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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먹다 남겨진 식탁… 일상의 쓰레기, 작품이 되다

기사입력 2019. 12. 18   17:03 최종수정 2019. 12. 18   17:11

<44> 누보 레알리슴

- 콜라주, 아상블라주, 퍼포먼스 아트, 모노크롬, 제로그룹, 컨셉추얼 아트, 레디메이드, 데 콜라주, 인스톨레이션, 해프닝


비평가 레스타니 의해 명칭…이브 클라인 주축으로 아르망·다니엘 스페리 등 활동
현실의 직접적 제시·소비과잉 시대 반영…기계부품·인간 붓 등 실험적 형식 작품화 

 

다니엘 스포에리 갤러리 j의 푸른식탁 1963
자크 빌레글. 청색과 검은색. 1955. 캔버스 위에 종이 찢고 붙이기. 30.5x53cm. MoMA

문화 강국으로 20세기 초 세계의 문화 수도를 자처했던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즈음 많은 정치적 혼란을 겪는다. 전쟁 중 임시정부 총리였던 드골(1890~1970)은 전쟁 후 연정에 실패하면서 하야했고 그 후 4공화국이 발족한다. 4공화국은 친서방 반공 정책을 중심으로 의원내각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군소 정당의 난립과 인플레이션, 인도차이나와 알제리의 독립운동으로 어려운 시기를 넘겨야 했다. 이후 1958년 10월 국민투표에 의해 12년 만에 드골이 총리직에 복귀한 후 새로운 헌법을 통과시켜 1959년 프랑스를 세계 네 번째 핵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과 국교를 수립하는 등 미국과 소련의 양극 체제 속에서 ‘프랑스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다. 특히 그는 1959년 ‘문화부’를 신설하고 말로(1901~1976)를 장관에 임명해 중앙집권적 문화정책을 통해 국가를 재건하고자 했다.

말로는 ‘문화를 통해 프랑스 민족의 우위를 표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문화로 개인들을 결합시켜, 국가에 대한 소속감의 기초를 만들고 동일한 신념과 가치를 공유’하도록 해서 각 개인의 영혼을 고양하기보다는 국민적 일치를 도모하고자 했다.

이 시절 영화에서는 이탈리아 전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아 ‘거짓 없는 인간의 일상’을 그대로, 즉 리얼하게 표현하며 사실성이 강조되는 누벨 바그(Nouvelle Vague)가, 소설에서는 누보 로망(Nouveau roman)이 나타났다. 미술에서도 사실보다는 현실이 일상처럼 반영된 작품들이 등장했다. 이는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현실도피적 태도에 대한 반발이기도 했다. 이렇게 등장한 것이 누보 레알리슴(Nouveau Realisme)이다.

1960년 5월 프랑스 미술비평가 피에르 레스타니(1930~2003)가 아르망(1928~2005), 프랑수아 뒤프렌(1930~82), 레이먼드 하인즈(1926~2005), 이브 클라인(1928~1962), 장 팅겔리(1925~1991), 자크(1926~ ) 등이 같은 해 4월 밀라노 아폴리네르 화랑(Galleria Apollinaire)에서 개최한 작품들을 논하면서 ‘누보 레알리슴 1차 선언’을 발표했고 이후 이 표현이 이들 유파의 명칭이 됐다.

하지만 정식으로 누보 레알리슴이 출범한 것은 그해 10월 이브 클라인의 작업실에서였다. 그리고 1960년 파리에서 열린 ‘아방가르드 페스티벌’을 통해 제2 선언, 그리고 1961년 5월 레스타니와 그의 아내가 문을 연 파리 J화랑에서 ‘다다를 넘는 40도(40°Above Dada)’전을 개최하며 제3 선언을 통해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사실 레스타니의 ‘기계화되고 공업화되면 광고로 넘치는 우리들 현대의 자연’ 즉 ‘현실을 직접적으로 제시’한다는 생각은 클라인의 영향에서 비롯됐다. 1955년 레스타니는 파리에서 열린 클라인의 첫 개인전에서 그 자체로 하나의 미술사조라 할 수 있는 그를 처음 만났다. 그는 당시 하나의 균일한 색상으로 칠해진 사각형 같은 다양한 색상의 모노크롬(Monochrome) 회화를 제작했다.

하지만 관객들이 이를 장식적이라 생각하자 클라인은 색과 관계없이 오직 푸른색만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이때 사용된 자신만의 독창적인 푸른색을 인터내셔널 클라인 블루(IKB·International Klein Blue)라 명명했다. 그 후 클라인은 레스타니에게 팅겔리, 아르망을 소개했고 이들은 일상적인 도시의 소비자들을 탐구하면서 이를 통해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으며, 일상의 쓰레기, 광고 등등 소비 과잉의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로서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후 1958년 클라인의 ‘아무것도 전시되지 않은 빈방’을 전시한 아이리스 클레르(Galerie Iris Clert) 화랑에서 열린 ‘감각의 공간화’를 위한 ‘공허(Le Vide)’전에 레스타니는 글을 썼다. 이후 1960년에는 같은 화랑의 진열장을 쓰레기로 가득 채운 아르망의 ‘충만(Le Plein)’이란 전시를 열었다. 클라인의 이 전시에서 단순히 대상을 바라보는 존재(voyeur)로서의 관객은 대상을 읽어내는 존재, 즉 투시해 내는 존재(voyant)로 변화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나치게 뒤샹에게 경도된 레스타니의 입장과 거리를 두면서 클라인은 기존의 모든 형식적 틀을 벗어나 영(0)에서 창조적 행위를 시작하는 제로그룹(ZERO Group)과 가까워졌다. 결국 클라인은 누보 레알리슴을 넘어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했다.

그의 모노크롬 회화는 추상표현주의의 지위에 대한 조롱이자 도전이었다. 또 그의 개념적인 조각이나 퍼포먼스(Performance) 그리고 문서가 곧 작품이 되는 ‘중요하지 않은 회화적 감수성의 영역’ 같은 아이디어와 불꽃으로 그린 그림 등은 재료와 매체를 뛰어넘어 미술의 폭과 깊이를 더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1961년 클라인은 뉴욕의 레오 카스텔리 화랑(Leo Castelli’s Gallery)에서 전시를 열었지만 작품을 한 점도 판매하지 못한 채 머물던 첼시 호텔에서 선언문(Chelsea Hotel Manifesto)을 통해 ‘다양한 새로운 가능성’을 선포하고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 누보 레알리슴은 성황을 이룬다. 그리고 1962년 뉴욕 시드니 자니스 화랑(Sidney Janis Gallery)에서 열린 전시에서 레스타니는 새로운 선언을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 선언이자 운동의 마지막이 됐다.

이들 누보 레알리슴 작가들은 각기 독창적인 기법을 선보였는데 아르망의 수집 또는 집합(아상블라주·Assemblage)은 투명한 통에 많은 쓰레기를 가득 넣어 쌓아 올리는 작품이었다. 제라르 데샹(1937~ )은 같은 옷가지나 직물류, 넝마를 가득 쌓은 작품을 선보였다. 이들의 작업은 대량생산과 소비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지녔다.

한편 2차원적으로 아상블라주와 유사한 의미의 데 콜라주(Decollage) 방식을 취한 작가들도 있었다. 다다의 콜라주 방식에서 차용한 기법으로 뒤프렌, 하인즈, 자크, 로텔라(1918~2006)는 광고용 포스터나 각종 전단지를 붙이고 다시 찢어내는 작업을 통해 시각적이며 예기치 못한 파괴적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또한 클라인이 시도한 전라의 여성이 몸에 물감을 묻히고 캔버스에 몸을 굴려 스스로 ‘인간 붓’이 되는 ‘인체측정법’이나 아르망이 피아노를 때려 부순 조각들을 다시 모아 통에 넣는 퍼포먼스는 일반적인 장르가 됐다. 또 다니엘 스페리(1930~ )의 음식을 먹다 남긴 식탁 자체가 작품이 되었고, 생 팔(1930~2002)의 경우 물감이 든 풍선을 캔버스에 매달아 놓고 총을 쏘아 물감이 튀어나와 흐르는 것을 작품화하기도 했다.

이렇게 누보 레알리슴은 고정 관념에 대한 도전을 관객과 함께하면서 그 결과 자체가 성과로, 작품으로 전환되는 과정 자체를 중시하는 실험적인 예술 형식을 즐겨 사용했다. 또한 팅겔리(1925~91)는 많은 기계부품을 재조립해서 움직이는 조각을 만들었으며 세자르(1921~1998)는 자동차를 압축(Compressions)해 새로운 색채와 형태로 전환시켰다.

또 크리스토(1935~ )와 그의 아내 장 클로드(1935~2009)는 건물이나 자연을 천으로 포장하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들 누보 레알리슴은 독일의 자본주의 리얼리즘(Capitalist Realism)과 유사하지만 다른 미술운동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정준모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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