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CG는 거들 뿐…배우가 살렸네, 그리고

입력 2020. 01. 16   16:20
업데이트 2020. 01. 1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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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영화 ‘백두산’: 황당한 스토리 속에 숨겨진 진실


영화 백두산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백두산 포스터.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백두산’이 새해 의미 있는 기록을 내고 있다. 손익분기점인 730만 관객을 개봉 18일 만에 넘어서더니, 개봉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800만 관객을 넘어섰다. ‘어벤저스’를 은퇴한 할리우드의 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새롭게 선택한 가족영화 ‘닥터 두리틀’(감독 스티브 개건)과 전설이 되어버린 시리즈 ‘스타워즈’의 마지막 에피소드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감독 J J 에이브럼스) 등 블록버스터들의 공세에도 꿋꿋이 관객을 모으며 박스오피스에서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영화 ‘백두산’이 개봉될 당시만 해도 기대보다 우려가 컸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이병헌과 하정우라는 최고의 흥행카드들이 투 톱을 이뤘고, 이젠 할리우드도 인정한 액션스타 마동석, 영원한 아이돌 수지까지 합류한 출연진은 확실한 보증수표 역할을 갖추고 있었다. 백두산 화산이 폭발하면서 남과 북이 아수라장이 된다는 설정은, 재난의 규모나 성격 면에서도 상당한 호기심을 자아낼 법했다.

하지만 규모가 큰 이야기일수록 촘촘한 스토리 라인을 짜내기 어렵기에, 정서를 중시하는 한국 관객이 선호하는 이야기가 나오기 힘들다는 경험적 분석이 있었고, 영화로서는 엄청난 제작비라는 260억 원도 컴퓨터그래픽(CG)으로 화산 폭발 장면들을 담아내기엔 턱없이 적은 금액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경쟁하고 있는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시리즈 중 비교적 제작비가 적게 들었다고 하는데도 2억 달러(약 2400억 원)가 투여됐다는 것만 봐도, 대충 결과물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영화‘백두산’장면.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백두산’장면. 사진=CJ엔터테인먼트

뜻밖에 규모나 CG 장면이 부족할 수 있다는 심증을 굳히는 계기는 후반 작업 5개월 만에 개봉한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국 영화의 후반 작업 기간으로는 결코 짧은 기간이 아니며, 제작비 규모에는 어울리는 기간이었다. 하지만 기술과 시간으로 빚어내는 것이 CG이기 때문에, 5개월의 후반 작업 기간은 압도적 규모의 CG 장면들은 없겠다는 생각을 할 만한 근거가 되었다.

그런데 영화는 이런 기대를 완전히 벗어났다. CG를 담당한 ‘덱스터 스튜디오’의 결과물은 제작비와 작업 기간을 고려한다면 기적에 가까운 성과였다. 영화 초반에서 만난 강남의 길거리가 갈라지고 빌딩들이 무너지는 장면들은 현실감이 넘쳤고, 한강의 해일(海溢) 장면은 스타워즈 제작진에 보여주고 싶을 만큼 강렬했으며, 후반의 현수교 붕괴 장면은 박진감이 넘쳤다. 백두산 폭발 장면은 제작진의 가치를 돋보이게 했는데, 사뭇 장엄하고 아름다웠다. 백두산은, 재앙을 가져오는 원흉이 되더라도 아름답게 그려내야 했던 그 마음과 배려를 과연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이 회사를 만들고 유지하느라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던 김용화 감독이야말로 한국 영화산업에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게 한 사람으로 영화사에 기억될 것이란 사실이다. 
 
‘백두산’의 주연 배우 하정우, 전혜진, 배수지, 이병헌(왼쪽부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백두산’의 주연 배우 하정우, 전혜진, 배수지, 이병헌(왼쪽부터)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영화의 장점은 또 있었다. 허술한 스토리 라인이야 익히 예상했던 대로였고, 넘치는 클리셰(cliche)들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결함을 품고 오히려 묘하게 관객들을 설득해낸 배우들의 연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이병헌은 국가의 무능을 혐오하면서도 그 국가의 일원으로 기능해야 하는 숙명을 이중간첩이라는 역할에 얹어서 설득력 있게 표현해냈을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의 결함들을 완벽한 캐릭터 구축으로 메워버렸다.

하정우는 인간적인 매력을 탑재한 상태에서 이병헌이 화려한 개인기를 구사하도록 절제하고 배려함으로써 영화 후반부의 지루할 수 있는 버디 무비 장면들을 풍성하게 빚어냈다. 단 한 장면에 얼굴을 보였지만, 그 장면만은 이병헌이 가려질 만큼 존재감을 과시한 전도연은 영화의 무게를 달라지게 했고, 마동석은 왜 그가 사랑받는 배우인지를 증명해냈다. 전혜진의 내공과 수지의 가능성도 영화를 꽉 채워주는 힘이었다. 

 

영화 ‘백두산’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영화 ‘백두산’ 스틸컷.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러나 이런 장점들만큼이나 이 영화의 성공을 견인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이 재난적 상황을 통해 상징적으로 확인한 운명공동체로서의 남과 북의 현실이다. 백두산의 화산 폭발이 한반도 전체에 엄청난 재앙이 된다는 점을 이 영화는 실감 나게 시뮬레이션해 주면서, 동시에 그러한 재난과 유사한 다른 재앙들(예컨대 전쟁 같은)에도 남한과 북한은 함께 공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입증해 주었다. 화산 폭발이 가져올 재난을 핵으로 막을 수 있다는 설정은 무리하고 황당하지만, 일단 그런 대규모의 재난이 생겨났을 때 우리가 모두 함께 그 재난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모두 희생자가 될 뿐이라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입증됐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CG 제작진은 백두산의 풍광을 장엄하고 아름답게 그려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한국 사람들만 느낄 수 있는 정서라 해도.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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