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속 현대 군사명저를 찾아

중국 회색지대 전술과 미국의 대응 전략을 말한다

입력 2019. 11. 29   16:55
업데이트 2019. 11. 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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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Michael J. Mazarr의 『Mastering the Gray Zone: Understanding a Changing Era of Conflict』 (Carlisle, PA: US Army War College Press. 2015.)


제해권 둘러싸고 현실화된 미·중 간 세력 전이, 패권전쟁 우려 높여 

中 해군력 빠르게 美 추격…남사군도 맞붙을 경우 지표평가 결과 충격적
중국의 남중국해 내해화 위한 ‘살라미·기정사실화·대리전’ 전술 지목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 공식화 배경과 회색지대 전술 대처 지침 제시 

 

지난 5월 미국과 일본, 필리핀, 인도 등 4개국 군함이 영유권 분쟁해역인 남중국해를 항행하는 연합훈련을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월 미국과 일본, 필리핀, 인도 등 4개국 군함이 영유권 분쟁해역인 남중국해를 항행하는 연합훈련을 벌이는 모습. 연합뉴스

미·중 간 ‘세력 전이(power transition)’가 ‘투키디데스의 덫’ 때문에 패권전쟁에 이르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대두하고 있다. 투키디데스의 덫이란 도전국의 추월에 대한 두려움 및 도전국의 국력이 더 커지기 전에 제압하려는 예방전쟁의 유인으로 구성된 ‘지배 세력 증후군’과 국력의 급성장으로 인한 오만한 자의식 및 국제적 존중을 받고자 하는 인정욕구로 구성된 ‘신흥 세력 증후군’이 맞물려 전쟁 가능성이 커진다는 국제정치학 용어다. 

 
실제로 ‘하버드 투키디데스의 덫 프로젝트’ 연구팀은 지난 530년(1488∼2017) 동안 세계적 차원의 세력 전이와 주도권 경쟁이 일어난 16개 사례를 분석했는데, 그중 75%에 해당하는 12개 사례가 패권전쟁으로 귀결됐다는 것을 발견했다. 또한 제해권과 관련된 세력 전이와 주도권 경쟁이 일어난 11개 사례 가운데 82%에 해당하는 9개 사례가 패권전쟁으로 귀결됐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미 현실화된 미·중 간 세력 전이가 특히 제해권에서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양국의 패권전쟁에 대한 세간의 우려는 증폭하고 있다.


빠르게 좁혀지는 미·중 군사력 격차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IRI)에 따르면, 올 1월 1일 기준 세계 군사비 지출의 36%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이 14%를 차지한 중국보다 약 2.6배의 군사비를 더 지출하고 있다. 그러나 군사력 강화에 필요한 자원을 자국 통화로 얼마나 구매할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구매력평가지수(PPP) 측면에서 보면 중국은 이미 2014년도에 미국을 추월했다. 올 1월 1일 기준 세계 PPP에서 중국과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18.7%와 15.2%다. 2021년에는 중국의 PPP가 미국보다 1.4배 이상 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미·중이 각각 GDP의 3.2%와 1.9%를 군사비에 투자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이 미국만큼 경제 자원을 군사비로 지출할 경우 양국 간 군사력 격차는 빠르게 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이미 중국은 해군력에서 미국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6700척의 전함을 보유했던 미국은 현재 10 분의 1 수준만 보유하게 된 반면, 19세기 ‘양무운동’의 결실이었던 남양·북양·복건 함대의 궤멸과 백년국치를 경험해야 했던 중국은 이제 영국·호주·독일 해군을 합친 것보다 훨씬 큰 규모의 해군을 보유하게 됐다. 중국 해군은 1척의 항공모함(10년 내로 4척 추가 건조 계획), 488척의 수상전투함, 78척의 잠수함, 246척의 보조함, 23만5000명의 해군 병력과 3만 명의 해병대 병력(5년 내 육군을 개편해 10만 명으로 증원 계획)을 운용하고 있다. 2010년만 해도 모든 해군 전력에서 미군에 크게 뒤처졌던 중국이 9년 만에 빠르게 추격 내지 추월하고 있다.


‘남사군도’에서 미·중이 맞붙는다면

물론 아직 양국 간 해군 전력에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수상전투함은 모두 장거리 작전이 가능한 반면 중국은 그렇지 못하다. 총 톤(t)수로 환산하면 미 해군 전력은 약 345만 톤이고 중국은 3분의 1 정도인 122만 톤에 불과하다. 성능·전투경험·운용능력·항공전력 등에서도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미 해군에 비해 중국 해군은 주로 미 7함대 견제를 목표로 한다. 즉, 중국 해군은 적어도 서태평양에서는 미 해군을 충분히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 2017년 랜드연구소(RAND)는 동중국해와 남중국해, 특히 ‘남사군도’에서 미·중 양국이 미사일 능력, 공군력, 사이버 전력, 수상 전력 등으로 맞붙게 됐을 시의 우열을 아홉 가지 지표로 평가했는데 그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중국 본토와 가까운 동중국해에서 양국이 맞붙을 경우 두 가지 지표에서는 중국이 우세하고, 네 가지 지표에서는 양국이 대등한 것으로 평가됐다. 상대적으로 중국 본토와 먼 남중국해에서 맞붙을 경우도 네 가지 지표에서 대등한 것으로 평가됐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많은 과학적 연구들이 세력 전이의 속도와 전쟁발발의 가능성이 ‘반비례’한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즉, 세력 전이가 미·중처럼 빠르게 전개될수록 전쟁 발발의 가능성이 낮고, 설사 발발해도 그 강도가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미·중 간 대규모 패권전쟁의 가능성은 세간의 우려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본격화되는 남중국해 내해화 전술

『Mastering the Gray Zone』의 저자는 앞서 논의한 내용을 전제로, 중·러가 미국을 대상으로 전쟁의 임계점을 넘지 않으면서 현상변경(revision of status quo)을 위한 회색지대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한 다양한 사례연구 가운데 한국의 국방 관계자들이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2010년대 들어 본격화하고 있는 중국의 남중국해 내해화(內海化) 전술이다. 중국은 이미 반접근/지역거부(Anti-Access/Area Denial) 전략을 통해 미 해군의 영향력을 2개의 도련선(islands chain) 밖으로 밀어내고 있으며 이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물론 미국도 ‘항행의 자유 작전’을 수행하면서 ‘공해전’ ‘국제공역에서의 접근과 기동을 위한 합동개념’ ‘다중영역전투’ 등을 고안하지만, 사실 미국의 해양전략은 ‘서태평양 연안 지역 방위’에서 ‘해양통제’ 또는 ‘대양에서의 결전(decisive battle)’으로 후퇴하고 있다.


살라미·기정사실화·대리전 전술 구사


무엇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했는지에 대해 저자는 중국의 세 가지 회색지대 전술을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개별 전술의 개념과 내용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그는 중국이 ‘작은 현상 변경의 장기간 축적’을 통해 전략 환경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초래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으며,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얼마 남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저자가 분류한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살라미(salami) 전술이다. 이것은 미국의 인내심을 시험하면서 점진적으로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전술이다. 즉, 남중국해 인공섬에 항만시설, 활주로, 군인 거주 시설, 레이더 기지, 방공포대, 방공미사일 기지, 잠수함 기지 등을 순차적으로 설치하면서 남중국해를 서서히 잠식하는 것이다.

둘째는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전술이다. 미국이 대응할 시간적 여유를 갖기도 전에 갑작스럽게 수행함으로써 제한적 이익을 차지하는 전술이다. 예를 들어 미국이 인공위성이나 드론으로 정찰하기도 전에 남중국해 어느 도서에 중국 오성홍기가 게양된 군 시설물을 급조하는 식이다.

셋째는 국가 차원의 노골적인 현상변경 시도를 부인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활용하는 대리전(proxy warfare) 전술이다. 해상민병대, 어선 혹은 비정규부대가 중국 정부의 선호와 정책에 일치하는 방식으로 남중국해 도서를 무단 점령하는 방식이다.


인도·태평양전략의 공식화 배경


전술적 점진주의에 해당하는 살라미 전술과 전술적 급진주의에 해당하는 기정사실화 전술은 미국의 ‘억지 시점’ 설정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전술적 방임주의에 해당하는 대리전 전술은 ‘억지 대상(target of deterrence)’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미국이 군사적 조치를 취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미국이 이 전술에 과도하게 대응할 경우 국제적 명분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향후 수십 년 동안 중·러의 회색지대 전술은 남중국해, 북극해, 흑해, 유라시아 대륙에서 가장 많이 목격될 것이고, 이들 지역의 현상유지는 항구적으로 위협받게 될 것이며, ‘우연한 전쟁’의 발발 가능성은 크게 증가할 것이다. 올 7월 1일, 미 국방부가 발간한 ‘Indo-Pacific Strategy Report’는 중국의 회색지대 전술에 대처하기 위한 저자의 다섯 가지 지침들을 크게 반영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전략이 공식화된 배경을 이해하고 앞으로 전개될 미국의 대응을 전망하고 싶은 국방 관계자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해군사관학교 국제관계학과 김지용 교수
해군사관학교 국제관계학과 김지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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