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6.25 70주년, 해외참전용사 희망드림 코리아

[6.25전쟁 70주년] “가난이라는 전쟁과 사투… 손녀가 유치원 가는 게 소원”

김용호

입력 2020. 05. 13   16:00
업데이트 2020. 05. 13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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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씨아므렌 옹

 
1951년 강뉴부대 1진으로 참전
방아쇠 당기기도 힘든
살갗 파고드는 추위 뚫고 싸워…
고국으로 돌아온 뒤 흙집에 정착
“양질의 교육, 빈곤 이겨낼 힘
손녀에겐 기회 갔으면”

한국전쟁 참전 영웅 씨아므렌(오른쪽) 옹이 5년 전 다리를 크게 다쳐 침대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 있다. 먹지 못해 깡마른 그는 혼자서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한다. 사진은 씨아므렌 옹과 아들 미케엘(왼쪽), 손녀 나후민 미케엘.  월드비전 제공
한국전쟁 참전 영웅 씨아므렌(오른쪽) 옹이 5년 전 다리를 크게 다쳐 침대에서 꼼짝하지 못하고 누워 있다. 먹지 못해 깡마른 그는 혼자서 대소변을 가리지도 못한다. 사진은 씨아므렌 옹과 아들 미케엘(왼쪽), 손녀 나후민 미케엘. 월드비전 제공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코로나19) 공포가 확산함에 따라 2월부터 지구촌은 대한민국에 빗장을 걸어 잠갔다. 지난 13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국 출발 여행객에 대해 입국금지 조치를 내리거나 입국 절차를 강화한 국가는 총 186개국이다. 이는 193개 유엔회원국 대부분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국의 방역 시스템을 믿고 우리 국민의 입국을 막지 않은 우방들이 있었다. 이들이 보여준 무한 신뢰는 한국과 관계가 더 단단해지는 계기가 됐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한국의 모범적인 방역이 세계 각국 언론에 집중 조명되면서 한국의 선진 방역시스템을 우선 지원받은 사례도 있다.

외교부는 이날 에티오피아 보건부에 코로나19 진단키트 2만8000회분과 마스크, 손 세정제, 살균 소독제 등 5억7000여만 원 상당의 인도적 지원 물품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번에 파병되는 한빛부대 12진의 남수단행 전세기는 돌아올 때 아프리카 지역 교민들의 귀국에 활용될 예정인데 이는 에티오피아가 하늘길을 열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동북부의 ‘아프리카의 뿔(Horn of Africa)’ 지역에 위치한 에티오피아는 한국인 입국 금지 조치를 내리지 않은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다. 70년 전 한국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조건 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전통 우방이자 진정한 친구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한국전쟁(6·25전쟁)에 지상군을 파병한 혈맹이기도 하다.

에티오피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침략을 받았지만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그 설움을 잘 아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1950년 유엔이 파병을 요청하자 명분도 실리도 따지지 않고 흔쾌히 수락했다. 셀라시에 황제는 ‘한국인들에게 꼭 자유를 안겨주라’는 당부와 함께 황제근위대(강뉴·Kagnew)를 동방의 작은 나라 대한민국으로 급파했다. 강뉴부대는 6·25전쟁에서 단 한 명의 포로도 없는 ‘불사조 정신’으로 똘똘 뭉쳐 253전 253승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다.

당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불굴의 전사들(3518명)은 지금 대부분 돌아가시고 137명만 생존해 있다. 이제 이분들은 제 몸도 가누기 힘든 백발의 노인이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 외곽 한국전쟁 참전용사촌 굴렐레에 사는 씨아므렌(98) 옹도 6·25참전 영웅으로 유명하다. 5년 전 다리를 다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씨아므렌 옹은 1951년 강뉴부대 1진으로 참전해 강원도 춘천·화천 등에서 변화무쌍한 한국의 사계절을 경험하며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하얀 밀가루 같은 폭설에 갇힌 전장은 그야말로 고립무원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매서운 추위와 바람이 손가락을 꽁꽁 얼어붙게 하고 두꺼운 바지와 내복 안까지 파고들어 온몸이 덜덜 떨리고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단다.

“지금 생각해도 살갗을 파고 드는 추위와 눈은 끔찍해요. 동상으로 손가락이 퉁퉁 부어올라 방아쇠를 당기기도 힘들었어요.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도 눈앞에 적이 나타나면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죽음을 불사하고 싸웠습니다.”

29세에 6·25전쟁에 참전한 씨아므렌 옹은 겨우 목숨을 부지해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찢어질 듯한 가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가난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씨아므렌 옹 가족이 사는 집은 지은 지 70여 년쯤 되는 낡은 흙집이다. 그가 전쟁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살아온 보금자리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쩍쩍 갈라진 벽이다. 보기만 해도 위태롭고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다. 낡은 벽지가 너덜거리고, 우기에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빗물로 방바닥이 침수돼 엉망진창으로 변한다. 바닥은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해 컴컴한 집 내부에서 넘어지기 일쑤다.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서 씨아므렌 옹 가족은 여전히 ‘가난’이라는 전쟁과 사투 중이다.

아들 미케엘(40) 씨는 경비 일을 하다 현재 그만둔 상태다. 24시간 침대 생활을 하는 씨아므렌 옹의 대소변을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씨아므렌 옹 가족의 한 달 수입은 매월 보훈처에서 참전용사 후원금 명목으로 받는 4만 원과 며느리 예루살렘타므르(37) 씨가 파출부 일을 해 벌어오는 3만 원을 합쳐 총 7만 원. 2020년 우리나라 최저일급(6만8720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도 이겨낸 씨아므렌 옹이지만 손주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노병의 마지막 소원도 손주가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이제 죽음을 눈앞에 두고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하나뿐인 손녀 나후민 미케엘(3)이에요. 또래 친구들처럼 미케엘이 유치원에 가서 맘껏 뛰어노는 것을 보고 싶어요. 우리 가족에게 코로나19보다 더 위험한 전염병은 바로 가난입니다. 내 자식과 손주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요. 가난으로 고통받는 건 나 하나로 충분하니까요. ‘한국전쟁 참전용사 찬스’를 사용해서라도 손녀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켜 빈곤에서 탈출할 기회를 주고 싶어요. 대한민국 국민의 위대한 힘을 믿습니다.” 김용호 기자



월드비전은? 
월드비전은 70년 전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고통받는 우리나라의 어린이와 국민을 돕기 위해 탄생한 글로벌 NGO다. 현재 전 세계 99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계 최대 민간 국제기구인 월드비전은 ‘유엔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NGO 최상위 지위인 ‘포괄적협의지위’를 부여받았으며 국내외에서 아동·가정·지역사회가 빈곤과 불평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랑을 실천하는 등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체리블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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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랑 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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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원 방법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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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기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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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 방법
  ▲ 전화: 02-401-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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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증정: 일시 후원자 중 3명을 추첨해 걸그룹 체리블렛 사인 앨범을, 더캠프 앱에서 정기후원을 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밀리랑’ 캐릭터 인형을 선물로 보내 드립니다.
  ▲ 걸그룹 체리블렛 사인 앨범 당첨자
  김현철(경기도 파주시), 박인철(강원도 춘천시), 박종현(인천 연수구)
  ▲ 밀리랑 인형 당첨자
  남승무(충남 계룡시), 서보민(경남 함안군)


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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