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군사 국제 이슈 돋보기

러, 북극해 세력 넓히자 美 B-2 폭격기 ‘경고 비행’

입력 2020. 01. 03   15:55
업데이트 2020. 01. 03   16:09
0 댓글
미국-러시아, 북유럽서 군사적 대결 
 
에스토니아-핀란드 사이 고글란드 섬에 러 군사시설 건설 불씨
미, 노르웨이해 상공서 공중급유 받으며 첫 스텔스기 무력 시위
지구온난화 영향 북극해 지배권 경쟁 심화…中도 개입 긴장 고조
트럼프 그린란드 매입 검토 등 움직임에 북유럽 국가들은 반색 

 

영국의 페어포드 공군기지에 전개된 미국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맨 위)가 지난해 8월 영국 공군의 F-35 전투기 2대와 함께 사상 처음으로 통합 비행을 하고 있다.  영국 공군 제공
영국의 페어포드 공군기지에 전개된 미국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맨 위)가 지난해 8월 영국 공군의 F-35 전투기 2대와 함께 사상 처음으로 통합 비행을 하고 있다. 영국 공군 제공

북유럽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군사적 대결이 치열해지고 있다. 냉전 해체 이후 이 지역에서 강대국들은 군사적 활동을 급격히 축소했지만, 최근 들어 눈에 띄게 군사적 대비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는 최근 지구온난화에 의한 영향도 작용하고 있다.
미국은 2020년 국방예산에서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해 연안 3개 국가에 대해 1억7500만 달러(약 2000억 원)의 군사지원액을 배정하고 있다.

그 내역은 1억2500만 달러의 일반 군사 지원과 이들 국가의 방공 능력 향상을 위해 처음으로 배정한 5000만 달러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런 내용이 포함된 국방수권법(NDAA)에 지난달 말 서명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이들 발트 3개국은 200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했다.

이에 앞서 미 공군의 B-2 스피릿 스텔스 폭격기 3대가 지난해 9월 5일 사상 처음으로 북극권에 해당하는 노르웨이해 상공을 공중급유기의 도움을 받으며 비행했다고 인터넷 매체가 보도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이날 B-2 전략폭격기들은 북극권 상공에서 KC-135 공중급유기 4대의 공중 급유를 받으며 장거리 비행을 실시했다. 이들 전략폭격기의 비행 목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승무원들의 지형 숙지가 우선 과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극권은 북위 66도33분 이북 지역으로 북극해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전략폭격기는 미국 미주리주 화이트맨 공군기지의 제509폭격비행단 소속이다. B-2 스텔스 폭격기는 지난 8월 영국 런던 서쪽에 위치한 페어포드 공군 기지에 전개됐으며, 영국 공군의 F-35 전투기와 함께 훈련 비행을 하기도 했다. 페어포드 공군 기지는 미 공군의 유럽 전진 작전기지다. 이와 함께 B-2 폭격기는 유럽에 배치된 이후 아이슬란드를 처음으로 방문해 혹한 지역에서 작전 능력을 점검했다.

미국의 이러한 군사적 활동은 러시아의 군사적 행동에 대한 대응이다. 러시아는 지난여름 이후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사이에 있는 고글란드 섬에 대형 수송 헬기 Mi-26의 이착륙이 가능한 헬기장과 관제탑, 보급창 등을 건설했다. 이 군사시설은 대규모라고는 할 수 없지만, 위치가 미묘한 관계로 주변 국가들은 방심할 수가 없다. 고글란드 섬은 에스토니아와 핀란드 사이의 좁은 만 안에 놓여 있어서 이들 국가는 물론 스웨덴까지 수분 이내에 비행할 수 있다. 로이터 통신은 이 섬에 대한 군사력 배치는 이웃 나라에 대한 압력을 유지하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략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는 북극해에서 군사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북유럽의 북해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3월에도 노르웨이는 러시아가 GPS 시스템을 방해하고 암호화된 통신 시스템을 방해한다며 비난했다. B-2 전략폭격기들의 활동은 러시아 등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다. B-2 폭격기가 방문한 아이슬란드의 케플라비크 공군기지는 냉전시대에 소련에 대한 억지력으로 설립된 기지라는 상징성도 있다.

그에 따라 미국의 이러한 군사적 행동에는 북극해를 둘러싼 러시아와의 경쟁이 담겨 있다. 지구 온난화에 따라 북극의 해빙이 가속화되면서 러시아는 북극권에 대한 지배권을 선점하려는 적극적인 행동을 계속하면서, 북극권 경쟁에서 앞서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러시아는 북극해 심해 조사와 함께 잠수함 등 북방함대를 현대화해 북극에서 완전한 군사적 우위를 주장하고 있다.

북극해에서의 경쟁은 북극해 연안 국가가 아닌 중국도 뛰어들고 있어서 미국으로서는 더욱 관심을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은 2018년 1월에 발표된 북극 전략을 통해 자국이 ‘근(近)북극 국가’라고 주장하며, 일대일로를 확장해 ‘북극 실크로드(Polar Silk Road)’ 개설을 모색하는 등 북극에 대한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유럽과의 무역에서 현재 인도양-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항로보다 항해 시간이 단축되는 북극 항로를 경제 안보의 중요 사항으로 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지난해 6월 의회에 제출한 ‘북극 전략보고서’에서 러시아와 중국의 북극에서의 행동 확대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배경에서 B-2 전략폭격기의 현지 훈련 이외에도 실질적인 군사 활동을 다양하게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시한 그린란드 매입 방안이 화제에 오른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중순 덴마크령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이 섬의 매입을 백악관 참모들에게 검토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당시 해외 언론들은 미국이 과거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매입한 사례와 비교하면서 ‘동토 구입’이라는 흥미 위주로 보도한 바 있다. 이후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가 다소 의외적인 이 제안에 대해 “터무니없다”며 일축하면서 해프닝으로 마감됐다. 트럼프 대통령도 외교적 결례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덴마크 방문을 보복적 성격으로 전격 취소해, 일련의 이야기들은 호사가들의 입에 더욱 오르내리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의 그린란드에 대한 욕심은 대통령의 단순한 충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은 북극해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이에 근접한 그린란드의 지정학적·군사적·경제적 가치에 대한 미국의 높아진 관심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 좀 더 설득력이 있는 평가다. 북극권에 가까이 있는 그린란드는 과거에는 동토로 간주됐지만, 북극해에서 대서양으로 진출하는 통로에 위치해 갈수록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의 북유럽에 대한 군사활동은 북유럽 국가를 안심시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 러시아의 강경 군사노선이 등장하면서 인접한 동유럽 국가와 북유럽 국가들은 안보상의 위협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발트 3개 국가는 전투기를 보유하지 않는 등 국방력에서 상당한 취약점을 안고 있다. 미국의 군사지원은 이들 국가의 방공 태세를 강화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군사 지원은 나토와 발트해 국가에 대한 미국의 의지가 강하다는 분명한 신호를 던지고 있으며, 나아가 확고한 동맹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군사동맹에 대해 “낡은 동맹”으로 비하하며 “쓸모없다”고까지 말한 바 있어서 많은 우려를 받았다. 그렇지만 러시아의 재부상에 대한 활동에 대해 미국은 ‘수정주의자’로 규정하는 전략적 기조를 갖고 있다. 북유럽에서 미국의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활동들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김 성 걸
정치학 박사, (사)국방안보포럼 정책위원장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