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성수 평론가의 대중문화 읽기

K-팝·K-드라마·K-무비…세상이 한류로 소통을 시작한다

입력 2020. 01. 09   16:23
업데이트 2020. 01. 0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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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2020년대의 한류 -온 인류의 언어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러브 유어셀프:스피크 유어셀프’ 피날레 콘서트 무대 모습.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방탄소년단(BTS)의 월드투어 ‘러브 유어셀프:스피크 유어셀프’ 피날레 콘서트 무대 모습. 빅히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리는 풍광이 보신각 앞에서 타종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라면,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새해 첫 시간의 풍광은 무엇일까? 최소한 2500만 명이 방송이나 현지 참여를 통해 함께하는, ABC 방송국의 새해맞이 라이브 무대 ‘뉴 이어스 로킹 이브 2020(New Year’s Rocking Eve)’이 아닐까? 수많은 카운트다운 파티가 있다지만,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를 중심에 두고 로스앤젤레스·뉴올리언스·마이애미에 무대를 마련하고 원격으로 오가면서 진행되는 이 카운트다운 파티는 그 자체가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이 무대에 올해 또 방탄소년단이 ‘전 지구를 홀린 그룹’이라는 소개와 함께 등장해서 무려 8분간이나 공연했다. ‘Make It Right(메이크 잇 라이트)’를 부르며 계단에서 무대로 향했고 무대에 오른 뒤에는 ‘작은 것들을 위한 시’ 퍼포먼스로 한국어 떼창을 끌어냈다. 이미 2017년에도 이 무대에서 ‘DNA’와 ‘마이크 드롭(MIC Drop)’을 불렀던 BTS가 또다시 미국인들의 새해를 열어젖힌 것이다. 올해로 48회째를 맞은 이 무대에 한국 가수가 초대받은 사례는 2012년의 싸이와 BTS밖에 없고, 두 번 이상 초대받은 것은 BTS뿐이다.

BTS는 CNN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기사를 통해 뽑은 ‘2010년대 음악을 변화시킨 아티스트 10(The 10 artists who transformed music this decade)’에 포함되면서 팝 음악의 리더임을 확고히 했다. 비욘세, 켄드릭 라마, 프랭크 오션, 레이디 가가, 드레이크, 메트로 부민, 테일러 스위프트, 솔란지, 카니예 웨스트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과 함께 세상의 음악 트렌드를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기분 좋은 새해 소식은 닷새 만에 또 있었다. 지난 5일(현지시간) 봉준호 감독의 7번째 장편영화 ‘기생충’이 골든글로브 어워드에서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쥔 것이다. 감독상·각본상·외국어영화상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것도 한국 콘텐츠로는 최초였고, 본상을 받은 것도 최초의 기록이다. 하지만 ‘기생충’의 기세는 여기서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 이미 아카데미상 국제장편영화 부문과 주제가상 부문에 예비후보로 이름을 올렸고, 오는 13일 발표되는 본상 후보에도 다수 이름을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강력한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라는 것도 이미 비밀이 아니다.

지난 5월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후 북미 대륙에 상륙한 영화 ‘기생충’은 북미에서만 할리우드필름어워즈(할리우드 영화제작자상), 애틀랜타영화비평가협회상(감독상·각본상·외국어영화상), 뉴욕비평가협회상(외국어영화상), 워싱턴비평가협회상(작품상·외국어영화상·감독상), 전미비평가위원회상(외국어영화상), LA비평가협회상(작품상·감독상·남우조연상-송강호), 보스턴비평가협회상(외국어영화상·감독상), 시카고비평가협회상(작품상·감독상·각본상·외국어영화상), 토론토비평가협회상(작품상·감독상·외국어영화상), 전미비평가협회상(작품상·각본상) 등을 휩쓸었다. 사실상 북미 대륙을 점령한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봉준호 감독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기생충’의 흥행기록은 더욱 선명하다. 처음엔 3개 관에서 소박하게 시작했지만, 북미에서 두 달 넘게 상영되고 있다. 박스오피스 모조에 따르면 지난 주말인 5일까지 이미 2390만 달러(약 279억 원)를 벌어들였다. 역대 외국어영화 흥행 8위에 해당하는 기록이고 2010년 이후 작품으로는 흥행 2위, 2019년 개봉한 외국어영화 중에서는 단연 1위 기록이다. 이제 골든글로브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면서 뒷심을 받는 상태인데 이번 주말이 지나면 역대 외국어영화 흥행 7위 ‘무인 곽원갑’(2006, 2460만 달러) 자리도 넘볼 것으로 예측한다. 아카데미에서 만일 본상을 받는다면 2010년대의 1위 기록을 가진 히스패닉 영화 ‘사랑해 매기’(2013, 4440만 달러)의 기록에도 도전해볼 만하다.

K-팝, K-드라마, K-무비 등의 문화상품은 이제 전 인류의 언어가 되고 있다. 한류의 소비행태를 가리켜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시아의 특수한 문화소비 행태’ 정도로 규정했던 미국 전문가들은, 이제 북미 대륙마저 집어삼키고 있는 이 거대한 문화현상을 놓고 저마다 분석하기에 바쁘다. 봉준호 감독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매체마다 ‘한국 대중문화의 힘’을 묻는다. 이제 세계 콘텐츠 시장의 중심을 공략하는 한류에 대해 경이로움마저 느끼고 있는 실정이다.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에 따르면, 지난해 말 BTS의 성공이 향후 K-팝의 연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를 다루는 국제학회가 한국에서 열렸는데, 한 세션을 제외한 모든 발표자(외국인 발표자 포함)가 한국어로 발표했다고 한다. 동시통역이 있었으나, 발표문을 영어로 쓴 사람까지 한국어로 발표해 주었다는 것이다.

외국 연구자들까지 함께하는 국제 콘퍼런스에서 한국어 전용이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10년 전만 해도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어로 논문을 쓰고 발표가 가능한 새로운 연구자 세대들이 형성되어 있다. 외국 대학들은 앞다투어 한국학과를 신설하고 있고, 한국어 수강자들이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이들 중 한류 팬들이 본격적으로 한류를 연구하는 젊은 학도가 되어, 세계 속의 새로운 한류 연구자 세대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봉준호 감독이 세계 속의 유일한 공용어가 영화라고 말했듯이, 한류 콘텐츠들 역시 또 다른 세계의 공용어로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세계사적 전환은 1987년 이후 민주주의의 성숙이 표현의 자유를 확보해 내며 싹트기 시작했고, 우수한 인력이 대중문화판에서 꿈을 실현하려고 헌신하면서 뿌리를 내렸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팔 거리 원칙’의 사례들이 정책으로 구축되면서 좋은 거름이 되었고,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대한민국의 특별한 소비자들이 아낌없이 투자하면서 거대한 숲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제는 이 숲을 잘 지키고 활용하기 위해서 어떤 것들을 마련해야 하는지 또 다른 사회적 합의가 절실한 시대다. 그래야 2020년대를, 온 인류의 언어를 무기로, 세계의 중심이 되는 시대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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