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건축, 전쟁사를 말하다

멕시코 국립궁전, 식민지 총독 관저서 대통령 집무실까지… 파란만장한 멕시코 역사와 함께

입력 2020. 02. 14   17:24
업데이트 2020. 02. 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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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멕시코 국립궁전


스페인 코르테스에 정복돼
아즈텍 황제의 궁전 자리에
식민통치 총독관저로 건설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 사용
멕시코의 생생한 역사 담은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유명 

 

멕시코시티 중심 소칼로 광장에 있는 멕시코 국립궁전(오른쪽)과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사진=www.britannica.com
멕시코시티 중심 소칼로 광장에 있는 멕시코 국립궁전(오른쪽)과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사진=www.britannica.com


멕시코(Mexico)는 마야, 테오티우아칸, 톨테크, 아즈텍의 인디오 문명지로 국명은 아즈텍의 수호신인 ‘멕시틀리(Mexitli)’에서 유래됐다. 멕시코는 1521년 스페인으로부터 식민지배를 받다가 멕시코 독립전쟁(1810~1821)이 끝난 1821년 코르도바 협정에 의해 독립했다.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중심에 있는 소칼로 광장은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공공 광장이다. 멕시코 근현대사는 이곳을 중심으로 펼쳐졌는데 스페인 총독 관저였다가 대통령 집무실과 행정부처로 쓰이는 멕시코 국립궁전(National Palace)을 비롯해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시청사, 템플로 마요르 등이 이곳에 있다.


1524년 스페인 총독 관저로 지어져

멕시코 고원은 해발 2240m의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다. 고대 멕시코 최후의 국가인 아즈텍은 ‘독수리가 호숫가의 선인장 위에 앉아 뱀을 잡아먹는 곳에 도시를 세워라’라는 계시에 따라 14세기 텍스코코 호수 가운데 있던 섬에 수도 테노치티틀란(‘신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을 세웠다.

아즈텍은 1519년부터 1520년까지 스페인의 에르난 코르테스(1485~1547)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도시가 파괴됐는데, 스페인군은 무력으로 정복한 후 원주민들을 학살하거나 노예로 팔았다. 또한 천연두와 홍역 같은 전염병으로 인해 많은 인디오들이 희생됐으며, 원래 있던 화려한 궁전은 무너지고 호수마저 모두 흙으로 메워졌다.

그 후 스페인은 1522년 1월부터 테노치티틀란 위에 멕시코시티를 건설했는데, 1524년 소칼로(Zocallo·‘광장’이라는 뜻의 스페인어)를 세우고, 주변에 국립궁전의 전신인 총독 관저와 대성당, 거주지를 조성했다. 아즈텍의 황제였던 목테수마(Moctezuma)의 궁전이 있었던 자리에 코르테스가 총독부 건물을 세웠는데, 멕시코시티가 스페인의 부왕령(副王領·Viceroyalty, 스페인 왕실이 해외 식민지를 원활히 통치하기 위해 아메리카 신대륙에 설치한 통치기구)인 ‘누에바 에스파냐(Virreinato de Nueva Espana·새로운 스페인)’가 되면서 총독 관저의 역할이 중요해졌다. 1547년 코르테스가 사망할 당시 총독 관저는 3개의 아치형 안뜰과 2층으로 구성됐다.


멕시코 독립전쟁 끝나고 왕궁으로 선포

멕시코는 스페인의 식민지배 아래 스페인에서 파견된 관료, 멕시코에서 태어난 백인 크리오요(Criollo),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소(Mestizo), 원주민 순으로 구성된 계급사회가 됐다. 3세기가 흐르는 동안 크리오요는 신분 상승의 차별을 받았으며, 메스티소와 원주민은 대농장인 아시엔다에서 혹사당하는 노예로 전락해갔다.

멕시코 독립의 불을 댕긴 것은 크리오요 출신의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1753~1811) 신부였다. 그는 원주민과 메스티소의 생활개선을 위해 힘쓰는 한편 원주민의 말을 배워 그들의 삶을 통감했다.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 신부의 초상화. 사진=tshaonline.org
미겔 이달고 이 코스티야 신부의 초상화. 사진=tshaonline.org


1808년 스페인에서 독립전쟁(1808~1814)이 발발해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스페인을 침공했다는 소식이 멕시코의 누에바 에스파냐로까지 전해지면서 식민지에서는 해방 기운이 널리 퍼졌다. 코스티야는 민중 봉기를 1810년 10월 1일로 계획했지만, 정보가 새나가면서 날짜를 앞당겼다. 코스티야는 그해 9월 15일 밤 독립전쟁을 선언했으며 다음 날인 9월 16일 새벽 스페인 총독 관저가 있는 멕시코시티를 향해 진격했다. 독립군은 한동안 기세를 올렸으나 1810년 10월 30일 멕시코시티에서 중무장한 스페인군에 대패해 결국 미국-멕시코 국경까지 도망쳤다. 코스티야는 스페인군에 붙잡힌 후 1811년 7월 30일 처형됐다.

코스티야 사후 독립군은 성직자인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1765~1815)라는 새로운 지도자를 중심으로 전쟁을 다시 시작했지만, 모렐로스 역시 체포돼 1815년 12월 22일 처형됐다. 이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전투는 게릴라 조직에 의해 산발적으로 이뤄졌다. 스페인군의 막강한 무력 앞에서 불가능해 보였던 멕시코의 독립은 스페인군이자 크리오요였던 이투르비데(1783~1824)가 스페인을 배신하고 독립군을 지휘해 1821년 8월 24일 코르도바 조약을 체결하면서 마침내 이뤄진다. 멕시코 독립전쟁이 끝난 후 국립궁전은 왕궁으로 선포돼 1822년부터 1884년 사이에 모든 통치자의 거주지가 된다.

멕시코-미국 전쟁 때 패해 미국기 걸려


진정한 독립보다는 사리사욕에 눈이 먼 이투르비데는 1822년 5월 19일 스스로 제위에 올라 멕시코의 황제 아구스틴 1세가 된다. 하지만 국민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1823년 3월 19일 퇴위했다. 이투르비데는 이탈리아와 영국으로 망명했다가 1824년 의회가 자신의 사형을 결의한 것도 모른 채 멕시코에 귀국해 그해 7월 19일 처형됐다.

멕시코는 1824년 공화국 헌법이 최초로 공포되고 공화제가 확립되지만,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50년 동안 30회 이상 대통령이 바뀌는 정치 불안이 계속된다. 이 와중에 멕시코-미국 전쟁(1846~1848)이 일어나 멕시코는 텍사스에서 캘리포니아에 이르는 북부 영토를 잃고 만다.

안토니오 산타안나(1794~1876)는 1829년 탐피코에서 스페인군을 물리쳐 국민적 영웅이 된 후 1833년 스스로 대통령에 오르지만, 미국 텍사스의 독립을 두고 1846년 벌어진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멕시코군의 4배나 되는 대군으로 멕시코를 점령한 미국은 1847년 9월 14일 차풀테펙 성에서 남아있는 마지막 요새를 점령했다. 미군은 소칼로 광장에 들어와 승리 표시로 국립궁전에 깃발을 게양했다. 1848년 2월 2일 과달루페-이달고 조약으로 전쟁은 종결됐다. 산타안나는 조약 결과로 1853년 1500만 달러(현재 가치로 3억8100만 달러)에 뉴멕시코, 애리조나, 콜로라도, 네바다, 유타 등 영토의 절반을 미국에 강제로 매각했다.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1929년부터 1951년까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멕시코의 투쟁을 그린 생생한 역사적인 벽화. 멕시코 국립궁전 2층을 향하는 계단에 있다.  사진=www.farhorizons.com
멕시코의 화가 디에고 리베라가 1929년부터 1951년까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멕시코의 투쟁을 그린 생생한 역사적인 벽화. 멕시코 국립궁전 2층을 향하는 계단에 있다. 사진=www.farhorizons.com


2019년부터 대통령 관저로 사용

그 후 계속된 멕시코의 정치 불안은 국립궁전의 재건에 영향을 끼쳤다. 멕시코 혁명(1910~1917)이 지나고 사회가 점차 안정된 1927년에서야 국립궁전은 재설계돼 총 3층 규모로 완공됐다. 정면은 남북에 두 개의 탑으로 경계를 이루며 세 개의 주요 출입구가 있다. 외관은 붉은색이며 길이는 200m이다. 건물 내부의 2층을 향하는 계단에는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1886~1957)가 인디오의 부흥과 스페인 침략, 멕시코 독립에 관한 주요 사건들을 주제로 1929년부터 1951년까지 걸쳐 완성한 거대 벽화가 있다. 문맹률이 높았던 멕시코에서 대중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혁명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으로 벽화가 사용됐다.

1934년부터 2018년까지 대통령 관저로 국립궁전 대신 로스피노스가 사용됐는데, 로스피노스는 미국 백악관의 14배에 달하는 크기를 자랑했다. 지난 2018년 12월 멕시코에서 89년 만에 좌파 정권 교체를 이끈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이 첫 번째 공약으로 로스피노스가 박물관으로 탈바꿈하면서 국립궁전은 지난해부터 다시 대통령이 머무는 관저가 됐다. 이곳에는 대통령 집무실뿐만 아니라 국립문서국과 연방 재무부가 있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취임 후 평일 오전 7시 일일 기자회견을 이곳에서 열고 있다. 국립궁전은 오늘도 멕시코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이상미 이상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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