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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 군의관 생활기

입력 2019. 12. 02   14:32
업데이트 2019. 12. 02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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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주 연 육군대위 국군수도병원
최 주 연 육군대위 국군수도병원

국군수도병원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한 지도 벌써 9개월 남짓 된다. 이곳에는 군의관 110명과 민간 전문의 37명, 총 147명의 의사가 근무한다. 그중에는 민간 대학병원에서 수십 년간 경력을 쌓고 병원장직까지 지내셨던 교수님들과 전직 청와대 주치의도 계신다.

의료 현장에서 본 이분들의 모습은 내게 많은 생각을 안겨 주었다. 한 선배는 “소속이 ‘군’ 병원이라고, ‘군’ 복무 중이라고 해서 의사라는 직업이 일시 정지되는 게 아니다”라며 “군 병원에서 보는 환자도, 외부에서 보는 환자도 모두 내가 진료하는 내 환자”라고 말했다. “의사로서 단지 군복을 입었다는 사실이 환자를 보는 데 소홀함이나 책임회피의 변명거리가 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 말에는 나 역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환자에 대한 사명감과 내 위치에서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사실 나도 야전에 있을 때 ‘군 병원’ 환경은 열악할 것이라는 부정적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각종 검사장비가 대부분 최신식이었다. 병동에 흔히 있는 심전도 장비조차 가장 좋은 것이었고, 수술 자재들과 사소한 소모품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었다. 오히려 민간병원에 근무하다 오신 분들은 예상치 못한 호화로운(?) 상황에 당황하실 정도다. 제품이나 장비 사용 기간을 철저히 지키다 보니 멀쩡해 보이는 것들이 새것으로 교체될 때면 철없는 인턴의 시각으로는 아깝다는 생각도 해본다.

선배들의 가장 큰 고민은 예전의 나 같은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어디가 아픈지보다 “소견서 써 달라”고 먼저 말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들이 나가고 나면 선배들은 한숨을 푹 쉰다. 민간 병원에 가려는 환자에게 선택을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는데도 군 병원에 대한 인식 때문에 외부로 나가는 환자들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나부터 군 의료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야겠다고 뼈저리게 느꼈다. 수도병원의 3년 차 선생님 한 분은 얼마 전 처음으로 자필 감사편지를 받으셨다고 한다. 환자들의 인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의사로서 조금 더 잘해야지, 조금 더 노력해야지 희망을 놓지 않으신다고 했다. 나 역시 내 전공 분야에서 실력을 갖춘 군의관이 되고 싶다. 환자들에게 작은 감동을 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군 의료에 대한 탄탄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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