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일본의 오사카 성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거주 성
축성 후 1592년에 조선 침략
잇단 전쟁에 파괴됐다가 재건
일제 육군4사단 사령부로 쓰여
‘일본 4대 城’ 관광지로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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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맞서는 도요토미 진영은 10만 명에 이르렀다. 오사카 성의 두터운 성벽과 한겨울 추위, 군량 부족으로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진영과 화의(和議)를 추진했다. 이에야스는 히데요리의 영지를 인정하고 책임을 묻지 않는 대신 오사카 성의 본성을 제외한 바깥의 성곽들을 모두 파괴하고 해자도 모두 매립한다는 조건으로 합의했다.
하지만 이에야스는 약속을 어기고 7만 명을 동원해 오사카 성을 둘러싼 본성의 해자까지 모두 매립하고 성곽도 무너뜨렸다. 이에 도요토미 측은 다시 성벽을 쌓고 해자를 파내는 대공사를 시작했다. 이에야스는 이를 빌미 삼아 1615년 5월 오사카 여름 전투를 벌였다. 이때 병력은 도쿠가와 측이 약 15만 명, 도요토미 측이 약 5만5000명 정도였다. 외성이 사라진 오사카 성은 전투가 시작되고 단 2일 만에 이에야스에게 함락됐으며 히데요리는 어머니 요도기미와 함께 자결했다. 승리한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가문을 멸문한 데 이어 오사카 성까지 완전히 파괴했다.
1869년 오사카 성 내 육군소 창설
도쿠가와 시대는 막을 내렸고, 메이지 유신이 이뤄지면서 성터는 국유지가 됐다. 메이지 정부는 성내의 부지를 육군의 부지로 활용하고, 민간인의 출입을 금했다. 일본 육군의 창설자인 오무라 마스지로가 오사카 성 일대를 일본 육군의 중심지로 전환할 계획을 수립하면서 1869년 7월 일본 육군사관학교의 전신인 병학료(兵學寮) 청년학사와 육군성의 전신인 육군소가 오사카 성 내에 창설됐다. 성 외곽 지역에는 1879년 포병창을 비롯해 여러 공장이 들어섰다. 1888년부터 오사카 성은 육군 제4사단 사령부와 주둔지로 사용됐다. 이후 오사카 시의회가 천수각 재건에 관한 세키 하지메 오사카 시장의 제안을 만장일치로 가결시키며 오사카 성의 재건이 1930년대 시작됐다.
천수각은 철근 콘크리트로 1931년 완성됐다. 오사카에 있는 병기 공장과 군사 시설로 인해 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5년 오사카는 미군의 8차례 대규모 공습을 포함해 총 50차례가 넘는 공습으로 시가지 대부분이 피해를 입었다. 오사카 성도 성문이나 망루 등 다수의 건물이 파괴됐지만 천수각은 별다른 공습의 피해 없이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전후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대대적인 복원과 보수 공사가 진행됐다.
지난해 6월 G20 정상회의가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는데, 각국 정상 전원이 오사카 성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했을 정도로 오늘날 오사카 성은 유명 관광지가 됐다. 하지만 이 성을 찾는 한국인만큼은 임진왜란이 이곳에서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고 방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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