만화>를 통해 첫선을 보인 이후 1955년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유명 일간지에 연재됐고, 2000년까지 45년간 1만4139회를 연재하며 대한민국 최장수 시사만화로 자리매김했다.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으로 잘 알려진 대한민국 시사만화계의 대부 고(故) 김성환 화백은 1932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나 2019년 9월 별세했다.
그는 6·25전쟁 당시 국방부 정훈국과 육군본부 휼병감실(군인가족들에게 쌀을 주는 곳), 정훈감실에서 신문과 전단 등을 제작하며 장병들의 사기를 올리는 선무활동에 참여했다. 특히 종군화가로도 활동하며 최전방 참호 속에서 전장 속 장병들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냈다.
1949년 18세 나이로 <연합신문>에 시사만화 ‘멍텅구리’를 그려 데뷔한 그는, 6·25전쟁이 발발한 1950년 서울을 침공한 북한군을 피해 서울의 모처 다락방에서 90여 일을 숨어 지내며 전쟁을 기록하고, ‘고바우 영감’ 캐릭터를 만들었다. ‘고바우 영감’은 1950년 우리 군이 발행한 <사병만화>를 통해 첫선을 보인 이후 1955년 <동아일보> <조선일보> <문화일보> 등 유명 일간지에 연재됐고, 2000년까지 45년간 1만4139회를 연재하며 대한민국 최장수 시사만화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