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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균형서 핵 우세로… 트럼프발 핵 경쟁 불붙었다

입력 2020. 02. 21   17:26
업데이트 2020. 02. 2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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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udget for America’s Future』(White House, 2020.2.10.) 

『The Logic of American Nuclear Strategy』(Matthew Kroenig. 2018. Oxford University Press.)



핵전력 현대화 대규모 예산 요청
미국 내 여론·일부 소장학자 지지
재선 성공 땐 일방주의 더욱 강화
경쟁국도 전력 강화 적극 나설 듯
  

지난 2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2021년 예산요청서는 은밀하게 모색됐던 미국의 핵전력 현대화 및 증강 움직임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이제 현실화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사진은 미국의 3대 핵전력(nuclear triad)인 전략폭격기·SLBM·ICBM(왼쪽부터).  필자 제공(출처=미 국방부 홈페이지)
지난 2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2021년 예산요청서는 은밀하게 모색됐던 미국의 핵전력 현대화 및 증강 움직임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이제 현실화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사진은 미국의 3대 핵전력(nuclear triad)인 전략폭격기·SLBM·ICBM(왼쪽부터). 필자 제공(출처=미 국방부 홈페이지)


『A Budget for America’s Future』(White House, 2020.2.10.)
『A Budget for America’s Future』(White House, 2020.2.10.)


『The Logic of American Nuclear Strategy』(Matthew Kroenig. 2018. Oxford University Press.)
『The Logic of American Nuclear Strategy』(Matthew Kroenig. 2018. Oxford University Press.)



트럼프 행정부는 ‘핵 우세’로 방향을 정했다. ‘핵 균형’과 ‘상호확증파괴’에 기반한 불안정한 평화가 아니라, 미국의 핵 우세에 기반해 자국 안보를 추구해야 한다는 국내 여론과 핵 우세를 지지하는 학계 논리를 반영해 신형 핵무기 개발을 서두르고 있다. 수년 안에 미국의 압도적 핵전력이 구체화할 것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미국의 ‘핵전력 현대화’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2021년 예산요청서를 발표했다. 미 탄핵 국면과 대선 관련 소식에 묻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 예산요청서는 10년 안에 국제 질서를 급변시킬 폭발력을 지니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은밀하게 모색됐던 핵전력 현대화 및 증강 움직임이 ‘핵전력 현대화’를 위한 예산 요청으로 수면 위로 드러나며 이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2021년 예산요청서를 보면 미국은 지상 발사 장거리 핵미사일, 장거리 전략폭격기, 탄도미사일 발사용 잠수함 등 3대 핵전력 증강을 동시에 모색한다. 핵전력 현대화를 위한 연구개발 용도로 한국 전체 국방비의 약 35%에 해당하는 147억 달러(약 17조5000억 원)를 요청했다. 컬럼비아급 잠수함 개발에 44억 달러, 장거리 전략폭격기 개발에 28억 달러, 지상발사 장거리 핵미사일 개발에 15억 달러가 할당됐다. 핵전력의 제어와 통제를 담당하기 위한 체계를 개발하는 데도 42억 달러가 책정됐다. 현재 미국의 3대 핵전력은 노후해 부분 개선 또는 전면 교체해야 하는 상태다. B-52는 1955년부터, 미니트맨-3은 1971년부터, 오하오급 잠수함은 1981년부터 실전 배치돼 기술적 수명이 곧 끝난다. 트럼프 행정부는 기존 핵전력의 부분 개량을 통한 수명 연장보다 전면 현대화를 원한다. 즉, 신무기 개발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핵 균형 유지 정책 폐기 의미

트럼프 행정부의 ‘핵전력 현대화’는 적성국과의 핵 균형 유지 정책의 폐기를 의미한다. 냉전기 미국과 소련은 명시적으로 핵 균형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상호확증파괴를 통해 평화가 유지된다는 논리를 사실상 수용하면서 1960년대 이후 핵 균형을 유지했다. 양국 모두 선제공격 당해도 남은 핵전력으로 상대방을 완전히 파괴할 능력을 보유하기 때문에, 서로 공격하기 어렵다고 여겼다. 그래서 양국은 인위적으로 미사일 방어를 하지 않기로 합의했고, 해외 배치된 핵전력을 조율했다.

적성국의 미사일을 공중에서 격추하는 안을 모색했던 레이건·부시 행정부도 핵전력의 현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50년 이상 유지된 핵 균형과 상호확증파괴의 굴레를 벗어나 핵 우세에 기반한 일방적 안보를 추구하고 있다.



수면 아래 움직임

핵 우세 정책은 조용하게 진행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임 오바마 행정부가 장거리전략폭격기를 대체할 목적으로 진행하던 연구용역을 이어받았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2017년 핵미사일 발사용 컬럼비아급 잠수함을 개발하는 연구용역을 발주했고, 지상발사 장거리 미사일 현대화를 위한 연구용역도 체결 절차를 밟고 있다. 이처럼 3대 핵전력 개선 연구는 이미 수면 아래서 진행되고 있었다.

새로운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미임계 핵실험도 진행됐다. 이 실험은 연쇄 핵반응 직전까지 핵반응이 일어나도록 함으로써 핵폭발을 일으키지 않으면서도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선진국의 미임계 핵실험은 실험실 밖으로는 알려지지 않아 대중의 관심을 끌지 않지만 실제 핵실험에 버금가는 효과를 가진다. 이 실험을 얼마나 진행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트럼프 행정부 이후인 2017년 10월과 2019년 2월 최소 2차례 미임계 핵실험이 진행됐음이 실험 중 사고로 드러났다. 미국은 소리 없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

1987년 미국과 소련은 중거리미사일(INF) 협정으로 사정거리 500~5000㎞ 이내 핵미사일과 미사일 발사대를 폐기하기로 약속해 전략핵무기의 균형을 통한 불안정한 평화를 모색했다. 2018년 10월 20일 트럼프 대통령의 INF 협정 탈퇴 선언은 미국 핵정책이 변화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중·러의 핵전력 개선과 증강 움직임에 따라 미국도 핵균형의 의무에서 벗어나 핵 우세 정책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핵 우세 정책에 우호적인 환경

트럼프 행정부의 핵 우세 정책은 국내 여론의 지지를 받는다. 평범한 시민은 핵 균형과 상호확증파괴에 기반한 평화를 이해하기 어렵고, 이해해도 본능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 한다. 적성국과의 상호자제를 통해 충돌을 피하는 정책보다 자국의 압도적 능력으로 적성국 도발을 막거나 위협을 원천 차단하는 안을 선호하기 때문.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정치인은 이런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기술 진보도 핵 우세 정책에 우호적 환경으로 작동한다. 레이건 행정부의 전략방위구상, 부시 행정부의 미사일방어 정책도 국내적 지지를 받았지만, 기술적 장벽으로 인해 본격화되지 못했다. 반면, 오늘날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기술 발전을 주도하고 있다. 전임 행정부가 확보하지 못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트럼프 행정부의 핵전력 현대화의 이면에 있다.

중국의 전력 강화 역시 트럼프 행정부의 핵전력 강화에 중요한 명분을 제공한다. 2019년 중국이 건국 70주년 열병식에서 선보인 초음속활공미사일 DF-17과 같은 신무기는 기존 핵전력을 뛰어넘는 새로운 위협이다.



미국 학계의 지지

2010년대 미국 일부 소장학자들이 핵무기에 대한 기존의 부정적 선입견에서 벗어나 핵 우세의 장점과 필요성을 증명하는 연구를 내놨다. 핵에너지 사용에 대해서조차 부정적인 미국 학계의 일반적 분위기와 달리, 2000년대 이후 일부 소장학자들이 핵위기 사례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기존 통념과 다른 연구가 쏟아졌다. 『The Logic of American Nuclear Strategy』의 저자로서 현재 미국 조지타운대학교에 근무하는 매슈 크로닉 교수가 이러한 변화를 대표하는 신진 학자다. 그는 핵보유국이 관련된 위기를 연구하면서, 분쟁 당사국 간 핵전력 차이가 분쟁 해소 과정에서 손익과 관련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양국이 모두 핵무장 했어도, 핵전력에서 우세한 쪽이 더 유리한 결과를 얻는다는 것이다. 이는 핵 균형으로 상호확증파괴에 도달하면 위기 자체가 없으리라 예상하는 기존 통념과 상치된다. 또한 크로닉 교수는 핵무기 벼랑 끝 전술의 신빙성이 핵전력의 우열과 관련돼 있음을 논증한다. 도박에 비유한다면, 손에 든 패를 이미 아는 상태에서 유리한 패를 든 사람의 위협을 상대적으로 더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 핵 우세 정책의 후폭풍

트럼프 행정부가 신청한 핵전력 개선 관련 예산 규모는 국회를 거치며 아마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현 미국 행정부의 핵 우세 경향은 분명하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미국은 핵 균형과 상호확증파괴를 완전히 폐기할 수도 있다. 내년 2월이면 뉴스타트 조약이 끝나지만, 미국이 러시아와 핵전력 규모를 조정하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스스로 규제하지 않으면, 미국의 핵전력 규모를 규제하는 외부 장벽은 자동으로 없어진다고 볼 수 있다. 핵 우세 정책을 제어할 수 있는 미국 의회도 핵 우세를 선호하는 국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핵 우세 정책이 현실화된다면, 미국의 일방주의는 더욱 강화된다. 다른 국가는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수 없지만, 미국은 다른 나라의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 이익을 일방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 경쟁국들은 이를 막기 위해 핵전력 강화 또는 미국의 방어막을 뚫거나 우회하는 새로운 무기 개발을 시도할 것이다. 핵전력을 증강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가시권 안에 들어왔다.

조 동 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조 동 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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