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6.25 70주년, 해외참전용사 희망드림 코리아

[6.25 70주년] “폐허 같았던 우리집이 천국으로 바뀌었어요”

김용호

입력 2020. 02. 19   16:12
업데이트 2020. 02. 19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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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3세 스타이베가


지독한 가난으로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외곽 코리안타운 외가에 얹혀 살고 있는 스타이베가(가운데)와 6·25전쟁 영웅이신 외할아버지(왼쪽)·외할머니 모습.  월더비전 제공
지독한 가난으로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 외곽 코리안타운 외가에 얹혀 살고 있는 스타이베가(가운데)와 6·25전쟁 영웅이신 외할아버지(왼쪽)·외할머니 모습. 월더비전 제공

  
“집안에 텔레비전 소리라도 들렸으면 좋겠어요. 외할아버지가 시력을 잃어 화면은 못 보지만 소리는 들을 수 있어요. 종일 집에만 계시니까 텔레비전이 있으면 덜 심심하지 않을까 싶어요. 또 저에겐 새 신발과 새 가방, 새 옷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베가 모조 옹, 70년 전 강뉴부대서 활약

아프리카 대륙의 14세 소녀, 스타이베가의 진심 어린 바람이다. 한창 꾸미고 멋 부릴 사춘기 여학생인 그녀에게 항상 1번은 외할아버지다.

스타이베가가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에티오피아는 커피의 나라가 아니라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켜낸 ‘형제의 나라’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도 6·25전쟁 영웅이다. 70년 전 강뉴부대의 용맹한 전사였던 외할아버지 베가 모조(96) 옹의 얼굴은 협곡처럼 깊게 파인 굵은 팔자 주름으로 강인한 인상을 풍긴다. 쉽지 않았던 인생 역정을 말해주듯 노병 모조 옹의 얼굴에는 그동안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스타이베가는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한국마을(코리안타운)’인 굴렐레 지역에서 외할아버지·외할머니와 살고 있다. 100살을 바라보는 외할아버지는 눈이 보이지 않아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고령인 외할머니도 주변 도움 없이는 거동이 매우 불편하다.

“학교 다니며 외할아버지·외할머니의 손발이 돼 줄 수 있어 너무 좋아요. ‘한국전쟁 영웅’이신 외할아버지가 곁에 살아 계시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찢어지게 가난한 환경에도 밝게 자란 스타이베가는 엄마·아빠, 그리고 3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월리소’라는 산골짜기 마을에서 살았다. 그야말로 깡촌이었다. 월리소의 집은 쇠똥과 짚으로 지은 움집이다. 흙바닥에 낡은 스티로폼이나 스펀지를 깔고 자야 할 만큼 열악한 환경이었다.


 

6·25전쟁 참전용사 베가 모조 옹의 집이 우기에 쓰러져 흙으로 벽체를 보수한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다. 지붕에는 조각 함석을 덧댄 흔적이 위태롭기 짝이 없다. 사진=성남시청소년재단 제공
6·25전쟁 참전용사 베가 모조 옹의 집이 우기에 쓰러져 흙으로 벽체를 보수한 흔적이 오롯이 남아 있다. 지붕에는 조각 함석을 덧댄 흔적이 위태롭기 짝이 없다. 사진=성남시청소년재단 제공


성남시청소년재단이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 보은 프로젝트’를 추진,  폐허나 다름 없는 구옥을 허물고 현대식 건축물로 재건축한 베가 모조 옹의 집. 사진=성남시청소년재단 제공
성남시청소년재단이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 보은 프로젝트’를 추진, 폐허나 다름 없는 구옥을 허물고 현대식 건축물로 재건축한 베가 모조 옹의 집. 사진=성남시청소년재단 제공



어려운 환경에도 학교 다닐 수 있어 행복

집안 사정이 이렇다 보니 2년 전부터 외할아버지 댁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녀가 굴렐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 그렇게 학수고대하던 학교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물림하는 가난은 그녀를 초등학교 문턱도 넘보지 못하게 했다. ‘희망 사다리’인 교육받을 권리마저 빼앗아 버린 것이다.

가난 때문에 일찍 철이 든 스타이베가는 중학교 2학년에 다녀야 한다. 하지만 월리소에서 학교에 다니지 못해 현재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다.

엄마가 그녀를 외가에 맡기며 부탁한 것도 학교는커녕 ‘밥만 굶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곁에서 스타이베가의 착한 심성을 지켜본 외할머니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하면서 입학하게 됐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평생 살아오신 ‘한국마을’에서 동생뻘 되는 동급생들과의 학교 생활이 행복해요. 공부가 아직 서툴고 글씨가 삐뚤빼뚤하지만 호기심이나 관심이 많아요. 한 가지씩 차근차근 배우면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어요. 다소 늦은 나이지만 꿈을 가질 수 있게 배움의 길을 열어준 외할머니께 감사드려요.”

배움의 목마름을 해소해주는 공부가 재미있고 등굣길이 제일 신난다는 그녀의 하루 일과는 부엌일로 시작해서 부엌일로 끝난다. 새벽에 눈을 뜨면 외할아버지·외할머니 아침을 준비하는 데 분주하다. 야무진 고사리손은 잠시도 쉴 틈이 없다. 외할머니와 부엌에서 채소를 다듬거나 간단한 음식을 조리하는데 손발이 척척 맞는다.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도 그녀 몫. 집안 청소와 정리를 한 후 책가방을 챙겨 등교하기 전에는 하루 동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 놓는 일을 빠트리지 않는다. 동네 골목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어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눈에 밟혀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성남시청소년재단, 새 보금자리 선물

그녀가 살고 있는 현재 보금자리는 2018년 성남시가 주최하고 성남시청소년재단이 주관한 ‘에티오피아 6·25 참전용사 보은 프로젝트’ 일환으로 재건축된 집이다.

참전용사 보은 프로젝트를 주관한 성남시청소년재단 관계자는 “현재의 잘사는 대한민국을 있게 한 고마운 분들인 에티오피아 6·25 참전 노병들이 인생 말년을 좀 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흙과 나무로 지어진 옛날 집이 우기에 무너져 벽돌과 시멘트로 산뜻하게 재탄생된 9평 남짓한 새 집은 침실과 거실 겸 부엌, 화장실로 구성돼 있다. 연로하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침실을 쓰고 스타이베가는 거실에서 잔다.

“깨끗한 집에서 공부하고 잠잔다는 게 꿈만 같아요. 정체 모를 벌레나 곤충이 없는 깔끔한 환경의 우리 집은 천국이에요. 폐허 같았던 집을 뜯어내고 현대식으로 새 집을 선물해 주신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김용호 기자/사진=성남시청소년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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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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