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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독자마당] 민간인 전방 적응기

입력 2020. 03. 02   15:38
업데이트 2020. 03. 02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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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수 육군15사단 독수리연대 병영상담관
이영수 육군15사단 독수리연대 병영상담관

지난해 7월 3일 밤, 커다란 보름달을 보며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전방에서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부푼 설렘 때문이었다.

결혼 후 24년 동안 따뜻한 남쪽에만 살다가 처음으로 맞는 전방 생활을 몸으로 익히느라 호된 몸살감기를 앓았다.

뭐가 뭔지 순서도 방법도 모를 군대문화, 그 속에서 “제 이야기 좀 들어주세요” 하는 청춘들을 만나다 보니 어떤 날은 “이렇게 오랜 세월을 살고 심지어 자원해서 온 나도 새벽에 잠을 못 자서 혹시 집에 수맥이 흐르나 하는 웃기는 걱정에 잠자리를 수도 없이 바꿔보기도 하는데 너는 오죽하겠니? 그래도 너는 전역이라는 기약이라도 있잖니?” 하면 되레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위로해주는 용사들과 보낸 시간이 벌써 5개월이 지나간다.

동네 작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두 편 연이어 보고 나왔는데 매표소 직원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물어온다. “어디 사세요? 언제 이사 오셨어요?”

또, 세탁소에 갔더니 김장하느라 날짜에 못 맞춰 미안하다며 김장김치를 종류별로 싸주었다. 나눠 먹는 걸 좋아한다면서 부담은 넣어두라고 한다.

택배를 보내려고 편의점에 가면 주말인데도 출근했냐며 안타까운 마음에 알은체를 하신다. 어제 오후 3시쯤 교회 앞을 지나가시더라며 감시당하고 있는 기분까지 들 정도로 새로운 이방인에게 관심이 많은 곳이다. 이곳에 온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여전히 관심은 식지 않는다.

불편하리만치 신경 쓰이는 그들의 관심에 이젠 은근 정이 느껴진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를 견디게 하는 힘은 어쩌면 그들의 따뜻한 관심이 아닐까? 건물도, 인적도 드문 전방에 사는 동병상련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대대를 방문할 때면 주임원사님들이나 간부들도 “상담관님 잘 지내세요?” “감사합니다.” 한결같이 말한다. 지역 주민들의 관심이나 부대 간부들 모두 한결같이 그러는 이유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이 땅의 젊은 청춘들을 잘 돌봐야 하는 숙명 같은 책임감으로 서로 위로하고 챙겨주는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열악한 ‘전방’이라는 이곳에도 따뜻함이 흐르고 서로 기댈 수 있는 마음이 열려 있는 곳이라는 걸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함박눈 펑펑 내리는 날이지만 군인들이 눈 치우기 특공기술로 닦아놓은 길을 걸으며 그들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전방 적응기의 첫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딜 수 있는 것도 지역 주민, 간부들 그리고 용사들과 함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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