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우리부대 동아리 집중탐구

스마트폰보다 동아리… 군 생활 가치가 달라졌다

송현숙

입력 2019. 12. 12   17:37
업데이트 2019. 12. 12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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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끝> 평일 외출과 휴대전화를 활용한 동아리 활동


볼링·족구·농구·풋살 동아리 자발적 운영 

외출 증가·간부들과 돈독한 관계 등 긍정적 변화
매달 0~2건이었던 평일 외출, 46건으로 늘어
“온라인으로 동아리 사진·정보 등 공유” 

 
‘평일 외출 제도’, ‘일과후 병 휴대전화 사용 전 부대 시범 확대’, ‘봉급 인상’. 이 세 가지는 최근 국군 병사들의 생활상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제도들이다. 이 가운데 봉급 인상을 제외한 두 가지는 시행 초기부터 기대와 부작용을 걱정하는 시선이 공존해 온 것이 사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듯 제도들을 선순환의 도구로 활용해 전투력을 끌어올리는 부대가 있다. 육군3포병여단 천도대대(이하 ‘천도대대’)다. 이 부대 병사들은 한목소리로 “휴대전화보다 동아리!”라고 말한다. 

글=송현숙/사진=조종원 기자

전우의 선전을 박수로 격려하는 볼링 동아리원들.
전우의 선전을 박수로 격려하는 볼링 동아리원들.

지난 9일 오후 육군3포병여단 천도대대 박진형 소위가 강원도 인제 위너볼링센터에서 힘차게 볼링공을 투구하고 있다.
지난 9일 오후 육군3포병여단 천도대대 박진형 소위가 강원도 인제 위너볼링센터에서 힘차게 볼링공을 투구하고 있다.

“그루루루루루루루루루∼ 콰 쾅!”

지난 9일 오후 강원도 인제 위너볼링센터 8번 레인. 천도대대 곽태영(20) 일병이 부드러운 백스윙으로 던진 볼링공이 레인을 따라 미끄러져 가더니 경쾌한 소리와 함께 10개 핀을 모두 쓰러뜨렸다.

“스트~라이크!”

곽 일병은 물론 다음 순서를 기다리던 전우들 사이에서 환호성과 칭찬이 쏟아졌다. “진짜 잘 치는데!” “점수 200 넘겠어.” 팀전 승리를 직감한 듯 두 눈을 바라보며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같은 팀 박진형 소위와 곽 일병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그런데 주말도 아닌 평일 저녁에 볼링이라니. 무슨 특별한 행사라도 열린 걸까?

“대대 볼링동아리 거터 킹(Gutter King)의 정기 모임일입니다. 저희 동아리는 간부 15명, 병사 14명으로 구성됐고, 한 달에 두 번 병사 평일 외출 시간을 활용해 정기 모임을 열고 있습니다.” 초대회장 손효인(21) 상병의 설명이다.

정기 모임에서 경기는 당일 참석 인원들을 실력을 기준으로 나눈 뒤 팀전으로 진행한다. 친선을 위한 모임이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정한 법! 음료수 내기라도 하는 날에는 한 구 한 구 더욱 신중을 기해 던지고, 평소 부족한 부분은 계급 고하를 떠나 실력자를 찾아가 한 수 배우거나 인터넷에서 볼링 잘 치는 방법 동영상 등을 찾아 공유하며 자기들만의 끈끈함을 더하고 있다고.

손 상병은 “평일 외출은 시간이 짧아서 2~3게임 정도밖에 치지 못하지만, 일상의 스트레스가 확 풀린다”면서 “평소 인사만 하고 지내던 간부님들, 타 포대 전우들과도 친해졌고 동아리 덕분에 군 생활의 가치가 달라졌다”고 밝혔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전해지고 있었다. 위너볼링센터 최태준(53) 대표는 “항상 표정들이 참 밝고, 특히 이렇게 간부와 병사가 함께 볼링으로 건강한 전우애를 다지는 모습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든든하고 보기 좋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이라는 새장 속에서 탈출”


천도대대에는 볼링 동아리를 비롯해 족구, 농구, 당구, 영화, 악기, 수영, 풋살, 음악, e-스포츠, 그림, 토익 등 총 12개 동아리가 운영되고 있다. 가입 인원은 100여 명. 특이한 것은 12개 동아리 가운데 전문 강사를 초빙해 진행하는 동아리는 단 하나도 없다. 모두 대대 간부와 병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만들고 활동한다.

이처럼 대대 전 병력이 어우러져 소통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인터넷 ‘밴드’다. 2포대장 정해빈(31) 대위 아이디어로 지난 7월 개설했다.

“취재 오면서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주변에 그 흔한 편의점도 하나 없습니다. 평일 외출 제도가 시행됐지만 우리 부대에서 인제 시내까지 거리가 있다 보니 교통비 부담과 시간의 압박을 느낀 병사들이 부대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생활관에서 휴대전화로 음악을 들으며 쉬거나 체력단련 등을 하며 개인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포대 분위기를 좀 더 활동적으로 바꿔보고 싶어서 고민한 끝에 ‘평일 외출과 휴대전화를 활용한 동아리 활동’을 제안했고, 밴드를 허브 삼아 관심사가 같은 인원들을 이어줬더니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 대대로 확대 적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정 대위)

비공개 초대 방식으로 운영되는 이 밴드의 가입자 수는 12월 11일 현재 211명. 동아리 활동에 관심 있는 잠재적 고객들도 들어와 전우의 문화생활을 간접 체험하고 있다.

기자도 정식 초대를 받아 잠시 밴드를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밴드에는 대대원들이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쌓은 추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일과 후 다목적실에 옹기종기 모여 종목을 연구하는 모습, 신입 동아리원을 환영하는 글, 경기 모습과 결과에 대한 피드백, 서로를 격려하는 이모티콘, 평일 외출 일정을 공유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글과 밝은 표정의 사진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이런 분위기는 동아리 활동 감상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농구 동아리 부회장 박진의(22) 병장은 “자유로움 속에 보장되는 동아리 활동 덕분에 카리스마로 누군가를 통제할 필요 없이 구성원들의 의견과 감정에 귀 기울일 수 있었고, 서로 존중하고 믿을 때 느려도 탄탄하게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면서 서번트 리더십의 경험담을 전했다.

여가 시간을 이용해 경기 중인 족구 동아리원들. 창설된 지 4개월 된 이 동아리는 단단한 팀워크로 올해 대대 체육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여가 시간을 이용해 경기 중인 족구 동아리원들. 창설된 지 4개월 된 이 동아리는 단단한 팀워크로 올해 대대 체육대회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공중 볼을 놓고 경쟁하는 농구 동아리원들. 겨울 찬바람에도 반바지를 입고 격렬하게 뛰다 보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은 물론 집중력에 최고라고 한다.
공중 볼을 놓고 경쟁하는 농구 동아리원들. 겨울 찬바람에도 반바지를 입고 격렬하게 뛰다 보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것은 물론 집중력에 최고라고 한다.


“밴드는 허브일 뿐, 99%는 동아리원들의 열정”

같은 동아리 소속인 3포대 홍성웅(21) 일병은 “손목 부상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팀원으로 보듬어준 농구 동아리원들 덕분에 좋아하는 농구를 하면서 희망의 빛을 찾을 수 있었다”면서 자신이 힘들어할 때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도록 동아리 활동 여건을 만들어준 대대장 등 간부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런가 하면 2포대 박유민(21·볼링 동아리) 상병은 ‘스마트폰’이라는 새장에서 탈출, ‘평일 외출’의 활성화, 간부님들과의 ‘돈독한 관계’라는 동아리 활동으로 얻은 3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야무지게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박 상병이 말한 변화 가운데 평일 외출 활성화는 부대 통계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3~6월까지 0~2건 남짓했던 평일 외출 건수가 7월 동아리 활성화 시작과 함께 16건으로 치솟더니 최근에는 46건을 찍었다. 휴대전화 대신 전우와 함께하는 시간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고, 즐기는 사람은 천재도 어쩌지 못한다고 했다. ‘즐겁게 구슬을 꿰니’ 성과야 두말하면 입 아프다.

여유 시간에 틈틈이 모여 합을 맞춰온 족구 동아리는 대대 체육대회에서 당당히 1등 트로피를 안았고, 풋살 동아리는 다른 동아리에는 없는 유니폼을 맞춰 단합된 힘을 과시하고 있다. 농구동아리는 ‘FIBA 인제 챌린저’에서 ‘NY할렘’, ‘프린스턴’ 등 세계 랭킹 팀들이 펼치는 경기를 관람하며 수준 높은 농구 기술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으며, ‘제2회 인제군농구협회장배 농구대회’에 첫 출전해 8강까지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내년에는 순위 진입을 노리고 있다고. 또 볼링 동아리는 온라인 밴드 활동과 오프라인 정기 모임 실적을 인정받아 후반기 우수동아리 1등에 선정돼 상금 10만 원과 4박5일 휴가증을 예약해 놓았다.

그런데 갑자기 든 궁금증 하나! 밴드 운영에 따른 보안상 문제는 없을까?

정 대위는 “전혀 없다. 휴대전화 사용지침과 육군본부 병 휴대전화 사용 가이드 라인에 따라 사용하고 있고 영내 활동 사진이 필요할 때는 간부들이 정보과 확인하에 촬영·전송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밴드는 동아리 활동을 보조하기 위한 허브일 뿐이고 결국 동아리 활동의 99%는 동아리원들의 열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대위는 이어 2019년 후반기가 대대원들이 동아리 활동을 잘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주는 시간이었다면, 2020년은 실속과 풍성함을 더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인제군의 군 동아리 지원 활동 사업에 참여하는 한편 장병 개개인의 특기를 살린 다채로운 동아리 개설, 동아리의 날 축제와 부대개방행사 참여 등을 준비 중입니다. 특히 병사들이 인생에 한 번뿐인 군 생활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저를 비롯해 간부들이 적극적인 참여와 관심으로 뒷받침하겠습니다.”


● 천도대대장 임경민 중령 인터뷰 

“소통의 윤활유 기대 이상 단합으로 무사고 기록도 달성” 



“우리 대대는 최근 무사고 500일을 달성했습니다. 군단 내 최고 기록입니다. 그만큼 부대원들 사이에 소통이 잘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지난 9일 만난 천도대대장 임경민(43·학사 33기·사진) 중령은 부대의 무사고 500일 달성 기록 사실을 전하면서 그 핵심 키워드로 ‘소통’을 꼽았다. 그리고 동아리가 소통의 윤활유가 되고 있고, 지휘관이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자율에 맡기고 목표의식만 부여해주면 더 잘 운영된다고 강조했다.

“처음엔 2포대에만 적용했는데 반응이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특히 부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일부 인원들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점차 자신감을 찾고 마음을 다잡아 열심히 군 생활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대대 전체로 확산을 결심했고, 시너지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천도대대는 지난 11월 29일부로 부대 개편이 됐다. 우선 운용 장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기존 130㎜ 다연장로켓에서 천무 다연장로켓 장비로 교체됐다. 병력도 병사 대신 장비를 운용할 포병 간부의 수를 늘렸다. 부대 개편에 따라 부대 시설 곳곳을 개·보수하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처럼 큰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대대가 무사고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끈끈한 전우애를 바탕으로 한 안정된 부대 분위기가 큰 몫을 했다.

임 대대장은 “포병 특성상 팀워크가 상당히 중요한데, 동아리를 통한 소통과 단합의 힘이 전력화 장비 숙달과 조기 임무 수행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송현숙 기자 < rokaw@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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