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건축, 전쟁사를 말하다

람세스 2세 석상·아테네 조각품, 영국에 있는 이유

입력 2020. 03. 06   16:52
업데이트 2020. 03. 06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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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영국의 대영 박물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식민지 넓히며
세계 각지서 약탈·수집한 유물 늘어
조선 후기 백자·김홍도 풍속도첩 등
정식 대여 韓 미술품 250점 전시도  

대영 박물관의 전경. 박물관의 정식 명칭이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일 뿐 ‘대(Great)’가 붙어 있지 않으므로 ‘영국 박물관’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지만 박물관 공식 한국어 번역에도 대영 박물관으로 표기하고 있고, 국내 언론에서도 대영 박물관이라고 칭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대영 박물관의 전경. 박물관의 정식 명칭이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일 뿐 ‘대(Great)’가 붙어 있지 않으므로 ‘영국 박물관’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지만 박물관 공식 한국어 번역에도 대영 박물관으로 표기하고 있고, 국내 언론에서도 대영 박물관이라고 칭하고 있다. 사진=픽사베이
대영 박물관 1층 4번 전시실에 있는 람세스 2세의 조각상.  사진=www.turbosquid.com
대영 박물관 1층 4번 전시실에 있는 람세스 2세의 조각상. 사진=www.turbosquid.com
        

영국의 수도 런던 블룸즈베리에 있는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함께 세계 4대 박물관 중 하나이다. 1759년 설립된 이 박물관은 영국이 제국주의 시대부터 전 세계에서 약탈하고 수집한 800만 점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부터 아시리아, 이집트, 에게 해, 그리스를 포함한 고대 문명들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주요 유물로 이집트의 로제타 스톤과 람세스 2세의 거대 석상, 그리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외벽 조각품, 근대 헌법의 토대가 된 대헌장 마그나카르타 등이 있다. 이곳은 카이로 박물관 다음으로 이집트 유물을 가장 많이 소유하고 있는데, 1801년 이집트에서 프랑스군에 승리한 전리품이다.


한스 슬론 경의 기증품 7만2000점 기반으로 설립

대영 박물관의 기초는 왕립학사원장을 지낸 의학자 한스 슬론(1660~1753) 경이 유품으로 남긴 7만2000점에 이르는 예술품과 유물, 자연사 표본 등의 소장품이다. 1753년 영국 의회는 영국 박물관 법안을 의결해 그레이트 러셀가에 있던 몬태규 후작의 저택을 개축해 한스 슬론의 소장품에 로버트 코튼 경의 장서와 옥스퍼드의 로버트 할리 백작의 수집품을 전시한다. 이렇게 1759년 1월 15일 대영 박물관이 설립됐다.



대영제국의 기틀을 닦은 엘리자베스 1세

영국을 대영제국(British Empire·大英帝國)으로 만드는 데 초석을 쌓은 군주는 헨리 8세(1491~1547)와 앤 불린(1501~1536)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이다. 이 여왕은 이복 언니 메리 1세(1516~1558)에게 반역 의심을 받아 22살의 나이인 1555년 런던탑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처형을 피하고 살아남아 1558년 1월 15일 왕위에 올랐다. 엘리자베스 1세의 재위 45년간 영국 해군은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해 대양으로 본격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으며 헨리 7세 때 처음 시도됐던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을 재개해 버지니아 식민 지배도 시도했다. 대영제국이 정복한 나라는 1627년 바베이도스부터 1839년 예멘에 이르기까지 총 54개국에 이른다.

대영제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리며 식민지가 확장되면서 세계 각지에서 약탈하거나 수집한 수많은 유물이 대영 박물관의 수장고로 향했다. 더 많은 소장품을 보관하기 위해 1823년부터 로버트 스머크 경은 고대 그리스의 아테나 폴리아스 신전에서 영감을 받아 새 박물관의 외관을 설계했으며 동서남북에 4개의 신고전주의 양식 건물을 차례로 지어 1852년 완공했다. 입구는 높이 14m의 그리스 이오니아식 기둥 44개를 세워 고전적이면서도 웅장한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입구 위쪽의 박공(맞배지붕의 측면에 인(人)자형으로 붙인 건축 부재)에는 1852년 조각가 리처드 웨스트마코트가 ‘문명의 진보’라는 제목으로 15개의 연작 부조를 완성해 장식했다. 박물관은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총 3층으로 이뤄져 있으며, 100여 개의 전시실이 있는 총면적은 7만5000㎡(2만2687.5평)이다.



이집트 유물은 프랑스군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전리품

대영 박물관은 19세기 그리스·로마·이집트 유물들이 증가했는데 특히 이집트 유물은 전쟁 승리로 인한 전리품이었다. 당시 오스만 튀르크의 지배를 받던 이집트는 1798년 원정을 나선 프랑스의 나폴레옹에게 정복됐는데 여기에는 고고학자를 필두로 한 175명의 학술조사단도 포함돼 있었다. 고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3세(기원전 356~323)처럼 동방 원정을 나서겠다는 게 나폴레옹의 의도였다.

하지만 나폴레옹을 추격해온 영국 해군에 의해 이집트 지배의 향방은 바뀌게 된다. 1798년 8월 1일 영국의 호레이쇼 넬슨이 알렉산드리아 근처 아부키르 만에 정박하고 있던 프랑스 함대와 나일강 전투를 벌여 프랑스 함대의 기함인 르 오리앙 호를 격침하고 13척의 전열함 중 2척을 침몰시키고 9척을 포획하는 대승을 올리며 나폴레옹에게 일격을 가했다. 여기에다 제2차 대프랑스 동맹 전쟁(1798~1801)이 벌어져 북이탈리아 영토를 상실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나폴레옹은 서둘러 파리로 귀환했다. 이집트에 남겨진 프랑스 원정군은 영국-오스만 동맹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으며 1801년 3월 21일 알렉산드리아 전투 패배에 이어 4월 19일 줄리앙 요새 포위전, 6월 27일 카이로 포위전, 9월 2일 알렉산드리아 포위전에서 연달아 패배하면서 결국 항복했다. 1802년 3월 25일 프랑스와 영국 간에 아미앵 조약이 체결된 후, 이집트 유물들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 대신 대영 박물관으로 행선지가 옮겨지며 이집트 전시 부문의 기초가 됐다.

대표적인 유물은 상형문자 해독의 열쇠인 로제타 스톤(Rosetta Stone)이다. 1799년 7월 15일 이집트 베헤이라 주 로제타에서 프랑스의 원정군 공병대 장교인 피에르 부샤르가 발견했지만, 영국군에 몰수당해 1803년부터 대영 박물관에서 전시하기 시작했다. 또한, 이집트 테베 신전에서 발견된 람세스 2세의 석상은 프랑스군이 운반하기 위해 가슴에 구멍을 냈지만, 무게 때문에 옮기지 못한 상태였는데, 이집트의 영국 총영사로 근무하던 헨리 솔트가 보유하게 되면서 1818년 영국으로 가져갔다.

대영 박물관 1층 4번 전시실에 있는 로제타 스톤.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찬양하는 내용이 맨 위 상형문자, 중간 민용문자, 맨 아래 희랍어 등으로 기록돼 있다.  사진=픽사베이
대영 박물관 1층 4번 전시실에 있는 로제타 스톤.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찬양하는 내용이 맨 위 상형문자, 중간 민용문자, 맨 아래 희랍어 등으로 기록돼 있다. 사진=픽사베이


제1·2차 세계대전 때 전시품 피신

제1·2차 세계대전 동안 대영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들은 영국 각지로 옮겨지며 대피했다. 1차 대전 말기인 1918년 일부 소장품은 런던 우체국 철도를 통해 홀본, 웨일스 국립도서관과 말번 근처로 대피됐다. 1939년 8월 전쟁 임박과 공습 가능성 때문에 듀빈 갤러리에 있던 파르테논 신전 조각상은 박물관의 가장 귀중한 소장품과 함께 지하실, 시골집, 알드위치 지하철역, 웨일스 국립도서관, 채석장 등으로 분산돼 보관됐다. 이는 적절한 조치였다. 1940년 독일군의 런던 대공습으로 듀빈 갤러리가 심각한 피해를 입었기 때문이다. 이때 에드워드 7세 전시실, 중앙 열람실이 있는 돔 건물 등도 파손됐다. 전쟁이 끝나자 대영 박물관은 각지에 분산됐던 유물들을 다시 모아 전시했다.

지난 2000년 11월 8일에는 대영 박물관 1층에 396.72㎡(120평) 규모의 67번 전시실로 한국관이 신설돼 구석기 유물부터 7~8세기 통일신라시대 불상, 13세기 고려청자, 조선 후기 백자, 18세기 김홍도의 ‘풍속도첩’ 등 미술품 2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이 전시품들은 영국의 약탈 문화재가 아니라 한국에서 정식으로 대여받은 문화재들이다. 대영 박물관은 영국에는 대영제국 시절의 영광이지만 문화재를 약탈당한 국가 입장에서는 눈물 나는 건축물이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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