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과 게임 시즌2

내가 만든 길이 곧 동료를 위한 길

입력 2019. 12. 12   14:47
업데이트 2019. 12. 12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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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데스 스트랜딩


화물배송 액션게임으로 온라인상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도로·시설 건설
군대 이동에 ‘물자·병력 수송’ 경로 개척 필수…공병·선발대 중요성 부각 

 

화물 운송이 중심인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때론 자기 키보다 높게 쌓은 화물을 운반해야 한다. 화물이 파손되면 중요한 물건일 경우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되기도 한다. 필자 제공
화물 운송이 중심인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때론 자기 키보다 높게 쌓은 화물을 운반해야 한다. 화물이 파손되면 중요한 물건일 경우 그대로 게임 오버가 되기도 한다. 필자 제공
누군가 깔아 둔 국도 위를 트럭으로 달리다보면 절로 고마움이 샘솟는다. 필자 제공
누군가 깔아 둔 국도 위를 트럭으로 달리다보면 절로 고마움이 샘솟는다. 필자 제공

우리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이를 보존하려고 늘 노력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자연은 그리 적합한 환경이 아니다. 대규모 인력과 장비가 움직여야 하는 군사작전의 측면에서 자연은 때론 극복이 어려운 장애물로 나타나기도 한다. 오솔길 하나 없는 산을 넘고 다리 하나 없는 강을 건너는 일은 현대화된 군대일수록 오히려 어려워지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대규모 군대의 이동에는 언제나 개척이라는 작업이 함께 있어 왔다. 고대 로마 군단병이 길을 뚫어가며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를 만들어냈던 것과, 근현대 대규모 전장에서 철도 부설을 통해 병력 투사의 거리를 늘려왔던 것, 대영제국이 전함 건조를 통해 해외 식민지에 영향력을 행사했던 것 모두의 배경에는 험난한 환경을 뚫고 물자와 병력을 수송할 수 있는 경로의 개척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전투 대신 배송을, ‘데스 스트랜딩’

2019년 말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출시된 게임 ‘데스 스트랜딩’은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게임이다. 대체로 익숙하게 들어가던 전투 개념이 게임 전체에서 가급적 배제되는 방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필드에서 BT라고 불리는 저세상의 존재, 플레이어의 화물을 노리는 뮬이라는 적들, 플레이어를 죽이려 달려드는 테러리스트들과 싸울 일도 있지만, 게임은 가급적 전투를 피하는 방식에 어드밴티지를 주면서 최대한 전투상황을 우회하도록 만든다.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끝없는 화물 수송이다. 각 지역마다, 각 거점마다 필요한 물건들을 배달해 달라는 요청이 이어진다. 플레이어가 혼자 등짐을 짊어지고 나를 수 있는 화물의 양은 한정돼 있고, 이를 늘리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운송수단을 운용해야 한다.

문제는 게임 속 지형이 물건을 나르는 데 크나큰 장애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길은 모두 끊겼고, 산과 언덕은 온통 바위투성이거나 강과 시냇물로 막혀 있다. 험난한 길을 어찌어찌 걸어갈 수는 있지만, 등에 진 짐 때문에 플레이어는 무게중심을 잡지 못할 경우 그대로 길바닥에 넘어지며 화물을 쏟아버리고 만다. 이렇게 되면 화물은 모두 손상되며, 배송은 실패한다.

알 수 없는 이유로 모든 도로와 통신이 끊어진 세계에서 플레이어의 화물 배송은 전투 이상의 난관에 봉착한다. 등에 진 화물의 무게중심을 잡으며 목적지까지 최대한 안전하게 화물을 가져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사투이기도 하다. 게임이 좀더 진행되면 요구하는 화물의 수량도 크게 늘어가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트럭이나 오토바이 같은 차량 이용이 필수인 경우가 발생한다.

화물배송 액션 게임 ‘데스 스트랜딩’에서 중반부의 주요 콘텐츠는 그래서 도로 건설이 차지한다. 자원을 긁어모아 무너진 국도를 재건하고 나면 비로소 트럭은 제 속도를 내며 대용량 배송을 빠르고 쾌적하게 수행해 내는 수단으로 자리매김한다. 도로가 없는 땅에서는 계속 바위에 부딪히고 미끄러지던 운송수단들은 포장도로 위에서 빛을 발한다.


선발대, 설영대, 공병을 향한 ‘좋아요’

‘데스 스트랜딩’은 싱글 플레이 게임이지만, 온라인에 연결할 경우 추가적인 어드밴티지를 얻을 수 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설치한 여러 시설물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앞서 이야기한 국도와 같은 경우, 누군가 미리 깔아둔 국도를 활용할 수 있게 되면 게임의 난도는 한결 손쉽게 변한다. 다른 플레이어의 시설에 도움받는 경우는 비단 도로뿐만은 아니다. 맞으면 노화와 부식을 가속시키는 타임폴이라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임시 쉘터, 험난한 바위를 넘어가기 좋게 설치된 사다리와 밧줄과 같은 온갖 시설물이 플레이어의 화물 배송을 돕는다. 절대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길 앞에 설치된 밧줄이나 집라인을 사용해 험로를 넘어가고 나면, 절로 ‘좋아요’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게임은 실제로 다른 플레이어의 시설에 SNS처럼 ‘좋아요’를 눌러줄 수 있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다른 플레이어의 시설이 내게 준 편의성에 고마워하다 보면 저절로 나의 시설물 건설 또한 적극적으로 변한다. 내가 만든 시설 또한 남들에게 편의가 되고, 또 거기에서 얻은 ‘좋아요’가 나의 레벨 업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모두가 힘들어할 것 같은 지형에 다리를 놓고, 이쯤이면 쉬어야 할 것 같은 공간에 숙소를 건설하는 일은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 함께 이 게임을 플레이하는 여러 플레이어와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된다. 내가 뚫은 길이 곧 내 동료들의 길잡이가 된다는 점은 여러 모로 뿌듯하다.

이러한 길 개척의 이야기는 군의 관점으로는 크게 두 가지 이야기가 된다. 하나는 공병의 존재다. 길을 개척하고 시설을 세우며 군대의 이동과 휴식, 방어를 이끌어 내는 공병의 존재는 험난한 자연환경을 넘어야 하는 거대한 군사 이동이 요구될 때 가장 핵심적인 역량이 될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비단 공병이 아니더라도 많은 군부대가 작전을 위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출발하는 선발대, 설영대의 의미일 것이다. 본대의 출발에 앞서 기초적인 숙영지 설치와 통신, 방어를 먼저 만들기 위해 출발하는 선발대와 설영대는 전투적 의미에서의 선봉 이상으로 부대 전체의 진군에서 맨 앞을 차지하는 임무로 빛난다. 가장 먼저 앞서나가 개척하는 이들의 땀방울은 ‘데스 스트랜딩’에서 그 시설물을 이용하는 모두로 하여금 ‘좋아요’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고마운 존재들이다.


<이경혁 게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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