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연재를 시작하며
전쟁대중가요 반추하면
그 당시의 역사
문화예술적으로 읽을 수 있고
국가·민족주의 아우르는
신애국심 함양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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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한민국은 트로트 전성시대입니다. 오디션 프로그램 ‘내일은 미스트롯’에 이어 ‘미스터 트롯’이 꿈의 시청률 30%대를 돌파하며 트로트 열풍에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올해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1950~1960년대 대중가요를 통해 피란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당시 역사를 재조명하고, 전후 세대에게는 나라 사랑 정신과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합니다. 이에 본지는 유차영(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장/예비역 육군대령) 한국콜마홀딩스 전무가 집필하는 ‘6·25전쟁 70주년 기획특집, 대중가요로 본 6·25’를 주 1회 연재합니다.
2020년 봄날이 다가온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봄날, 현재가 있기까지 과거 6·25전쟁이라는 파란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올해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아 피란민들의 애환을 달래준 유행가에 대해 짚어 본다. 어려울 때 힘이 되어준 대중가요는 지친 국민들에겐 ‘응원가’였다. 전쟁과 유행가는 역사의 궤적 같은 줄기에 매달려 있다. 전쟁이라는 밧줄을 들추어보면 전쟁을 치른 시대를 현재로 하는 상황과 사람들의 삶이 주렁주렁 대롱거린다. 포괄적인 전쟁은 국가가 수행하며, 전투는 군인들이 하고, 국민들은 피란살이를 한다. 적대적 상황에서의 쌍방 간 총성·포성이 멈춘 뒤에도 그 여운은 한참 동안 이어진다. 춘추전국시대 이래로 세상은 노래와 통한다고 했다. 치세락(治世樂), 난세분(亂世憤), 망국탄(亡國嘆). 나라가 태평하면 즐거운 노래, 난세이면 분통 터지는 절창(絶唱), 망국 때에는 민초들의 한탄하는 소리가 곡창(曲唱)으로 음유 된다. 전쟁 때는 난세이다. 그래서 울분 어린 유행가들이 100년의 국민애창곡으로 점철(點綴)되는 것이다.
6·25전쟁은 외국에서는 한국전쟁(the Korean War)이라고 한다. 이 한국전쟁은 인류역사상 4대 재앙의 하나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 흑사병(14세기 중반), 한국전쟁(1950~1953), 제1차 세계대전(1914~1918)이 그것이다. 6·25전쟁은 한국군을 중심으로 미국·영국·터키 등 UN군 16개국에서 전투병력 연인원 194만여 명을 파병했고, 독일·이탈리아·스웨덴·인도 등 6개국에서 연인원 2100여 명의 의료지원병력을 파병했었다. 멕시코·사우디아라비아·헝가리·아르헨티나 등 38개국에서는 목재·석탄·돈·콩·닭고기·비누·군화 밑창 등등을 지원했었다.
되새겨 감사의 손길을 내밀어야 할 나라들이다. 이 전쟁에서 전사한 사람은 17만8000여 명, 부상자는 55만5000여 명, 실종 2800여 명, 포로 1만4000여 명 등 77만여 명이었다. 이들 중 우리 대한민국의 인명피해는 62만여 명, 전사·실종자가 13만여 명이다. 이분들 중 12만여 분은 아직도 우리나라의 이 고지 저 능선 자락에 호국용사님으로 묻혀 계신다. 이분들을 비례삼불(非禮三不)로 모셔 와서, 귀가국선(歸家國宣)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국방부 직할기관이 유해발굴감식단이다. 필자는 2014년 말 37년의 군 복무를 이 직책으로 마감했다. 감사의 세월이었다. 이제 그 고마움에 대한 빚을 갚는 마음으로 6·25전쟁 70주년 기획특집, ‘대중가요로 본 6·25’를 숙고(熟考)와 조탁(彫琢)한 문장으로 씨줄 날줄을 삼아 얽어보고자 한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3년 1개월 1129일간의 전쟁과 전투와 피란의 피폐함은 국민애창곡이라는 역사의 뒤주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시대에 탄생한 노래를 전쟁가요라고도 한다. 2019년 대한민국 국민들은 <내일은 미스트롯>이라는 대중가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눈과 귀를 호사시켰다. 송가인(1986년 진도 출생, 본명 조은심)의 <한 많은 대동강>, <용두산 엘레지>에 국민들은 환호했다. 6·25전쟁발발 70주년, 2020년은 새해 벽두부터 <미스터 트롯> 열풍이 대한민국을 감흥으로 차오르게 하고 있다. 10대 정동원(2007년 경남 하동 출생)으로부터 영탁(1983년 안동 출생, 본명 박영탁) 등으로 그 세대의 아우름도 유행가의 매력이고 마력이다. 이러한 대중가요는 그 노래가 탄생한 시대 이념과 민초들의 삶을 담고 있다. 그래서 전쟁시대의 노래를 반추하면, 그 당시의 역사를 문화 예술적으로 반추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국가주의와 민족주의를 아우르는 신애국심(新愛國心)을 함양할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 필자의 신념이다.
6·25전쟁이 낳은 대표적인 전쟁대중가요는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작전명칭, 크로마이트)을 기점으로 북진반격을 해가던 국군과 UN군의 전투화 발자국과 화약 내음을 뒤따라가면서 부른 현인의 <전우야 잘 자라>이다. 다음은 눈물의 1·4후퇴작전 중 흥남철수 작전을 음유한 <굳세어라 금순아>, 2년 1개월간의 지난한 휴전협정 기간 중 오늘날의 휴전선 근처 고지전투 상황을 읊은 <전선야곡> 등이다. 모든 전쟁에는 원인과 과정과 결과가 있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 뒤에는 상처와 아픔의 치유 과정이 기나긴 세월의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다. 혹은 영원히 치유되지 않는 미완의 종결도 있다. 완료된 슬픔도 있다. 역사의 궤적 속에 미궁(迷宮)으로 남는 것도 있다. 6·25전쟁 발발 70주년, 그 역사의 뒤안길을 대중가요 유행가로 풀어 보자. 6·25전쟁의 원인을 음유한 노래는, <귀국선>·<가거라 38선> 등이고, 6·25전쟁 기간에 탄생한 절창은 <꿈에 본 내 고향>, <미사의 노래>, <삼다도 소식>, <병원선> 등이 있다. 전쟁 상흔의 곡창은 <이별의 부산정거장>, <님 계신 동작동> 등등. 이런 노래들을 한 곡씩 음유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이름을 충정으로 품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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