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라파엘로의‘친구와 함께 있는 자화상’
페루지노 ‘성모 마리아의 결혼’
성전 지나치게 강조…결혼식 주목도 떨어져
인체·꽃 등 딱딱하고 튀어보이게 그려 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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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화가를 설명할 때 실력이나 개성을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라파엘로의 경우는 특이하다. 우아한 성격을 내세운다. 정말 성격이 좋으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것일까. 최초의 미술사학자라고 할 수 있는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라파엘로를 이렇게 소개한다. “가끔 하늘은 한 사람에게 끝도 없는 선물을 준다. 여러 사람이 나눠 받아야 할 은총을 라파엘로는 혼자 다 받았다. 그는 겸손하고 친절했다. 아름답고, 온화하고, 상냥함에 덧붙여 부드러움을 갖췄다. 이런 사람은 누구에게도 즐거움을 주는 법이다.”
조르조 바사리는 아부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결론 내린 것은 라파엘로의 겸손함이 좋은 그림의 원천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겸손함과 작품의 질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겸손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다. 누구든 장점이 있고, 그것을 보려면 마음을 열어야 한다. 거만하다는 것은 ‘다들 나보다 못해’라는 태도이고 그러면 아무것도 안 보인다. 자기만 보인다. 배울 수가 없다. 과학적으로 증명됐듯 우리 눈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결론적으로 거만한 것은 손해다. 겸손하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장점을 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런 이유로 라파엘로는 여러 천재들의 장점을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리고 한 차원 발전시켰다. 두 작품을 비교해 보자.
페루지노가 그린 ‘성모 마리아의 결혼’과 라파엘로가 같은 제목으로 20대 초반, 그린 것이다. 페루지노는 당대 최고의 화가이며, 라파엘로의 스승이다. 그가 어떻게 단기간에 스승을 넘어섰는지 확인해 보자. 먼저 대략의 내용을 설명하면 ‘성모 마리아의 결혼’은 예수의 부모인 마리아와 요셉의 결혼식을 묘사한 것이다.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황금 전설』이라는 책에 나온다. 제사장들이 14세의 마리아를 결혼시키려 한다. 그들은 기도를 통해, ‘구혼자들에게 막대기를 들고 오게 하라. 그러면 한 남자의 막대기에서 꽃을 피울 테니 그와 결혼시키라’는 게시를 받는다.
결혼식이 예정된 날 많은 남자들이 막대기를 들고 성소 앞에 모인다. 요셉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이가 많던 그는 자신이 선택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웬일인가. 요셉의 막대기에서 꽃이 피어난다. 얼떨떨한 요셉은 마리아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사제는 결혼을 선언한다. 막대기를 들고 온 나머지 남자들은 실망하고, 여인들은 마리아를 축하한다.
이제 그림을 살펴보자. 두 작품 다 비슷하다. 멀리는 성전이 있고, 중간에 광장이 있고, 맨 앞에 결혼식 장면이 그려졌다. 먼저 성전이다. 페루지노는 성전을 강조하려고 크게 그렸다. 그러다 보니 전경의 결혼식과 비중이 비슷해졌다. 모양도 독특하다. 각이 심하고 돔이 세 개나 올려져 있다. 눈길을 뺏으려는 욕심이 보인다. 이렇게 되면 관객은 순간 혼란에 빠진다. 결혼식이 주인공인지 성전이 주인공인지 말이다. 게다가 중간 광장의 면적이 좁아 결혼식과 성전이 한 덩어리로 보인다. 마치 결혼식 위에 성전이 올라탄 것처럼 말이다.
라파엘로 ‘성모 마리아의 결혼’
성전은 조연…안정적 삼각 구도 시선 유도
물결처럼 흐르는 은은함 속 강렬한 포인트
셀카 찍듯 독특한 연출…이기적이지 않은 성격 엿보여
라파엘로의 작품은 다르다. 결혼식 장면이 있고, 중간에 충분한 광장이 그려져 있다. 그 뒤에 성전이 있다. 성전은 부드러운 다각형이다. 눈을 부담스럽게 하지 않는다. 조연이라고 미리 밝힌 것이다. 광장은 그 둘의 연결고리다. 넓어진 광장의 허전함은 바닥의 무늬와 적절한 사람들로 알맞게 채웠다. 결과적으로 작품은 안정적인 삼각 구도를 이루면서 시선은 부드럽게 이어지게 된다. 결혼식이 보이고 광장이 보이고 성전이 보인다. 비중이 그렇다. 대충 보면 큰 차이는 아니지만 조화로운 측면에서 보면 하늘땅 차이다.
결혼식을 보자. 먼저 인체를 그리는 실력에서 차이가 난다. 페루지노는 딱딱하다. 라파엘로는 물결처럼 흐른다. 당시 이런 실력이면 해부학에도 정통하고, 스승 페루지노의 장점만이 아닌 외부 대가들의 장점을 흡수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요셉과 그가 든 막대기를 보자. 페루지노가 그린 요셉의 막대기에 핀 꽃의 배경은 밝은 베이지색이다. 꽃이 확실히 보인다. 라파엘로의 막대기 꽃의 배경은 뒷남자의 붉은 옷이다. 크기도 작다. 그래서 은은하게 보인다.
바로 세련미의 차이다. 세련되지 못한 화가들은 하나하나 다 튀게 그린다. 그래서 작품이 산만해진다.
스토리 구성 실력을 보자. 라파엘로 작품의 오른편 아래에는 한 남자가 한발 앞으로 나와서 큰 동작으로 막대기를 부러뜨리고 있다. 선택되지 못한 화풀이다. 그런데 너무 눈에 띄게 그렸다. 빨간 바지가 눈부시다. 라파엘로의 유머이고 라파엘로의 포인트다. 포인트는 확실하게 줘야 한다. 어설프면 어정쩡해진다. 페루지노의 것이 약간 그렇다. 느껴지는가. 결과는 라파엘로의 압승이다. 이렇듯 라파엘로의 겸손한 성격은 주변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토대를 줬고, 성실하게 공부할 기회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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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주인공 ‘친구와 함께 있는 자화상’을 보자. 그림을 어느 정도 본 분이라면 ‘이 작품 참 특이하네’라고 생각할 것이다. 자화상은 다 한 사람을 그린다. 단체 초상화 같은 것에 자신을 끼워 그리는 경우는 간혹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자화상을 그리면서 자기 앞에 친구를 놓고 그리는 경우는 처음 본다. 마치 셀카를 찍을 때 혼자 찍기 쑥스러우니 친구를 앞에 놓고 찍는 경우인가. 그렇다면 친구도 카메라를 봐야 한다.
라파엘로는 은근히 독특한 화가다. 저 친구는 도대체 누굴까. 왜 손으로 앞을 가리키면서 라파엘로를 바라볼까. 이것은 스냅사진이 아니다. 라파엘로는 딱 저 장면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혹시 이런 건 아닐까. 친구가 손으로 가리키며 “우리 저기로 갈래?”라고 하니 라파엘로가 왼손으로 친구의 어깨를 눌러 잡으며 “잠깐 좀 있어 봐. 자화상 좀 그리고…”라고 한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은 우리에게 수수께끼처럼 다가오지만, 라파엘로가 자기밖에 모르는, 잘난 척하는 화가가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라파엘로가 위대한 화가가 된 데는 확실히 겸손한 품성이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예의 바른 성격은 주변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도록 만들기도 했다. 사랑도 받고, 실력도 인정받고 ‘친구와 함께 있는 자화상’을 보면서 우리도 아이디어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서정욱아트앤콘텐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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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욱 미술토크 유튜브 채널. QR코드를 휴대전화로 찍으면 관련 내용을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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