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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사 3월24일] 1958년 엘비스 프레슬리 미 육군 입대

신인호

입력 2020. 03. 23   10:03
업데이트 2021. 03. 2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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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3월24일, 전 세계 팬을 거느리며 ‘제왕’으로 불리던 한 젊은이가 미합중국 육군에 입대했다. 로큰롤(Rock & Roll)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Elvis Aron Presley)가 바로 그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1956년 ‘하트브레이크 호텔’(Heartbreak Hotel), ‘하운드 독’(Hound Dog), ‘러브 미 텐더’(Love Me Tender)를 잇달아 히트시키며 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그런 그가 1957년 말, 군에 입대해야 하는 징집 영장을 받았다.

복무 중에는 가수로서 활동을 하지 못하니 대중의 사랑이 멀어지고 인기도 식어갈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에 개의치 않고 일반 전투병으로서 입대를 주저하지 않았다. 영화 ‘열정의 무대’(원제 King Creole) 촬영으로 인해 입대를 한 번 연기하기는 했어도 기꺼이 머리를 짧게 깎았다. 또 그는 대중의 인기가 높은 그를 대중예술 분야의 부대에 배치하려 한 군의 제안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텍사스 킬린에 위치한 포트 후드(Fort Hood)에서 기초군사교육을 받았다. 군번은 53310761. 이어 서독의 프리드부르크에 주둔하고 있는 3기갑사단으로 배치되어 기갑병으로 근무했다.

미 국립문서보관서는 2005년 6월 유명인 150명의 군 복무 기록을 공개한 바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도 당연히 이 명단에 포함됐다. 이에 따르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1958년 육군에 입대하자 ‘수퍼스타는 특별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팬들의 민원 때문에 육군은 골치를 앓았다. 조기에 제대할 것이라는 소문도 그럴듯하게 번졌지만 미 육군은 이를 일축했다.

1959년 5월 그의 언론 인터뷰를 승인하는 육군 문서를 보면, “프레슬리 일병을 우러러보고 모방하는 많은 10대 청소년들은 훗날 군 생활에서도 그의 본보기를 따를 것”(Many teenagers who look up to and emulate Private First Class Presley will, to a varied degree, follow his example in the performance of their military service.)이라고 말하고 있다.

복무 중 그는 후에 아내가 되는 여성을 만나기도 했지만 안 좋은 일도 없지 않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도 입대 전의 반항적인 이미지에서 좀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월 78달러의 봉급은 전액 자선단체에 기부했다. 입대하지 않았으면 2년간, 당시 돈으로 40만 달러라는 거액을 벌 수 있었던 그에게는 아주 작은 액수였다. 하지만 이런 그의 변화는 입대 전 그의 선정적인 의상과 율동을 꺼려 했던 보수층의 시각을 돌리는 데 한몫했으며 나아가 인기의 폭도 더 넓힐 수 있었다. 그는 1960년 3월 2일 전역하고 열광적인 환호 속에 귀국했다.

돌이켜보면,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참전한 ‘스타’는 적지 않다. 영화 ‘분노의 포도’의 헨리 폰다(Henry Fonda),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클라크 게이블 (Clark Gable), ‘스미스씨 워싱턴 가다’로1940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제임스 스튜어트(James Stewart) 등이 쉽게 떠오른다.

이 시점에서 기억을 떠올려볼 만한 또다른 ‘수퍼스타’가 있다. 그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이어 1964년 소니 리스턴(Sonny Liston)을 꺾어 세계 헤비급 복싱 챔피언이 된 무하마드 알리(Muhammad Ali)이다. 당시 알리는 징집을 거부했다. 5년 징역에 선수 자격 박탈이라는 형이 내려졌다. 후에 조지 포먼(George Foreman)을 꺾는 등 세계챔피언 자리에 다시 올랐지만 더이상 ‘영웅’만은 아니었다. 그는 오랫동안 ‘병역기피자’라는 냉혹한 시선을 벗어나지 못했다.

의무! 그것은 단순히 개인에게 지워지는 짐이 아니고, 모두가 함께 이행해야 하는 시대의 요구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 잠시 편한 방편이 아닌, 영원한 사랑을 받는 길이 거기에 있음이다. 동양과 서양,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신인호 기자 <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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