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병영칼럼

[한은주 병영칼럼] 기억될 수 있는 공공언어

입력 2020. 02. 07   17:06
업데이트 2020. 02. 07   17:32
0 댓글

한은주 이화여대 국어문화원 선임연구원
한은주 이화여대 국어문화원 선임연구원


어린 시절 유명인사나 위인들의 명언 또는 격언이나 속담, 경구 등을 가슴에 새기며 훌륭한 어른, 멋진 미래를 꿈꾼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필자도 그런 시절을 보냈으니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명언이나 격언 등에서 한 말보다 읽는 사람들이 오히려 큰 의미를 부여하며 많은 생각을 담아 해석했던 것 같기도 하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어린 시절 필자가 감명받았던 글들을 적어둔 수첩을 찾아보았다. 평소에 단기 기억상실증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 것에 비해 이런 기록들은 잘 챙기는 편이었기에 어린 시절 깨알같이 써서 남긴 글도 ‘다이어리(일기장)’라는 이름을 붙여 몇 권 남겨두었다. 그만큼 내겐 소중했던 모양이다.

첫 장을 여니 베이컨의 ‘아는 것은 힘이다’부터 시작했다. 아마도 중학교를 시작하던 시점이라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나름의 각고의 다짐을 새긴 것일 테다. ‘시간은 금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라’ 같은 격언도 있었다. 참으로 학생답다. ‘이마에 땀을 흘리지 않는 자는 식탁에 앉을 수 없다’ 같은 경구도 있었고,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등의 속담도 있었다. 학창 시절에 써두었던 글들이지만 지금 보아도 “그래” 하며 수긍하게 된다.

이렇듯 사리에 맞는 훌륭한 말이나 예부터 민간에 전해 오는 말 또는 오랜 역사적 생활 체험에서 건져 올린, 인생에 대한 짧은 글, 진리나 삶에 대한 느낌이나 사상을 간결하고 날카롭게 표현한 말들을 우리는 ‘명언, 속담, 격언, 경구’라 부른다.

이런 말들의 공통된 특징 중 하나는 ‘오래된 말’이라는 것이다. 어떤 것은 사람이 남긴 말로 200년에서 300년 혹은 공자나 맹자와 같은 성현(聖賢)들의 말까지 올라간다면 수천 년 동안 전해 오는 명언들도 있을 것이다. 또 속담의 경우는 한 사회나 국가 안에서 문화와 함께 이어져 내려와 그 말이 만들어진 시기를 알 수 없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국가 기관, 학교 교육, 방송, 경제 활동 등에서 사용하는 말과 글처럼 우리 주변에는 공공언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사회의 한 모습을 보여주거나 공식적인 기록으로 남기는 것들은 모두 공공언어가 그 역할을 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런 공공언어는 쉽게 써야 한다. 중학교 1~2학년 정도의 학생이 한 번에 읽거나 들었을 때 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써야 한다고 한다.

명언, 속담, 격언, 경구는 오래된 말들인데도 한 번 읽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게 쉽다. 30년 전의 중학생이 들었을 때도 쉽게 이해했고, 그 의미를 실천하려고 했다. 공공언어도 명언, 속담, 격언, 경구를 닮았으면 한다. 누구나 들었을 때 쉽게 이해하여 실천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도록 말이다. 또한, 30년 후에 살고 있을 우리의 후배들이 2020년의 과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으면 한다. 그래서 지금을 바르게 이해했으면 한다. 더 나아가 사회를 지지하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는 쉬운 공공언어 한 마디가 남아 후대에도 기억되고 그것을 많은 사람이 오래도록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 본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